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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함께 이끌었던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창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함께 이끌었던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창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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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전국적으로 천만 촛불을 밝히는 불쏘시개가 돼 박근혜를 탄핵시킨 계기가 됐습니다."

경찰 물대포에 맞아 숨진 고 백남기씨 3주기를 맞아 사단법인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이사장 정현찬, 아래 기념사업회)가 14일 오후 5시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창립했다. 이날 창립식에는 백남기씨 유족 박경숙씨와 백도라지씨를 비롯해 농민·노동·시민사회단체 대표와 시민 1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은 백남기씨가 박근혜 정권 당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정확히 4년째 되는 날이었다. 백씨는 지난 2015년 11월 14일 광화문 앞에서 열린 제1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 살수차가 직사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백씨는 당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겼으나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고 317일 만인 이듬해 9월 25일 숨졌다. 향년 70세였다.

"백남기 농민 희생으로 1700만 촛불이 일어나"
 
 고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함께 이끌었던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창립식’에서 고인의 정신을 기리며 제작한 추모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함께 이끌었던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창립식’에서 고인의 정신을 기리며 제작한 추모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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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 창립식 참석한 딸 백도라지씨 “조금씩 바꿔나가는 첫걸음 됐으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숨진 고 백남기씨 3주기를 맞아 사단법인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가 14일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창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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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농민회에서 고인과 함께 활동했고 '백남기대책위(생명과 평화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던 정현찬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날 "백남기 농민이 재단에 바쳐져 1700만 촛불이 일어났다"면서 "1700만 명이 모여도 폭력집회가 아닌 평화로운 집회로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것도 생명평화일꾼 백남기의 정신, 이 땅의 노동자와 농민의 힘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정 이사장은 "노동자, 농민의 삶이 박근혜 정권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면서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는 농업을 포기하는 정책이다"라고 현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정 이사장은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보다는 농업 정책이 나아지리란 희망을 가졌는데 그 희망마저 분노로 변하고 있다"면서 "이 기념사업회가 할 일이 백남기 정신, 이 땅의 농민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남기씨 딸 백도라지씨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모여서 감사하다"면서 "시간이 꽤 흐르긴 했지만 농민들이나 국민의 현실이 확연히 나아진 것은 없지 않나, 마음을 모아 하나씩 바꿔나가는 첫걸음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이날 창립선언문에서 "그 위대하고 아름다운 1700만 촛불대혁명은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 추운 겨울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자 어른아이, 남녀노소, 지역계층 할 것 없이 광장에 나왔던 동력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라면서 "이명박, 박근혜 10여 년에 쌓인 적폐가 시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지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보성 출신의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이날 "백남기 농민의 거룩한 나라사랑, 농업·농촌사랑을 기념하고 그의 가치를 계승·기억할 수 있는 기념사업회 창립은 살아 있는 자들의 의무"라면서 "기념사업회는 농어민과 도시공동체 장학사업, 농어민 교육·문화사업, 귀농정착 사업, 우리밀 산업 활성화 사업, 노동자·빈민 연대사업, 현장체험 사업, 생명평화, 통일세상 구현 등을 꾸준히 전개해 나가면서 백남기 농민의 가치와 철학을 계승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경찰 과잉진압으로 사망", 국무총리-경찰청장 사과, 책임자 처벌
   
 고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함께 이끌었던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해 고인의 정신을 기리며 노래 <농민가>를 부르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함께 이끌었던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해 고인의 정신을 기리며 노래 <농민가>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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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1월 24일엔 '백남기대책위'가 발족해, 박근혜 정부 폭력을 고발하는 농민대회, 시국미사 등 활동을 이어갔고, 2016년 9월 12일에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백남기 농민 청문회가 열렸다. 백씨 사망 직후인 9월 29일에는 각계인사 3천 명이 고 백남기 농민 사망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을 발표했고, 10월 1일 대학로를 시작으로 매주 추모대회가 이어졌다.

백남기씨 추모 열기는 박근혜 퇴진 촛불로 이어졌다. 2016년 11월 5일에는 광화문광장에서 백남기 농민 영결식과 박근혜 퇴진 2차 촛불집회가 함께 열렸다. 백씨의 유해는 다음날인 11월 6일 보성군 생가와 광주 금남로 노제를 거쳐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지에 안장됐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7년 6월 16일 경찰청장이 공식 사과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도 1주기를 앞둔 그해 9월 17일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도 지난해 8월 21일 백남기씨가 경찰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다고 결론지었고,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7월 26일 피해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사과했다.

백남기씨 가족과 농민들은 당시 경찰 책임자들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했는데, 법원은 지난 8월 9일 항소심에서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총경급 간부, 현장요원 등 4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관련기사 :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 관한 항소심 판결의 의의 http://omn.kr/1koji )

서울대병원은 당시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에 '병사'로 잘못 적어 사회적 공분을 샀지만, 지난 2017년 6월에야 뒤늦게 '외인사'로 바로 잡았다. 또 법원은 지난 10월 서울대병원과 당시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가 백남기씨 유족에게 54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화해권고 결정을 해 서울대병원과 유가족은 수용했으나 백 교수는 불복했다.

[백남기의 삶] 박정희 독재에 맞섰던 '밀농사꾼', 박근혜 정권에서 사망
  
 고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함께 이끌었던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해 고인의 정신을 기리며 노래 <우리밀밭에서>를 부르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함께 이끌었던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해 고인의 정신을 기리며 노래 <우리밀밭에서>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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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씨는 1947년 8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광주서중과 광주고를 졸업했고 1968년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으나 박정희 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벌이다 제적과 복교를 반복했다(중앙대는 지난 2017년 12월 6일 백남기씨에게 명예학사 학위를 수여했다). 지난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계엄군에 체포돼 징역 2년 선고를 받고 이듬해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에는 고향 보성으로 돌아가 마지막까지 농민으로 살았다.

