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 신지수

관련사진보기

  
20살 박아무개씨는 독립을 하려고 지난 8월 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억 소리가 났다. 천만 원이 훌쩍 넘는 보증금은 대학생인 박씨가 아르바이트로 벌기에는 불가능했다. 싼 곳을 찾아 서울 끝자락으로 밀려갔지만 박씨를 기다린 건 '살 수 없는' 공간이었다. 한 사람이 들어가면 가득 찰 정도로 좁고 곰팡이가 가득한 반지하 방이었지만 보증금 250만 원, 월세 30만 원이었다.

"서울 변두리도 이 정도인데 중심가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들은 막막할 것이다. 반지하 방의 월세와 보증금을 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제집 마련은 꿈도 못 꾼다."

박씨가 집값에 치이던 지난 8~9월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연속으로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집을 구하지 못했다. 결국 이날 달팽이집을 등에 맨 채 거리로 나섰다.

"보유세 조금 올렸다고 세금 폭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 신지수

관련사진보기

 
지난 1일이었던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민달팽이유니온 등 10여 개 주거시민사회단체는 3일 오후 1시 40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입자·청년·철거민 등 주거약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 주거정책에서 세입자·청년·철거민 등 주거약자들이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2018년 기준 대학교 1km 내에 있는 8.5평짜리 방의 평균 보증금은 2627만 원, 월세는 41만 원이라고 한다"며 "보유세가 조금 인상됐다고 세금 폭탄 운운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10월 1일은 세계 주거의 날이다. 각 국가가 인간답게 살 권리, 안정적으로 살 권리를 지킬 것을 세계적으로 합의한 날이다"라며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이날을 축하, 기념하지 못할 만큼 열악하다"라고 주장했다.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 신지수

관련사진보기

 
실제 서울에서 혼자 사는 청년가구 중 일명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라고 불리는 곳에서 사는 주거빈곤 가구의 비율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통계청 'KOSTAT 통계플러스' 여름호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 중인 20세~34세 1인 청년가구 중 주거빈곤가구의 비율은 2005년 34%에서 2015년 37.2%로 증가세다. 주거빈곤가구는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지하(반지하)·옥상(옥탑)거주 가구, 비닐하우스·고시원 등 주택 이외 기타 거처 거주 가구를 말한다.

'지옥고'에 사는 청년인 김경서 민달팽이유니온 기획국장(23)은 "월세 50만 원을 내고 반지하에 살고 있다"라며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보유세, 종부세를 강화하는 게 부동산 가격을 잡는데 유효한 정책이겠지만 병행돼야 할 것은 세입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완화하는 정책들이다"라며 "하지만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정책들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성토했다.

우인철 우리미래 대변인은 "20살에 서울에 올라온 뒤로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다"라며 "주민등록증에 주소 적는 칸이 다 찼다"라고 하소연했다. 우 대변인은 "정치권에서는 불법 위장전입을 하지만, 청년들은 어쩔 수 없이 전입을 하고 있다"라며 "대학생들이 집값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하는 현실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억 소리' 나는 돈벼락? 세입자는 '악 소리' 날 정도로 화나"

세입자들도 연이어 발표되는 부동산 정책이 전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박동수 전국세입자협회 대표는 "누구는 억 소리 나는 돈벼락이 떨어졌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세입자)은 악소리가 날 정도로 화가 난다"라며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세입자들은 작아진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현 주거대책은 집을 보유한 이들을 우대한다"라며 "그러니 빚내서 여러 채를 구입하게 되고 집값은 당연히 오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득 대비 부담이 가능한 임대료로,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원하는 만큼 살고 싶다"라며 "이는 당장의 세입자들은 물론 다음 세대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이 단체들은 "우리에게 집은 살만한 '집'이 아니라 삶을 짓누르는 '짐'이 된 지 오래다"라며 "사는 곳이 아닌 부동산 상품인 사는 것이 되면서 주거는 권리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주택시장에서 구매력을 갖춘 이들에 대한 부동산 정책만 있을 뿐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에 허덕이는 대부분의 세입자들과 주거권이 박탈당한 사람들의 권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 청구권 등 세입자 보호를 위한 임대차보호법 전면 개정과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대학생 공공기숙사 확중, 부동산 보유세 강화 등을 촉구했다.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주거약자들의 주거권 보장 요구하는 주거시민단체들
ⓒ 신지수

관련사진보기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부동산 상승으로 국회의원 85.4% 재산 증가', '고위공직자 3명 중 1명 강남3구 주택보유', '서울청년 5명 중 1명꼴로 옥탑, 고시원 거주' 등이 적힌 '주거불평등탑'을 뿅망치로 무너뜨렸다. 이후 달팽이집을 등에 맨 채 오체투지행진을 하며 청와대로 향해 세입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요구안을 전달했다.

태그:#주거권, #민달팽이, #부동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