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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오후 6시 30분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11호에서 열린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의 문학작품집 <꽃송이>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꽃송이>는 조선학교(우리학교)의 동포 학생들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사에 보내온 시, 수필 가운데 52편을 추려 엮어낸 책이다. 이 날은 문집이 한국(남측)에서 책으로 첫 출판되는 뜻깊은 날이었다.
 
 꽃송이 출판기념회 풍경
 꽃송이 출판기념회 풍경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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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삼각대를 설치하고 현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는 입구 안내를 지나 행사장에 들어섰다. 당장 한가운데 테이블을 중심으로 왼쪽 오른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동포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학교 차별반대' 구호를 담은 투쟁의 현수막, 소소한 일상, 체육활동, 통일을 그리는 사진과 그림들을 쭉 훑었다. 학생들의 함박웃음과 함께 그려진 '꽃송이 –우리는 조선학교 학생입니다'의 봄빛 개나리색 현수막도 카메라에 담았다.

첫 순서로 주최 측인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 조선학교와 동포사회의 역사에 관한 소개말과 영상을 준비했다.

"오늘은 4월 24일로, 예전에 조선학교 아이들이 많이 탄압을 받고 오사카 지역에서 한신교육투쟁이 일어난 날이기도 한데요, 저희가 그 마음을 기념하면서 아이들의 유지를 한국사회에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 책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기준 일본에는 총 139개의 조선학교가 일본 곳곳에 있다. 유치반 41곳, 초급학교(초등학교) 53곳, 중급학교(중학교) 34곳, 고급학교(고등학교) 10곳, 대학교 1곳. 일본 정부와 미군정 GHQ(연합국최고사령부)의 탄압 속에서도 꿋꿋이 민족의 말을 피워낸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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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송이>는 올해로 41년의 역사를 맞은 동포 학생들의 문집이자 동시에 이날 막 세상에 빛을 본 책(신간)의 이름이기도 하다. 일본의 조선신보사는 1978년부터 시, 수필을 비롯한 조선학교 학생들의 글을 받기 시작했고 매해 <꽃송이> 문집을 펴냈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초급부(초등학교), 중등부(중학교), 고급부(고급학교) 학생이라면 그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매번 1000편의이 넘는 응모작 가운데 일부 입선작을 추려내 펴내는 문집 <꽃송이>. 그만큼 우리네 민족·통일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척 값진 결실이다.

책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글들을 다뤘다. 이 시기는 아베 정권의 등장 이후 조선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 중단, 차별이 노골화된 때이다. 축하영상을 보내온 최관일 조선신보사 주필은 "조선학교 학생들은 감성이 풍부하고 세상 모든 일에 대해서 민감합니다. 같은 주제로 글을 쓰게 해도 그림을 그리게 해도 일본학교 학생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슬기롭고 강인합니다"라고 전했다.

"우리 동포들이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해요. 말이 살아있다는 표현이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70년 넘게 싸워온 삶을 고스란히 담아주는 말 같아서 그걸 증명해주는 것 같아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판문점선언 1주년을 사흘 앞둔 날이었지만 여전히 엄혹한 민족의 분단이 작동되고 있음을 절감했다. 결정적으로 현장에는 동포 학생들과 출판에 도움을 준 조선신보사 관계자들이 찾지 못했다. 미국이 예상과 달리 2차 북미정상회담의 판을 깬 뒤 남북관계에 급제동이 걸린 탓이다. 영화 <귀향>의 주인공이자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새내기가 된 강하나 학생, 어린 동무학생들의 인사말과 공연이 영상으로나마 전해져 마음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다.
 
 출판기념회 참가자들이 공연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출판기념회 참가자들이 공연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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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 사회는 이 책의 남측 출판을 그 누구보다 기대하며 눈물짓고 반겼다고 한다. 1978년부터 문집이 세상에 나왔으니 41년이 흐른 이제야 '남쪽 조국'에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만큼 남과 북으로 갈라 다퉈오던 분단의 세월, 그 질곡이 퍽 깊었다는 얘기다.

<꽃송이>는 지금은 노인이 된 재일동포 1세들과 한창 자라나는 재일동포 4세들의 마음이 한데 모여 완성된 문집이라는 특징이 있다. 해방 직후 일본 땅에 남은 재일동포 1세 어머니, 아버지들은 구두를 닦고 김치를 팔고 공사장에서 땀을 흘려 한 푼 두 푼 모아 문집 출판을 물심양면 지원했다.