백씨는 지난 1986년부터 가톨릭농민회에서 활동하며 전남연합회장과 전국부회장을 지냈고,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을 맡아 끝까지 우리밀밭을 지켰다. 가톨릭농민회,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등에서 백남기씨와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 준비 작업에 들어가 이날 발기인총회와 창립식에 이르렀다.

백남기 추모곡도 중앙대 후배들이 직접 만들고 불렀다. 중앙대 출신 작곡가인 김정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는 지난 5월 '우리밀밭에서'라는 노래를 만들어 백남기 3주기 추모제에서 처음 공개했다. 이날 노래도 중앙대 졸업생들이 지난 2월 만든 노래패 '어울소리'가 불렀다.
 
"송글송글 땀방울이 옷깃을 적실 때 밀 이삭은 노랗게 물들어 가는데, 사나운 비가 퍼붓던 날에 온몸으로 맞으시며 떠나가신 그대, 그 모습 아련히 우리밀밭에 떠오를 때 비 그친 언덕에 무지개 찬란하네, 황금물결 춤추는 우리 밀밭에서"(김정희 작사·작곡 '우리밀밭에서' 2절 가사)
 
[정현찬 이사장 인터뷰] "백남기 정신은 이 땅 농민들의 정신"
  
 '백남기대책위(생명과 평화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던 정현찬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백남기대책위(생명과 평화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던 정현찬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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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과 가톨릭농민회 회장을 지냈고, 백남기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았던 정현찬(71) 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백남기 정신은 이 땅 농민들의 정신"이라면서 "한국 농업과 농민의 생존권을 지키는 활동, 아울러 백 농민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인권, 민주주의, 정의를 지키는 활동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 가톨릭농민회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지켜 본 고인의 모습은 어땠나.
"평소 자기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항상 낮은 자세로 지역 농민들과 함께한 모습이 기억에 남고, 현장 농민과 어울리는 마당, 논두렁 밭두렁에서 막걸리 한잔이라도 나누던 게 기억에 남는다. 백남기 농민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밀이 사라지고 있는데, 우리 농업이 벼랑 끝에 몰렸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밀을 살릴 수 있는가 현실적인 얘기를 많이 했다."

- 고인이 우리밀 농사에 애착이 컸다. 이유가 궁금했다.
"농촌 현장에서 손수 농사지으면서 우리밀을 살려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미국 밀을 98% 이상 갖다 먹는데 방부제나 살충제가 많이 섞여 있어 우리 국민 건강을 책임질 수 없다, 우리밀이라야 국민이 건강하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꼭 우리밀을 살려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 기념사업회를 통해 되살리려는 '백남기 정신'은 무엇인가.
"고인이 살아온 길을 더듬어보면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고 농촌에서도 정치하라는 말도 있었지만 욕심내지 않고 농민들 속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면서 한국 농업과 먹거리 고민을 더 깊이 했다. 백남기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이 땅의 농업과 식량, 먹거리를 위해, 통일된 뒤 남북한 식량 문제까지 같이 고민했던 사람이다. 그게 백남기 정신이고 우리 일상생활 속에 그 정신이 묻어 있다고 생각한다."

- 최근 우리 정부가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하면서 농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백남기 촛불이 꺼지지 않고 광화문 1700만 촛불로 이어져 박근혜 살인정권을 물러나게 하고 새 정권이 들어서 많이 농민들이 많이 기대했다. 촛불로 만들어진 정권은 농민, 노동자 생활에 관심이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개도국 지위 포기는 한국 농업을 포기한 걸로 본다. 개도국은 지금까지 WTO에서 관세나 보조금을 예우해줬다. 선진국에 맞서 농업이 경쟁력이 갖도록 하자는 게 개도국 지위다. 전체 경제가 아닌 농업만 놓고 보면 계속 개도국 지위를 받아 한국 농업을 보호해야 하는데 이걸 포기한 것은 한국 농업을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 농민단체에서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에 걸었던 기대에 상당히 어긋나고 실망스럽다."

- 백남기씨도 당시 한국 농업을 살리자고 투쟁했다.
"당시 민중총궐기는 노동자, 농민, 빈민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대회였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박근혜 정권에게 농민의 삶을 보장하고 식량을 안심하고 생산하게 보장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었는데 그 정신은 어디 가고 없고, 박 정부가 백남기 농민 사태를 수습하는 데 급급해 본래 정신을 잃었는데 지금 이 정부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제대로 장례 치르고 보상받고 끝내는 게 백남기 정신이 아니다."

- 그동안 공권력에 의한 사망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는데, 고인의 투쟁 목적이었던 농민 생존권 문제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가.
"농민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 백남기 정신을 살리려면 농업문제, 식량문제 다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고 자급할 수 있는 식량이 20% 안팎인데, 기본 식량만이라도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고인에 대한 정부의 공식 사과와 책임자 처벌로 명예회복은 어느 정도 됐다. 기념사업회에게 남은 숙제는 무엇인가.
"백남기 정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 땅 농민들의 정신이다. 이 땅의 농업을 지키기 위한, 농민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는데 새 정부에서도 그 정신이 온데 간데 없어졌다. 앞으로 기념사업회가 바로 할 일이 그런 백남기 정신, 이 땅의 농민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면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졌을 때 인권, 민주주의, 정의 문제가 다 사라졌다. 우리가 백남기 농민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박근혜 체제 때문 아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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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인권 분야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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