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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한 이재록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지난 5월 3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한 이재록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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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이재록 만민중앙교회 목사가 여성신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정문성)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며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 20대 피해자들을 장기간 상습적으로 추행·간음했고, 집단 간음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이 목사의 혐의는 호감을 얻고 신뢰를 쌓은 뒤 이런 토대 위에서 성범죄를 자행하는,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의 전형이다. 지난 4월 JTBC <뉴스룸>은 이 목사의 성범죄 의혹을 처음 보도했는데, 여기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인 줄 알았거든요. 관계를 해도 아기가 안 생길 줄 알고, 피임이라는 개념도 없었어요."

"(이 목사가) 여기는 천국이다, 아담과 하와가 벗고 있지 않았냐…(너도) 벗으면 된다고… 너무 하기 싫어서 울었어요."


이 목사는 직통 계시와 신격화로 이미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합신) 등 개신교 주요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그러나 성폭력에 관한 한, 이단 규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른바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교단 목회자들도 성범죄로 자주 구설에 올랐고, 그 유형은 거의 예외 없이 그루밍 성범죄였다. 말하자면, 이단과 정통이 성폭력으로 '한 몸'을 이루는 셈이다. 

사실 교단을 막론하고, 또 정통과 이단을 막론하고 목회자들의 성범죄는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럼에도 성직자들의 성범죄는 그 자체로 심각하다. 더욱 심각한 건 범죄대상이 미성년자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지난 8월 '교회 부목사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한 신학교 학생이 숨진 사건이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 신문은 숨진 신학생이 남긴 유서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부목사는 나를 셀 수 없이 성폭행해왔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성년자일 뿐이었다'


바로 그 시기, 진보성향의 장로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 박아무개 목사가 강간미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런데 박 목사의 범죄대상은 자신의 조카였다. 실로 충격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박 목사는 항소했고, 항소심에서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목사들의 반응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학생의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부목사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실형을 선고받은 박 목사는 피해자인 조카를 상대로 무고 혐의로 맞고소하기까지 했다. 

이전에 논란이 일었던 목회자 성범죄의 주 대상은 여성도였다. 그러나 앞서 든 두 사례의 경우 성범죄 대상이 미성년자였고, 그중 한 사례는 친족(조카)이었다. 이번에 실형을 선고받은 이재록 목사 역시 여성도들이 미성년자였던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성범죄를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의 법은 더 엄격, 그런데 왜?

개신교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는 성범죄에 무척 단호했다. 예수는 이렇게 가르쳤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5:28

음욕을 품었어도 실행에 옮기지만 않으면 성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사회법의 관점이다. 반면, 예수는 음욕을 품은 시점부터 성립한다고 보았다. 예수의 법이 훨씬 엄격한 셈이다.

그럼에도 왜 목회자들의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오히려 더 진화하는 것일까? 우선 교단마다 만연한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들 수 있다. 각 교단마다 노회-총회로 이어지는 공적 기구가 있고, 이 기구에서 목회자 징계권을 행사한다. 그런데 이런 공적기구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목회자의 성범죄에 대해서 솜방망이 처분으로 일관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2010년 불거진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성범죄다. 징계권을 갖고 있는 예장합동 평양노회는 6년을 미루다가 2016년 결국 2개월 설교정지, 2년 공직정지 처분으로 사건을 매듭지었다. 

상대적으로 진보성향이란 평가를 받는 기장 교단이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2016년 <오마이뉴스>는 중국동포교회 김해성 목사의 성추문을 알렸다. 이러자 총회는 모호한 사과입장만 밝혔고, 관할 노회였던 서울남노회는 김 목사의 사임을 수리하는 것으로 사건을 '덮었다.' 

이번 박아무개 목사의 성범죄 사건과 관련해서도 기장 총회는 "교단적으로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하여 충격과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다"는, 다분히 의례적인 입장만 밝혔다. 이에 '성정의실현을 위한 기장 교역자모임'은 "가해자와 해당교회, 노회, 그리고 기장총회는 충격에 휩싸여 있을 피해자에게 그리고 교회의 신뢰를 무너뜨린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사회 앞에 사과하여야 할 것"이라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 관할 노회는 박 목사 징계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오히려 목회자 성범죄에 경종을 울린 건 사회법정이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전병욱씨의 성추행 행각이 형법위반이라는 판단을 최종 확정해 내렸다. 앞서 든 기장 소속 박 목사와 이재록 목사 역시 실형을 선고받았다. 

목회자 성범죄 부추기는 교회 내 권력구조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강호숙 박사는 교회의 남성중심적 권력구조가 성범죄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강호숙 박사는 교회의 남성중심적 권력구조가 성범죄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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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성범죄를 부추기는 더욱 근본적인 요인은 교회 내 권력구조다. 교회 내에선 성차별이 횡행하고, 권력구조는 남성 중심적이다. 이와 관련,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강사인 강호숙 박사는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교회중심주의 성찰' 세미나에서 교회의 성차별 실태를 고발했다. 

"여성의 자리, 이를테면 성가대 2/3 이상의 자리, 반주자, 헌금위원, 교사들, 식당 봉사와 안내위원의 자리가 없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현재 교회에서 여성의 빈자리는 일종의 '수발드는 여종'의 자리임을 금세 알 수 있다. 특히 보수교단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라 하여 여성의 소리와 여성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데, 이것은 인격박탈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강 박사는 그러면서 교회 내 성차별이 여성을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성폭력의 심각성을 외면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강 박사는 교회 내 성차별과, 남성중심주의가 가져오는 폐단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교회의 남성중심주의는 가부장적 성경해석으로 여성의 하나님을 거세시키며, 여성들의 실존적인 삶의 필요나 임신, 출산, 육아 등 여성의 경험을 담지하지 못하는 복음적 불통을 야기한다. 둘째, 남성중심의 교회운영과 당회, 노회, 총회라는 의결결정조직을 '금녀의 공간'으로 만들어 여성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차별적으로 대우한다.

셋째, 교회의 남성중심주의는 남성 목회자를 '신격화' 내지 맹신하게 함으로써 남성 목회자에게 성적으로 종속하게 만들며, 피해를 입은 여성을 오히려 가해자로 몰아가는 무자비성과 무책임성을 야기한다. 넷째, 한국교회의 주류는 여성을 개체존엄적 존재로 보기보다는 '남녀질서'에 따른 집단으로 취급하면서, 성차별과 성폭력 등 우리사회가 중요시 여기는 여성의 인권과 성 평등과 같은 중대한 젠더문제들(미투운동 포함)을 외면하고 있다."


원인을 파악했지만, 막상 목회자 성범죄를 막을 뾰족한 방안은 아직은 없어 보인다. 단, 이 점 하나는 분명하다. 목회자로부터 성적 수치나 범죄 피해를 당했을 때, 교회 안에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피해를 알려봐야 공적기구에서 정의를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보다 증거를 수집해 사회법정에 처벌을 호소하는 편이 효과적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록 목사의 실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태그:#이재록 목사, #전병욱 목사, #그루밍 성범죄, #김해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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