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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없어지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어머니는 올해 87세로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막내아들이 어떻게 됐는지 꼭 알고 싶다는 소원을 풀어드리고 싶다. 동생이 학년 대표를 맡다 보니 요시찰 인물이 된 것 같다. 사건을 잘 아는 누군가가 이제라도 양심선언을 해주길 간곡히 기다리고 있다"(실종된 서울대 법대생 노진수씨 형 노대영씨)
 
 지난 4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대 법대생 노진수(실종 당시 20세)씨 실종에 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맨 왼쪽이 둘째형 노대영씨다.
 지난 4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대 법대생 노진수(실종 당시 20세)씨 실종에 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맨 왼쪽이 둘째형 노대영씨다.
ⓒ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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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서울대 앞 한림독서실에서 실종된 노진수(실종 당시 20세)에 대한 유엔 측의 강제 실종 조사 권고에 한국 정부가 '더 조사해 볼 만한 여지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진수씨는 1982년 5월 22일 한림독서실에서 공부하던 중 낯선 남자 세 명을 따라 나간 뒤 실종됐다. 당시 그는 1학년 대표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이후 37년이 지난 오늘까지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초 노씨의 가족과 노사모(노진수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가족·친구들 모임)는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에 노씨 실종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노씨 실종 사건은 과거사 사건이 유엔에 접수된 첫 사례다.

WGEID는 해당 사건을 단순 실종이 아닌 '강제실종'(국가 요원이나 국가의 허가·묵인을 받은 개인·단체에 의한 체포, 감금, 납치) 가능성이 높은 사건으로 보고, 한국 정부에 사건을 조사해 내용을 통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 측은 '추가 조사 여지가 더 없다'고 본 것이다. 노씨 가족과 노사모는 "우리 정부가 사건 조사에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성토하고 있다.

"의문사위가 이미 조사한 것" vs. "제대로 조사 못 해"

지난 7월 30일에 공개된 제118회기 WGEID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노씨는 1982년 5월 22일 서울대 앞 한림독서실에서 정보기관원(government agents)으로 추측되는 이들에 의해 연행된 뒤 37년이 지난 현재까지 생사와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노씨는 1981년 1학년 과대표를 맡았고, 법대 학생회 서클 '피데스'에 가입, 사회과학 세미나에 참여했다. 같은 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대동제' 행사에서 촌극을 기획해 무대에 올렸고, 검은 리본을 만들어 강의실 책상 위에 놓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노씨 사건을 지난 2000년 5~8월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추적 보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노진수씨 최종 목격자 독서실 총무를 찾아서 http://bit.ly/3J6DeW)
지난 참여정부에서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가 조사를 실시했으나 사건의 전모는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과 권고 2차 보고서>에 따르면, 의문사위는 지난 2004년 조사 당시 KBS <추적60분>으로부터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설악개발단(HID) 공작팀원이었던 제보자 박아무개씨(1969~1972년 정보사 복무)가 1982~3년경 신림동 고시촌 앞에서 정보사의 지시로 노씨를 동료들과 흉기(특별제작된 방망이)로 살해한 후, 차량을 이용해 강원도 고성 소재 도원저수지에 수장시키고 이후 사례비로 1000만 원 정도를 받았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박씨는 <추적60분>과 접촉해 이와 같은 내용을 제보, 진술했으나 의문사위엔 "돈이 궁해서 허위진술을 한 것"이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현재 정부는 ▲의문사위 조사 당시 한림독서실 총무를 못 찾은 점 ▲박아무개라는 정보기관 출신자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방송국 피디에게 용돈을 받아쓰고자 허위진술을 했다는 주장 ▲박씨의 최초 진술에 따라 도원저수지 유해 발굴조사를 실시했으나 유해 미발견 등 지난 2004년에 나온 의문사위 조사 결과를 그대로 인용하며 더 이상의 조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우리 입장은 의문사위 결정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며 "추가 자료가 있는지 확인하려 노력했지만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노씨의 형 노대영씨는 같은 날 기자와 통화에서 "당시 독서실 총무가 어머니와 누나에게 '기관원으로 보이는 낯선 이들이 찾아와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고 귓속말을 하더니 데리고 나갔다' '밖에 한 명이 더 대기하고 있었다'고 말한 것을 내가 분명히 들었다"면서 "서울대 학생 5000여 명이 시위한다고 언론에서 크게 보도됐던 1982년 5월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에 우리 진수를 데려갔다고 하면 보안사와 안기부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노대영씨는 이어 "당시 의문사위는 시간에 쫓겨서 제대로 조사를 못했다"면서 "배대준(<추적60분>) 피디가 취재는 했지만 의문사위에 출두를 안 한 걸로 알고 있다. 의문사위는 구속력이 없어서 더 조사를 못했고, 의문사위가 검찰에 사건조사를 권고했지만 한 번도 조사를 안 했다"고 호소했다.