그런 정성이 하나 둘 모여 몇 해 못가 중단될 줄 알았던 문집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심사를 주관하는 조선신보사 꽃송이 사무국에 앞 다퉈 글을 보낸 아이(재일동포 2세, 3세)들이 성장해 사무국 직원이 되어 후배인 4, 5세의 글을 싣고 있다고 한다. 동포들은 일상생활이 일본어로 이뤄지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넋과 글을 끝내 지켜 '꽃송이라는 이름의 민족사'를 한아름 피워낸 것이다.

손미희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공동대표에 따르면 출판은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의 준비를 거쳤고 출판기념회 바로 전날인 4월 23일에야 인쇄소에서 급박하게 책이 나왔다. 판문점선언 1주년을 기필코 맞추기 위해 일본의 꽃송이 사무국과 남측의 꽃송이 기획팀이 무던히 소통하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 마음을 아는 것인지 지바(千葉) 초중급학교 학생들은 영상 속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너와 나 손잡고 우리는 가요. 이 세상 둘도 없는 우리 학교로. 우리 글 우리 맛 우리 장단 우리 풍습 우리 함께 빛내가자. 우리의 보물 세찬 풍랑도 헤쳐가자 라라라 우리는 밝은 미래 달려 나가자."

영상으로 전해진 동포학생들의 공연에 비슷한 또래인 남측의 꽃송이들도 화답했다. <꽃송이>의 출판을 알리는 영상을 제작하며 "동포학생들의 일상이 한국의 여느 일상과 다름 없구나"를 처음 알았다는 중학생, 조선학교 학생들을 상징하는 '저고리'라는 제목의 노랫말과 가락을 손수 지어 노래하고 피아노로 연주한 고등학생들, 맨 앞자리에 앉아 까르르 웃다가 합창공연을 마친 뒤 통일염원을 담은 한반도(통일)기를 활짝 펴 들어 보인 초등학생들까지. 적어도 현장에서는 통일이 머지않은 듯했다.
 
 출판기념회 참가자들이 공연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출판기념회 참가자들이 공연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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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선언시대". 이날 출판기념회 현장에서 나온 말이다. 지난해 평창겨울올림픽부터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이어진 흐름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통일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눈부신 민족사의 쾌거였다. 그러나 판문점선언 뒤 1년, 분단의 질곡이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는 풍경이다.

결국 기념비적인 4·27 판문점선언 1주년 당일 남과 북은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한때 가까워진 듯했던 통일이 다시금 살짝 멀어졌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이 문제를 풀려면 결국 우리(남측, 북측,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 모두가 분단을 통일로 잇는 역사의 주역으로 거듭나야 한다.

출판기념회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북적였고 따스했다. 참가자들의 박수소리 저마다에는 적잖은 기쁨이 깃들어 있었다. 어쩌면 마음 한편에는 동포들과 함께 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마음도 적잖게 섞여있는 듯했다. 출판기념회의 마지막 순간, 모두가 소리 높인 다짐의 구호소리가 공간을 꽉 채웠다.

"고교무상화 적용하라! 조선학교 차별반대!"

"우리학교 사랑해! 아이들아 사랑해!"

 
 우리말과 일본어로 '고교무상화적용'이 적힌 구호를 든 참가자들
 우리말과 일본어로 "고교무상화적용"이 적힌 구호를 든 참가자들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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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마치고 책을 펼쳐들자마자 채 마르지 않은 듯 풋풋한 잉크냄새가 코끝에 풍겨왔다. 4월 23일 인쇄를 막 마쳤기 때문일까, 동포학생들의 정겹고 때 묻지 않은 따스한 감성을 물씬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포학생들의 우리학교식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고스란히 담긴 책장을 넘기며 앞선 영상 속에서 "글로 맛으로"를 노래한 아이들을 떠올렸다. 활짝 피어난 우리학교 아이들 저마다, 싱그러운 꽃송이들이 한아름 피어있는 고운 작품이다. 부디 이 책을 계기로 우리 동포 학생들, 꽃송이들의 환희가 일본과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가길 바란다.

그러다보면 금세 분단을 물리치고 조국통일도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올 것이다.
"아무리 역풍이 휘몰아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조선민족의 의지를
우리는 대대손손 이어받았으니 더 조금만 견디면 창창한 미래를
열어갈수 있을것이예요.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있어요.
글세, 통일은 모리오까역부터도, 오오도리부터도 멀리멀리
돌아서 가버렸던 것 같지만 이제는 우리 집문을 두드리는것
같애요. 참말, 할매가 목이 빠지게 기다리셔요.
나는 하늘을 우러러 소리없이 말한다.
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은 온다고."

- <꽃송이>에 실린 최혜림 학생(도쿄조선중고급학교 2학년생)의 글 '통일은 어디까지 왔나요'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권연구소'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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