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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점점 확산되어 불안감도 함께 높아가고 있다. 지난 주에는 판소리 강습만 살짝 다녀오고 쭉 집에만 있었는데 이것마저 당분간 쉬기로 했다. 잔 할머니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볼까?

<체리토마토 파이>는 작년 출간 때 예약 주문을 해서 4월 초에 받았다. 받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올 설날 새벽에 읽기를 마쳤으니 무려 9개월이나 걸렸다. 이렇게나 긴 시간에 걸쳐 읽은 것은, 주인공인 90세의 잔 할머니가 일년 동안 일기를 쓰는 형식으로 된 소설집이어서 처음부터 조금씩 읽기로 계획했기 때문이다. 일기의 속도에 맞추어 읽고 싶었던 것이다.
 
체리토마토 파이 90세 할머니가 1년 동안 일기를 쓴 프랑스 소설집
▲ 체리토마토 파이 90세 할머니가 1년 동안 일기를 쓴 프랑스 소설집
ⓒ 김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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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그랬듯 다 읽고나면, 90세가 된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레 그려볼 것이다. 과연 나는 그 나이에 무얼하고 있을까? 백세 시대라지만 내가 그 때까지 살아나 있을까? 김형석 교수는 백 살이 되어도 책을 펴내고, 장형숙 할머니는 95살이 되었어도 여전히 편지로 낯선 이들을 위로하고 응원을 보낸다.

​잔 할머니는 남편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혼자 살지만 심심할 겨를이 없다. 요리 하고, 책도 읽고, 십자말 풀이도 하며 카드점을 친다. 몰스킨 수첩에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들은 인상 깊은 말, 책이나 신문에서 발췌한 문장을 적기도 한다. 종교 생활도 하고 운전도 한다. 남들과 있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것이 오히려 지루하지 않다고 할 정도이니 일반적인 할머니와는 많이 다르다.

​잔 할머니는 예전에 독서 모임에 들어갔는데 자신의 취향이 아닌 책을 읽어내느라 힘들어서 2년 후에는 때려치웠다고 한다. 슈퍼시니어라며 싸잡아 말하는 것에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자신의 빛깔과 취향이 뚜렷한 할머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내용도 종종 나온다. 이웃집 밭에서 남 몰래 풋강낭콩을 재빠르게 따고 난 뒤 빨간 토마토 하나를 더 따고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며 자신이 가꾸는 콩이 잘 여물면 이웃에게 따 가라고 할 거라 말한다.

며느리가 임신했을 때는 아기 덧신을 한 켤레 짜기로 했는데 짝이 안 맞아 새로 하나를 떴다. 그런데 계속 안 맞아 네번 째까지 떴는데도 하나도 맞지 않아 그냥 다 줘 버렸다는 이야기.

​하루하루를 나름대로 심심하지 않게 지내는 잔 할머니도, "너도 기억나니?"라고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어떤 이미지, 어떤 이름, 어떤 장소를 확인시켜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 홀로 이 보잘 것 없는 기억력, 누렇게 변한 사진들을 붙잡고 있다. 망각과 함께 나 홀로 남았다. (289~290)
 

이런 문장에선 쓸쓸함이 전해져온다. 추억을 더듬으며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은 쓸쓸함을 넘어 외롭고 슬픈 일이다. 가장 가까운 배우자도 떠나고,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고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을 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잔 할머니는 90년을 살았지만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여전히 모른다며, 너무 힘들지 않게 떠나는 것이 소원이란다.
 
나는 왜 이 기나긴 생의 끝자락에서 하나도 특별하지도 않은 생활을 글로 적어두는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후에도 완전히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는 욕구 때문인가? (108페이지)
 

​잔 할머니 말대로 90대의 나이는 돌아볼 나이가 아닐 수도 있다. 몸의 기능들은 떨어지고, 통증들은 늘어만 가고, 활력이라곤 찾기 힘든 나날들을 맞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늙어버린 머리와 닳아빠진 심장으로 무슨 글을 쓰냐면서 일기는 아가씨가 쓰는 거란다. 하지만 자신이 죽은 후에 일기를 읽은 사람들이 비웃을 거라고 하면서도 꼬박꼬박 써내려갔다.

이 책은 멋진 비전을 보여준다. 이제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 나이인 90대. 그런데 잔 할머니는 아흔 번째 봄날에 일기를 쓰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읽기 전부터 많은 기대감을 준 책이었다.

​이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 없는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4관왕이 된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말하여 유명해진,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바로 이 <체리토마토 파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이 책은 거대한 것이 아닌, 한 세기 가까이 산 한 노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함에도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아직 그 나이가 되지 않은 작가가 그토록 세밀하게 써 내다니 놀라웠다. 잔잔한 여운을 남겨준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만약 내가 90세에도 살아 있다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솟는다. 아니 그 나이까지 살아서 잔 할머니처럼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건강에 힘 써야겠다. 이 소설 덕분이다.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지은이), 이세진 (옮긴이), 청미(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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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살무늬의 세상 읽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책과 동네 책방과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깊다. <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과 <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얼 보았나?>를 지어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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