"억울하다... 진수는 스스로 없어질 애 아냐"
 
 노진수씨 누나의 결혼식 사진. 사진의 제일 오른쪽이 노진수씨이다.
 노진수씨 누나의 결혼식 사진. 사진의 제일 오른쪽이 노진수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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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수씨와 서울대 법대 81학번 동기인 최봉태 법무법인 삼일 대표변호사도 기자와 통화에서 "당시에 제보자가 없는 말을 만들어 해야 할 구체적인 이유가 없다. 말을 해놓고 책임이 커지니까 없었던 일인 것처럼 번복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의문사위 조사 결정문을 보면 일반인이 보더라도 조사가 미흡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관악경찰서와 정보기관에 학원반 담당자가 다 있었는데 그들에 대한 기본조사조차 안 돼 있다"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과거 조사의 미진한 부분에 대해 최소한 가족을 불러서 어떤 조사를 원하는지 들어보지도 않으면 성의가 없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최 변호사는 현재 노씨 관련 기록들을 국가기록원에서 입수해 노대영씨와 함께 정리하고 있다. 노씨 가족과 노사모는 유엔 진정을 통해 특별한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향후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최 변호사는 "양심선언을 하도록 호소를 한다든지, 당시 정보기관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자료 요청을 한다든지 등 여러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노대영씨에 따르면, 노씨 가족 가운데엔 의문사 및 국가폭력 희생자가 셋이나 있다. 어머니 최소선(87)씨의 친오빠는 6.25 당시 보도연맹에 가입됐다가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큰아들은 대구 경북중학교 3학년 재학 당시 창문을 닦다가 2층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부모는 아들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학교를 상대로 소송했으나 패소했다. 큰형의 죽음을 겪고 법학을 배워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던 막내아들은 37년 전 실종됐다. 

노대영씨는 "집안 형편도 그렇고 진수는 스스로 없어질 애가 아니다"라며 "내 동생은 너무 억울하다. 큰형도 유리창 닦다 죽었고, 두 살 어린 동생마저 이렇게 됐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동생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어 하시는) 소원을 들어 드리고 싶다"고 호소했다.  

현재 노씨 가족은 노씨를 납치·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사 소속 설악개발단 관련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또 노씨의 실종과 관련한 '제보'와 '양심선언'을 기다리고 있다. 노대영씨는 "미디어가 보도를 많이 해주면 양심선언이나 제보자가 나오지 않겠나"라며 "당시 독서실 총무를 찾아서 박씨(제보자)와 대면조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의문사위의 자료 요청에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은 "노진수 관련 수사기록 및 자료가 없다"고 통보했다. 또 법무부는 노씨에 대한 공안 조회 요청에 대해 '대외비'라는 이유로 회신을 거부한 바 있다. 관련자들은 유엔의 조사요청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최 변호사는 "대명천지에 스무 살 학생이 사라졌는데, 민주화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한 명이 아니고 기관원들이 복수로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적어도 양심선언이라든지 자료가 나와야 정상적인 문명국가가 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진수 어머님이 살아 계시는데 규명할 것은 규명해야 눈을 감으실 게 아닌가"라며 "국가는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사를 해서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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