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역삼역 인근 GS본사 앞에서 단식투쟁 중인 포천석탄발전소반대공동투쟁본부. 왼쪽이 최태호(포천 양문4리 이장) 운영위원, 오른쪽이 홍영식 사무국장.
 역삼역 인근 GS본사 앞에서 단식투쟁 중인 포천석탄발전소반대공동투쟁본부. 왼쪽이 최태호(포천 양문4리 이장) 운영위원, 오른쪽이 홍영식 사무국장.
ⓒ 원동업

관련사진보기

 
서울에서도 강남,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번화한 거리는 테헤란로일 것이다. 삼성-선릉-역삼-강남으로 이어진 대로변. 재벌 본사가 즐비한 역삼역 앞 GS 본사 건물 앞에 작고 노란 농성 텐트가 있다. 영화 <베테랑>이 떠올랐다. 400만 원 때문에 시위했던 트럭 운전사에게 재벌 2세 조태오는 "어이가 없네!"란 대사를 시전한다.

지난 4일, 텐트 안에서 포천석탄발전소반대투쟁본부 홍영식 사무국장과 포천 양문4리 최태호 이장을 만났다. 두 남자는 과연 무엇을 말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일까?
   
- 단식은 분신 같은 죽음을 빼놓고는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는 어떤 일들, 상황이 궁금하다.
"포천은 내륙 분지다. 여기에 들어서는 석탄발전소 반대운동을 7~8년여 해왔다. 2년여 전엔 터빈(중량물) 반입저지 투쟁도 40여 일 했지만 결국 길을 터줄 수밖엔 없었다. 어느새 다음 달엔 발전소 준공이 나오고 상업 가동이 시작된다고 한다. 현재까지의 투쟁으로 막을 수 없다면 단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난해 8월 8일 포천석탄발전소 시범 운용시 폭발사고가 나기 전까지, 준공이 코앞인 것도 몰랐었다."

- 올해 우리 사회는 미세먼지를 재앙처럼 생각했다. 훨씬 이전에 계획된 것이겠지만, 포천이라는 '도시'에 '석탄발전소'가 기획되고 진행까지 되었다는 점이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걸 포천시가 허용한 것인가?
"원래 안은 포천시에서 장자산업단지를 계획하면서 사업장별로 LNG(Liquefied Natural Gas, 액화 천연 가스)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포천엔 염색과 피혁공장 등 열원과 에너지를 수요로 하는 공장이 많다. 그때 STX(사업 허가 후 GS E&R이 인수)가 제출한 집단에너지사업 계획제안서에 시장이 동의하며 사업이 날개를 달았다. 개별공장별로 보일러를 때는 것보다 집단에너지시설을 만들어 굴뚝 단일화하는 것이 효율성 높고 오염 방지에 '타당성 있다'는 결론이었을 거다.

환경부의 부당성 경고 등은 행정적으로 적극 뒷받침되며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게 된다. 장자산업단지 공장들만으로 에너지 수요량이 부족해 집단에너지시설 허가에 난관이 오자 인접한 신평 2리 집단화단지에도 공급하겠다고 하여 허가를 받았다. LNG가 석탄으로 바뀐 건 비용, 즉 경제성 때문인 걸로 안다. 최근엔 GS E&R이 'GS 그린에너지'로 자회사를 만들어 그린워싱을 했다. 석탄발전소 건설사는 GS 건설이다.

- 그곳 주민이신데 현재 느끼는 포천의 공기, 물은 어떤가? 포천이란 도시가 어떤 곳인가를 포함해서 이야기해 달라.
"물은 약 20여 년 전부터, 공기는 10여 년 전부터 확연하게 더러워지기 시작한 거 같다. 환경에 대한 철학과 일관된 정책이 없는 것이 문제다. 공장 규제가 없다. 포천에는 동두천 등에서 옮겨온 '쓰레기소각공장'(SRF: Solid Refuse Fuel 생활폐기물, 폐합성수지, 폐고무 등을 고형으로 만든 연료를 태워 열원을 얻는다) 등이 여러 곳 있다. 가산면, 신북면, 영중면에도 있다.

그 연료를 너무 많이 태우고, 생활폐기물도 그냥 태워버리는 경우도 많다. 동두천의 신천을 망가뜨린 주범이 가죽피혁 공장 폐수인데 그것도 들어왔다. 가구공장도 니스칠하고 화학 가공했던 폐나무를 그냥 태워버린다. 포천은 분지라 한번 생긴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은 도시에 그냥 머문다." 

포천 같은 지방도시에 쓰레기소각공장이 난립한 이유
 
오른쪽 위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대기로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 도로를 운행 중인 석탄운반트럭들, 석탄가루로 오염된 하천, 포천시민들의 석탄발전소 반대 집회 모습.
 오른쪽 위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대기로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 도로를 운행 중인 석탄운반트럭들, 석탄가루로 오염된 하천, 포천시민들의 석탄발전소 반대 집회 모습.
ⓒ 포천석탄발전소반대투쟁본부

관련사진보기

   
SRF를 찾아보았다. 폐플라스틱(FPF), 폐타이어(TDF), 폐목재(WCF) 등으로 나뉘며, 이전엔 쓰레기로부터 얻어지는 연료 RDF(Refuse Derived Fuel)로 불렸던 물질. 2013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2010년 기준 전국엔 103개 업체가 18만8457톤의 SRF를 생산했고, 2012년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 도입으로 제조업체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환경부가 2003년부터 '고형연료제품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수도권과 대도시에서도 제한 없이 사용돼 왔다(2019. 3. 13. <에코타임스> 기사 참조).

