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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 저는 지금 대구에 살고 있습니다]

역시 3월이라 그런지 달랐다. 얇은 패딩마저도 덥게 느껴질 정도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미세먼지도 여느 때보다 적어 하늘도 쾌청했다. 냇가에서는 오리 몇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청량하기만 했다.

하천을 둘러싼 자연들은 그야말로 딱 봄이었다. 하마터면 착각할 뻔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 새로운 선생님과 만나 조잘대는 그런 3월의 어느 날이라고 말이다. 착각은 아주 잠깐이었다. 마스크를 쓴 얼굴에 닿는 축축한 입김은 모처럼 느끼는 봄날의 상쾌함을 침범해 왔다.
 
 5일 오전 대구시 중구 중앙로 지하상가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상가들의 임시 휴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5일 오전 대구시 중구 중앙로 지하상가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상가들의 임시 휴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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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8일 대구에 코로나 환자가 처음 발생한 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구 시민들은 자발적인 격리에 들어갔다. 외출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삼갔고, 집에서 생활하며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려 왔다. 하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위축되는 몸과 마음을 더 집에 가두어 두었다가는 깊은 우울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3월의 첫 월요일 용기를 내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제를 덜어 주머니에 넣은 채 집 근처 하천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로 향했다. 거의 2주 만의 외출이었다. 의외로 산책로엔 사람들이 많았다.

마스크로 얼굴의 3분의 2를 가리고, 날도 더운데 장갑까지 낀 채 사람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빠른 속도로 걸었다. 움직이자 찌뿌둥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개운해지는 듯했다. 지난 2주간 무척이나 시달려온 나의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놀람과 불안

처음엔 그저 놀랄 뿐이었다. 맨 먼저 놀란 건 대구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였다. 환자 발생 뉴스를 접하고 얼마 후 주로 이용하는 도서관 휴관 문자가 왔고, 이어서 아이의 학원들이 모두 휴원을 알렸다. 다음 날 아침엔 내가 일하는 상담센터도 당분간 문을 닫겠다고 알려 왔다. 순식간에 일상이 마비됐다. 이 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

SNS를 통해 연결된 대구의 이웃들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같은 단지 살면서도 얼굴도 못 보다니 이게 뭐람?' '어떻게 하루만에 이렇게 모든 게 달라지죠?' 하나같이 당황스러워했다.

놀람이 가라앉기도 전에 불안감이 엄습해 들어왔다. 대구 지역 확진자가 100명에 가까워지자 (지금 생각하면 고작 100명이었거늘!) 카톡방이 바빠졌다. '오늘 우리 아파트에 앰뷸러스 다녀감. 그 동 근처에 가지 말 것!' '우리 동네 **내과에서도 확진자 나왔다고 함!' '**백화점도 확진자 다녀가서 소독한다고 문자옴!' 이웃들은 저마다 알게 된 정보를 퍼다 날랐다.

지자체에서 보내는 안전문자의 수위도 점점 높아졌다. '외출시 마스크 착용, 손씻기 철저'에서 '외출자제'로 다시 '공공행사 금지'로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불안의 수위도 올라갔다. 전시사태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아마 대구시민 대부분이 이런 느낌이었을 테다. 내가 그랬듯, 사람들은 격리 생활에 대비해 대량으로 장을 봤고, 대구의 마트에 식자재가 동났다는 뉴스가 나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무기력
 
