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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와 판사,민간인 사찰 등 사법농단 의혹 등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법농단 의혹 질의에 답변하는 안철상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와 판사,민간인 사찰 등 사법농단 의혹 등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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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오는 31일 사법농단과 관련한 자체 조사 대상 문건 전체를 공개할 예정이다. 지난 5월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조사결과를 발표한 지 두 달이 넘어 조사 대상이었던 410개 문건 전체를 공개하는 것이다. 앞서 법원행정처는 지난 6월 5일 보고서에 인용된 98개 문건을 공개했다. 이후 전체 문건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법원 안팎에서 계속됐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98개 문건을 공개할 당시 "공개의 범위는 더 넓어질 수도 있다"라고 밝혔지만, 그동안 법원행정처는 문건의 추가 공개 의지가 없어 보였다. 특히 <오마이뉴스>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정보공개청구는 모두 "법원 내부 감사담당기관의 기능과 활동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후 이에 불복한 정보공개센터의 행정심판청구도 지난 9일 기각했다.

법원행정처 행정심판위원회는 해당 청구를 기각하며 마찬가지로 "관련자들의 징계가 진행 중이고, 감사 업무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라고 밝혔다. 해당 문건으로 인한 후속조치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보공개청구한 문건들은 특별조사단이 '사법행정권 남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조사보고서에 인용하지 않은 문건들이다. 법원행정처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이 없는 문서라고 조사보고서에 분류해 놓고 징계와 감사를 핑계로 공개를 거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행정처는 그로부터 20여 일이 지나 관련 문건들의 전면 공개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갑작스러운 공개 이유는 무엇일까? 법조계 안팎에서는 해당 문건 관련한 언론 보도와 내부 반발을 못 이긴 뒤늦은 공개 조치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쏟아지는 피해자 증언과 내부 반발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된 410개 문건 전체를 검찰에 제출했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 검사) 임의제출 요청에 따른 조치였다. 이후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피해자 조사가 진행되면서 감춰져 있던 문건의 내용들이 서서히 드러났다. 법원행정처는 먼저 공개한 98개 문건을 제외하고는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이 없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하창우 전 대한변협회장을 사찰한 문건들이다. 2014년 1월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하 전 회장이 신임 대한변협회장에 당선하자 당시 법원행정처는 다방면의 압박방안을 검토했다. 하 전 회장의 수임 내역을 조회하고 그의 재임 중에는 대한변협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방안을 세웠고, 실제로 이행했다. 또 하 전 회장에 대한 변호사들의 여론을 악화시키려고 변호사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 양승태는 왜 축사를 취소했나)

마찬가지로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 성향을 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을 압박하는 방안도 세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6년 9월 개헌 방침을 발표하자 국회에 구성될 개헌 논의 기구에 민변 출신 인사들의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 문건을 작성한 것이다. 이들이 들어갈 경우 개헌 논의 과정에서 상고법원에 반대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여기에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선수 전 민변 회장(현 대법관) 등 7명의 이름이 올랐다.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관련기사 : 양승태 대법원, 김선수·박주민 등 '블랙리스트' 관리")

이 같은 피해자들의 증언은 언론을 통해 즉각적으로 보도됐다. 특히 특별조사단이 '민간인 사찰'이라는 범죄 가능성이 있는 내용 등 부적절한 문건을 발견하고도 보고서에 밝히지 않은 것에 의문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이에 법원행정처는 "조사 범위는 '법관의 독립이나 재판의 독립을 침해 또는 훼손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변협회장의 사찰이나 민변 블랙리스트는 조사범위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관련기사 : '민간인 사찰'에 손 놓은 김명수 대법원, 은폐는 아니다?)

국회·청와대 대상 로비 정황 밝혀질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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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밖에서 문제 소지의 문건들이 나오자 나머지 문건을 공개해야 한다는 압박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법원 내부의 지속적인 반발도 문건 전면 공개 이유로 꼽힌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23일 2차 임시회의를 열고 "법원행정처는 조사보고서에 첨부된 410개 파일 리스트 중 미공개 파일 228개의 원문을 공개해야 한다"라고 의결했다. 전국법관회의는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 지속적으로 자료 공개를 요구해 왔다. 조사결과 발표 직후에는 온라인 투표를 통해 해당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법원 관계자는 "비공개 자료가 검찰로 넘어간 이후에 피해자들의 진술 등으로 계속 언론 보도가 쏟아지니 대법원이 문건을 비공개하고 있는 것이 큰 의미가 없게 됐다"라며 "검찰 수사 진행에 따라 지속적으로 두드려 맞는 것보다 한 번에 털고 가자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건 공개가 늦어지면서 법원 신뢰도에도 흠집이 갔고 검찰 수사에 끌려가는 모습이 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사무국장은 "법원행정처의 소극적 태도는 결국 의혹만 증폭시키고 사법당국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분노만 부추겼다"라며 "검찰의 강제수사가 진행되고 지난 23일 법관대표회의가 미공개 파일에 대한 공개를 정식으로 요구하자 그간 비공개로 일관했던 228개 파일을 마지못해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여론 악화를 막아보자는 면피성 결정에 지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법원의 자정능력이 결여되어있고 정무적 판단도 즉흥적으로 저열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처음부터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국민들 앞에 조사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지금처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법원행정처는 이번 문건 공개 이유를 특별히 설명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라고만 밝혔다.

이번 문건 공개를 통해 그동안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대한변협과 민변 압박 방안 외에도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국회나 청와대에 로비를 펼친 정황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국회 전략', '상고법원 관련 야당 대응 전략', '법사위원 접촉일정 현황', '이정현 의원 면담 주요 내용' 등의 문건 내용이 주목 받을 전망이다.



태그:#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법원행정처, #안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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