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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H 포럼 2018을 통해 첫 내한한 앤더슨 쿠퍼
 CNH 포럼 2018을 통해 첫 내한한 앤더슨 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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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앵커 앤더슨 쿠퍼는 '발로 뛰는 저널리즘'의 얼굴이다. 가짜 기자증과 카메라만을 들고 미얀마 반정부군을 촬영했던 1991년 이후, 그의 삶은 쭉 모험의 연속이었다. 동남아 쓰나미, 아이티 대지진, 일본 대지진, 이집트 혁명, 최근에는 북미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그는 현장에 달려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현재 CNN에서 '앤더슨 쿠퍼 360도(Anderson Cooper 360°)'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 대선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화려한 경력을 쌓은 지금까지도 현장 기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앤더슨 쿠퍼 하면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떠올리는 일화가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의 일이다. 100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도시는 마비되었다. 취재를 위해 현장에 상주한 앤더슨 쿠퍼는 메리 랜드루 상원의원과 화상 대화를 나누었다.

급박한 현장 상황과 맞지 않게, 랜드루 의원은 정치권과 군대에 대한 감사 등 형식적인 이야기로 일관했다. 쿠퍼는 의원의 말을 끊고 자신이 본 현실을 이야기했다. 이 장면은 앤더슨 쿠퍼가 '사실 전달'을 으뜸의 가치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의원님.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100억 달러 구호 기금 회의를) 듣지 못했습니다. 지난 4일 동안 길거리에는 시체가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거든요. 정치인들이 서로를 칭찬하고 있는 동안, 시민들은 분노하고 좌절하고 있단 말입니다!"

'언론인은 상실감 느끼는 사람을 향해야'

앤더슨 쿠퍼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18일 오후 2시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CNH 포럼 2018을 통해서였다. 하얗게 센 머리,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은 CNN 뉴스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마지막 연사인 쿠퍼가 무대에 오르자, 가장 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는 객석을 가득 채운 대학생들에게 "여러분은 훗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기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젊은 날의 쿠퍼에게는 그저 여행과 세계 탐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을 뿐이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특파원의 삶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쿠퍼에게 있어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은 보도였다. 흔한 자기계발서에 나올법한 말이지만, 가장 본질적인 조언이기도 했다.

앤더슨 쿠퍼는 철도 재벌인 밴더빌트 가문의 외손자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쿠퍼의 성장기는 결코 행복만으로 점철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투병 끝에 일찍 세상을 떠났고 형은 대학생 때 자살했다. 이 시절 그가 겪은 상실감은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쿠퍼는 '언론인의 시선이 상실감을 겪은 이들에게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숱한 험지를 돌아다녔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날 앤더슨 쿠퍼가 가장 많이 이야기한 키워드는 단연 '진실'이었다. '진실이 아닌 것을 보도할 수도 있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그는 "나는 나와 우리 보도팀이 진실이라고 확인한 것만을 보도한다"고 대답했다. 다만, 그는 "앵커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앵커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자세를 낮추기도 했다.

가짜 뉴스가 확산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진 지금, 언론인은 무엇보다 '팩트 체킹(사실 확인)'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앤더슨 쿠퍼는 뉴스에 흥미 요소가 더해질 수도 있고,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앵커는 리얼리티 쇼가 아니라 리얼리티다"라는 철학을 우선시했다.

시청자와 특파원이 함께 가는 여정

연사로 나선 앤더슨 쿠퍼는 자신의 언론 철학을 청중들과 나누었다.
 연사로 나선 앤더슨 쿠퍼는 자신의 언론 철학을 청중들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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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더슨 쿠퍼는 '공감' 역시 중요하게 보았다. 특파원은 적확한 사실을 보도하는 것은 물론, '시청자가 특파원의 여정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시청자가 다른 일을 하면서 뉴스를 보다가도 빠져들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를 '감성 앵커'(emo-anchor)라고 부른다. 감정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기 때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트럼프와 CNN의 악연은 오래되었다. 트럼프는 CNN 기자 짐 아코스타의 질문을 거절하면서 "CNN은 가짜 뉴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앤더슨 쿠퍼도 과거 트럼프에게 직접 날카로운 질문 세례를 퍼부었던 바 있다.

쿠퍼는 이번 강연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트럼프가 말하는 가짜 뉴스는 CNN이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이며, 미국 대통령이 언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경고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정부를 비판하는 화자를 공격함으로써, 그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앤더슨 쿠퍼는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몇 가지 자세를 주문했다. '비판적인 정보 읽기', '자신의 글을 쓰고 말하는 연습', 그리고 근면한 삶의 자세였다. 그는 "언론인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일찍 출근해서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가는 삶을 살 각오를 해야 한다"라고 했다.

마돈나의 콘서트에서 함께 춤을 추는 등 유쾌한 면모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쿠퍼지만, 뼈를 깎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진실을 위한 여정'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섹션이었던 데에 반해 새로운 이야기가 많지 않았던 점은 다소 아쉬웠다.

이번 포럼에서는 온라인 댓글 문화와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남북 관계, K-POP 산업 등의 주제가 다루어졌다. 부산대학교 로버트 켈리 교수, 이노코미스트 특파원 출신 사업가 다니엘 튜더, 가수 에릭 남, 뉴욕대학교 미첼 스티븐스 교수 등 다양한 연사들이 지식을 공유했다.


태그:#앤더슨 쿠퍼, #CNH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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