 24일 오후 6시 40분께 평소 같으면 차량과 사람이 넘칠 대구의 중심가 동성로의 중앙파출소 삼거리 일대가 차량과 오가는 사람이 뜸하다. 대구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시민들이 외출을 꺼려 이날 동성로 대부분의 상가가 휴업하거나 일찍 문을 닫았다.
 24일 오후 6시 40분께 평소 같으면 차량과 사람이 넘칠 대구의 중심가 동성로의 중앙파출소 삼거리 일대가 차량과 오가는 사람이 뜸하다. 대구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시민들이 외출을 꺼려 이날 동성로 대부분의 상가가 휴업하거나 일찍 문을 닫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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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장을 봐두고 나는 본격적인 자가 격리 생활에 들어갔다. 2월 마지막 주엔 남편도 직장에 가지 않았고, 온 가족이 집에서만 생활했다. 처음엔 "우리 그냥 휴가라고 생각하자"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보고팠던 책들도 읽고, 가족이 함께 영화도 다운받아 보고, 보드게임도 하며 즐겨보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격리 생활을 '즐긴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다짐이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집에 있었지만, 책의 활자들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토록 재밌게 보던 드라마에도 몰입이 되지 않았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코로나 관련 뉴스를 찾아볼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2월 25일 무렵, 코로나 확진자 수는 1000명에 이르렀다. 숫자가 1000단위를 넘어서자 증가하는 환자 수에 무감각해졌다.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도, 어린아이가 걸렸다는 뉴스에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기력이었다. 속수무책으로 확산되는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일상에서 무엇을 할 의욕마저 사라지게 했다. 서로의 불안을 나누던 카톡방도 이 무렵부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다들 나처럼 무기력한 느낌에 카톡으로 소통하는 일까지 귀찮아진 게 아닌가 싶었다. 친한 이웃들로 구성된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겨봤다.

'다들 어떻게 지내세요? 전 넘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그러자 이런 답들이 짤막하게 돌아왔다.

'손하나 까딱하기 싫음'
'출근 못 할 때 뭐라도 해야 하는데 종일 침대에만 있음'
'멍하니 TV틀어 놓고 있는 중'


나만 느끼는 무기력함이 아니었다.

우울과 분노
  
 낮 기온이 크게 오른 26일 대구시 수성구 수성못 주변에 매화가 활짝 피어 있다. 매화 너머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우려한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책하고 있다.
 낮 기온이 크게 오른 26일 대구시 수성구 수성못 주변에 매화가 활짝 피어 있다. 매화 너머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우려한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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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며칠을 보냈다.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몸에서도 사인이 왔다. 집에만 있으니 식욕이 없어 시리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을 뿐인데 종일 소화가 되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일었다. 한없이 꺼지는 기분에 슬프다가도 사소한 일들에 화가 났고, 집에만 갇혀 세 끼 밥을 모두 해 먹는 일상이 지긋지긋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우울의 증상들이었다. 정신분석에서는 분노가 갈 곳을 잃었을 때 내면을 향하는데 자기 자신을 침범한 분노들이 우울을 유발한다고 했다. 이렇게 다같이 고생하고 있는데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퍼져가기만 했고, 정상적인 생활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통제할 수 없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에 화가 났고, 그럼에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하지만, 화낼 대상이 없었다. 바이러스를 누군가 일부러 퍼뜨린 것도 아니고,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닐테니 누구에게 화를 내겠는가. 결국 그 분노는 무기력에 빠져드는 내게로 향했고, 이는 나를 점점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 감정들이 우울임을 알아챘던 날 오랜만에 이웃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다들 무탈한가요? 진짜 너무 처지고 전 우울해 죽겠어요. 이러다 집단우울증 빠지는 건 아닌지.'

나만 우울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잠시 후 또 다른 이웃이 메시지를 남겼다.

'저 오늘 수성못 나왔어요. 이러다가 우울증 걸릴 거 같아서. 마스크 쓰고 장갑도 끼고 나와 봤는데 사람들 꽤 있어요. 움직이니까 좀 나아요. 밖에서는 감염위험 별로 없다니까 간단한 산책이라도 해 봐요. '

이 이웃의 말이 맞았다. 우울할 때,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만사 귀찮아 집에만 있다가도 잠깐 용기를 내 밖에 나가 햇살을 맞고 움직이다 보면 우울은 한층 엷어지기 마련이다. 상담소에서 내가 내담자들에게 해 주었던 그 조언들을 우울에 빠져들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3월의 첫 월요일. 난 이 이웃 덕분에 용기를 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땀이 나게 걸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산책로에서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훈훈해져 왔다. 아마 이들도 놀라고,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화가 나는 마음을 이겨내고 밖으로 나왔을 터였다.

대구의 차도는 여전히 한산하고, 사람으로 북적대던 극장, 식당, 매장들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다시금 일상을 살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등산로, 산책로, 야외 공원 등 비교적 안전하다는 열린 공간에 나가 햇살을 쪼이고, 몸을 움직이면서 움츠러든 마음을 펴 보려고 애쓰고 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새삼 소중해진 일상을 되찾을 날이 곧 오지 않겠는가. 대구 시민들의 마음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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