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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리 대게로 부두
 후포리 대게로 부두
ⓒ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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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일상생활의 모든 소통이 휴대폰으로 이뤄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집 전화가 없는 가정도 부지기수다. 설령, 있다고 해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요즘 추세인 것 같다. 우리 집 전화기 또한 무용지물이 된 지도 꽤 오래다.

그럼에도, 전화기를 없애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경북 울진군 후포리에 살고 계시는 장모님 때문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휴대전화를 사주고 난 뒤, 간단한 사용법을 가르쳐 줬음에도 장모님은 불편하다며 집 전화를 고집하셨다. 가끔 집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면, 10번 중 10번이 장모님 전화일 정도로 우리 집 전화는 장모님 전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포리 바다전경
 후포리 바다전경
ⓒ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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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은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우직하시다. 오히려 그것이 자식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자식이 모시려고 해도 장인이 묻힌 이곳 바다를 떠날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신다. 그리고 웬만해서 자식에게 전화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일 년에 한두 번 꼭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장모님은 전화하시곤 한다. 사실 장모님이 전화 거는 일자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지켜지는 것은 있었다. 그건 바로 전화하는 시간(새벽 6시)과 첫 멘트였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그것이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5일 새벽 6시. 평소 거의 울리지 않던 집 전화벨이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장모님으로부터 걸러온 전화였다.

"김 서방, 이른 아침 깨워서 미안하네. 별일 없지? 애들은 잘 크고?"
"장모님께서도 건강하시죠?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가끔 통화하지만, 장모님의 목소리는 사위가 아닌 마치 친자식을 대하듯 늘 다정다감했다. 그리고 일교차가 심하니 건강관리 잘하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장모님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계속하여 똑같은 말만 반복하셨다.

순간, 옆에 있던 아내가 그것을 알아차린 듯 들고 있던 수화기를 요구했다. 시간 나면 찾아뵙겠다는 말을 장모님께 한 뒤, 아내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그러자 아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장모님과 조용히 통화했다. 오랜만에 연락된 모녀간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잠시나마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나을 듯싶어 거실로 나갔다.

미역 한장 한장 장모님의 정성이 묻어있다.
 미역 한장 한장 장모님의 정성이 묻어있다.
ⓒ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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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장모님과 통화를 끝낸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장모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여보, 장모님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요즘 사람들, 미역국 잘 안 먹죠? 큰일이네!"

아내의 뜬금없는 미역국 이야기에 궁금해서 물었다.

"큰일이라니? 뭐가요? 무슨 일이에요?"
"미역을 팔아야 하는데…, 어디에?"

그제야 아내는 조금 전 장모님과 전화로 나눈 대화 내용을 이야기했다. 이야기인즉슨, 지난 몇 개월 동안, 장모님이 바닷가에서 직접 채취하여 말린 미역 200장을 팔 곳이 없는지를 물었다고 하였다. 이제야 장모님이 사위인 내게 그 이야기를 못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미역을 파는 것도 문제지만 그 많은 미역을 만들기 위해 애쓴 장모님의 노고가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심 보내주는 용돈이 너무 적은 것으로 생각하고 이번 어버이날에는 용돈을 더 보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지금까지 장모님은 자식에게 용돈 한 번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식이 준 용돈을 모아 손자와 손녀를 위해 쓰는 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나 돈이 궁했으면 미역을 말려 팔려고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사위로서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이 많은 미역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되었는지 나에게 미역 팔 때가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주문했다. 아내의 말에, 팔다가 못 팔면 내가 모두 사 판 거로 해 미역 값을 보내주면 된다고 큰소리쳤다. 그러자 아내는 화들짝 놀라며 다가오는 어버이날 용돈을 포함해 그 어떤 선물도 보낼 줄 필요가 없고 오직 미역만 팔아주면 된다는 장모님의 말씀을 전했다.

사위를 위해 별도로 말렸다는 장모님 미역
 사위를 위해 별도로 말렸다는 장모님 미역
ⓒ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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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미역을 다 판매한 뒤 내게 알려주라는 장모님의 말을 미리 알려주었다. 그리고 미역을 판매한 돈으로 사위 양복 한 벌 사주라는 장모님의 말을 전했다. 순간, 매번 후포리 처가댁을 방문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사위에게 옷 한 벌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셨던 장모님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성인병에 좋다는 미역귀를 장모님은 위를 위해 별도로 말려 보냄
 성인병에 좋다는 미역귀를 장모님은 위를 위해 별도로 말려 보냄
ⓒ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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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을 주면 받지 않을 거라는 내 성격을 알고, 장모님은 지난겨울 몸소 채취하여 말린 미역을 팔아 사위에게 옷을 사주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을 잘 알고 있지만 다가오는 어버이날 장모님으로부터 이렇게 큰 선물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장모님,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태그:#어버이날, #장모사랑, #후포리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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