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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소재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채택되었다. 나는 걱정거리가 참 많은 사람이다. 왜 이렇게 걱정이 많으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불확실하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그런 상황에 놓이면 불안해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사람들에게 참 많이 묻고 다녔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 확신에 가득 찬 행보를 보이거나, 인생의 한 단계를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불안함을, 불확실함을 어떻게 이겨 내느냐고 물었다. 이 기사는 연말을 맞아 각자만의 방식으로 불확실함을 버텨내는(혹은 견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불안함을 어떻게 견뎌내고 이겨내시나요?

A(33)는 소위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뒤에 회사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그래도 카페가 그럭저럭 잘 되지만 경쟁이 치열한 탓에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아마 한국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본 감정 아닐까. 

회사를 퇴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게 컸다. "지금 정도 벌이에 지금 정도 자유시간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인생 목표"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요즘에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나 웹 소설 창작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했다. 불안한 미래를 위해 들어놓은 보험 같은 개념이라고 했다.

"남들은 휴학을 하고 불안해 하는데 나는 불안해서 휴학을 못했다"고 나에게 말해준 B(26)는 서울시의 청년공간인 '무중력지대'에서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퇴직을 하고 소극장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배우도 겸업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한 군데에 머무르는 직업을 가지지는 못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해준 그는 나에게 색다른 얘기를 해줬다. 

보통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통념상 배고프다는 선입견 혹은 팩트(?)가 있지 않나. 그런 데서 오는 불안함은 없느냐는 나의 질문에 B는 주변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보다 나름 안정적으로 벌고 있는데, 그래서 오히려 돈 버는 일을 하면서 예술가로서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더 크다고 했다.

C(21) 역시 대학을 다니면서 불안해 하는 사람이다. IT계열 전공을 선택한 그는 강의를 듣고, 컴퓨터로 코드를 짜고, 시험을 치는 식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자꾸 자신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 학내의 학생운동과 공동체, 교양 강의를 찾아다니고 있다. 전공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은 작아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 환경에서 벗어나는 자신이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 갈등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봉착하는 딜레마일 것이다. C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욕망과 본인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D(22)는 졸업 이후에 대학원 진학을 고려 중인 학부생이다. 하지만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긴 해도 정작 대학을 졸업한 뒤에 무엇을 하며 삶을 영위할지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고 했다. 안정된 삶을 상상하기 힘들어서 불안하다고. 특히 그의 불안에는 소위 '지방 청년'이라는 정체성도 한몫한다. 그는 나에게 "지역(지방)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고립적 성격 탓에 답답하고 무기력하다"라고 말했다. 서울로 간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 했다.

E(20)는 인터뷰이 중 유일하게 '갭이어(고교 졸업 후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보내는 1년을 의미)'를 가져본 사람이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었다. 박근혜 퇴진 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말 지방의 고등학생이던 그는 학내의 인권동아리 친구들과 촛불집회를 기획했는데, 정보과 형사도 붙고 학교에서도 압박이 들어와 이참에 자퇴를 해버렸다.

너무 가볍게 약술했지만, 그 이후 1년 동안 정당 운동사를 공부하고, 책도 읽으면서 보냈다. 원래는 대학을 안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시간을 보내 보면서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서 대학에 오게 되었다고.  

F(29)는 대학 입학 이후 1학년 1학기를 보내고 거의 10년 동안 내리 휴학 중이다. 어릴 때부터 만성 질환을 겪었고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았던 그는 그 10년의 시간을 두고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고 어딘가가 자꾸만 아픈 것 같은 시간을 힘겹게 보냈다.

투병 기간이 길어서 대학도 거의 다니지 못했고 노동 경험도 없는 상황에서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갔다. 그는 휴학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한 것이라고 했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불안감을 이겨내거나 견뎌내기보다는 "그냥 앓았다". 최근에야 3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삶의 통제권과 기획권을 되찾아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왜 우리는 대학 이후의 갭이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사실 한국사회도 갭이어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긴 하다. 하지만 사전적 정의 그대로 고교 졸업 이후 대학 입학하기 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만 논의가 되는 듯하다. 나는 궁금해졌다. 대학입학 전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대학 입학 혹은 졸업 이후의 시간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보내거나, 고민하는 일 역시 중요한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특정한 시점만을 갭이어라고 부르기보다는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징검다리를 놓는다는 관점으로 갭이어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인터뷰 기획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징검다리를 세워서 자기만의 갭이어를 기획해내는 사람들만큼이나 징검다리를 세우는 것마저 사치거나 자꾸 실패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중요할테다.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징검다리를 세우는 것이 힘들어서 불안감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의 고민이었다. 

인터뷰 중 C는 자신의 고민을 두고 "흔해빠진 자가당착"이라고 했지만, 흔해 빠졌다는 것은 결국 많은 이들이 하고 있는 고민이라는 것일 테다. 우리 사회는 이 자가당착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우리네 삶을 규정하는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테니까. 그런데 불투명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이나 목표를 잘 구현해내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다던 C나,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예술가들을 본받으면서 음악을 하고 싶다던 D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때로는 누군가에겐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E와 B가 해준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갭이어를 가져본 입장에서 E는 갭이어가 정말 중요한 인생 경험이 될 수 있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징검다리 개념의 갭이어가) 진짜로 필요하다고 봐요. 회사든, 대학원이든, 인생의 전환점을 가지게 되는 시기에는 짧게라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이후에도 또 갭이어를 무조건 가질 겁니다." (E)

"평생 직장이 없는 시대에 우리 모두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평생을 갭이어로 살고 있지 않나 싶네요." (B)

태그:##갭이어, ##인터뷰,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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