'쓰레기를 신재생에너지'로 둔갑시킨 정책의 시초는 이명박 시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도 이어갔지만, 사실 여느 정부도 쓰레기를 애초부터 줄이는 정책을 펴오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국민들도 쓰레기 대량 생산자들이 됐다.

2016년 우리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kg. 자기 몸무게보다 대략 1.5~2배 많은 쓰레기를 매년 생산한다. 재활용을 늘리는 정책에선 1회용품 생산에도 관대하다. 한국인이 비닐봉지 사용량은 년간 1인당 420개. 아예 쓰레기를 줄이는 정책을 펴는 핀란드는 한국의 1/100 수준으로만 비닐봉지를 사용한다.(조명래 한국환경정책평가원장. 2018. 4. 17. <한국일보> 참조). 

잘 분리된 폐비닐, 폐플라스틱, 폐섬유가 직행하는 곳은 매립장. 그 외는 '재활용(쓰레기)'되어 연료(SRF)로 태워진다. 포천 같은 대도시 주변에 SRF 공장이 난립한 이유다. 대도시 서울 등의 재활용 쓰레기 처리를 지방 도시 동두천, 포천, 연천 같은 곳이 맡으며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석탄발전소는 정말 아니지 않은가!
 
수의사인 홍영식 사무국장은 포천지역에서 농장도 운영했었다. 악화돼 가는 포천의 환경에 더해 석탄발전소까지 세워질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회의에 참여했다가 발목을 잡혔다’.
 수의사인 홍영식 사무국장은 포천지역에서 농장도 운영했었다. 악화돼 가는 포천의 환경에 더해 석탄발전소까지 세워질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회의에 참여했다가 발목을 잡혔다’.
ⓒ 원동업

관련사진보기


- 석탄발전소가 세워지면, 포천시나 GS가 계획한 대로 오염이 줄어들 가능성은 없나? 현재 개별공장이 내뿜는 오염원을 대체하고 하나의 굴뚝만 세운다면 오히려 개선될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GS가 그런 입장이다. 그럼 개별 SRF 공장이 문을 닫느냐면 그게 아니다. 열원 공급이 사기업에 독점되면 가격이 인상될 거라는 불안감이 있다. 굴뚝을 없애지 않겠다는 거다. 원료인 석탄을 인천에서 트럭으로 싣고 온다. 하루에 25톤 트럭 100여 대가 포천에 드나드는 거다. 완전밀폐 운행을 하는 게 아니다. 석탄을 덮은 호로가 펄럭이며 가루가 날린다. 이미 충남 등지 석탄화력발전소 부근 상황은 잘 알려진 바다. 포천엔 이미 1000여 대의 석재운반 트럭들도 있다."

-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적인 투쟁도 있나? 준공금지가처분 신청이라든지. 
"그쪽 부분을 진행하지 못했다. 자료가 없었다. 상담을 했던 변호사들도 이렇게나 공사가 진행된 상황에서 그 부분은 어렵다고 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하면서 모든 후보가 '포천석탄발전소 반대'를 외쳤다. 우리는 그 부분을 오히려 믿고 있었다. 그런데 관쪽에선 GS 입장을 옹호하는 공무원도 많다." 

- 단식을 통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포천 사람들 모두 석탄발전소가 나쁘다는 걸 안다. 그런데 움직이지는 않는다. 전철을 유치할 때는 1만3천여 명이나 광화문 가서 집회도 했는데… 힘을 모으고 싶었다. 단식을 통해 시민들을 결합하는 것이 첫 목표다. 둘째는 지난 지방선거 때 했던 약속들을 지키라고 정치권에도 요구하는 것이다. 셋째는 GS에 최소한 석탄 연료만이라도 LNG로 바꿀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석탄발전소는 정말 아니지 않은가!"

높고 번듯한 서울의 빌딩들, 잘 차려입고 길을 걷는 젊은 직장인들, 화려한 조명 안의 안락한 의자들과 가구들. 테헤란로 역삼역 부근의 풍경은 한 점 결점도 없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어두운 텐트 안의 두 남자는 쪼글쪼글 말라가고 있었다. 핸드폰 불빛을 산광시키느라 올려놓은 '생수통'이 그들의 유일한 '양식'이었다.

엄연히 다가오는 환경적 재앙 앞에서, 그걸 막아보겠다고 나선 두 남자가 수레바퀴 앞의 사마귀들 같았다. 그들을 밟고 수레가 지나간다면, 그 뒤로는 바퀴 자국이 남을 것이다. 미세먼지를, 석탄가루를, 폐기물을 태운 연기를, 우리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만약 이들의 투쟁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의 실패일 것이다. 미세먼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1회용품 쓰레기는 쌓일 것이고, 플라스틱을 먹는 고래도 살려내지 못할 것이다. 두 사람의 투쟁에 대해 우리 모두가 응원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태그:#포천석탄발전소, #석투본, #홍영식, #SRF, #포천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