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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차 한 잔은 여유입니다. 다기를 준비하고 찻물을 덥히다보면 몸도 마음도 여유로워집니다. 따끈한 찻물은 마른 입술을 적셔주고, 목 넘김 좋은 찻물은 메마른 가슴을 해갈시켜 줍니다.

달그락 달그락 소리 내며 우려마시는 차도 좋지만 누군가가 따라주는 차를 받아 마시는 것도 좋습니다. 하루에 한두 번쯤은 차를 습관처럼 마시고 있지만 그렇게 마시고 있는 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진지하게 헤아려 본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봄기운 머금고 차나무에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싹 똑똑 꺾어서 이렇게 저렇게 얼버무리듯 만들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가 봅니다. 무려 아홉 번이나 덖고 덖어야 만들어지는 게 차라고 하니 그동안 무심하게 마셨던 차에서 간간하게 우러나던 맛은 찻잎을 덖은 이가 흘린 땀에서 우러난 인고의 향이었나 봅니다.

아홉 번 덖음차

<아홉 번 덖음차> / 지은이 묘덕 / 펴낸곳 담앤북스 / 2018년 4월 30일 / 값 16,000원
 <아홉 번 덖음차> / 지은이 묘덕 / 펴낸곳 담앤북스 / 2018년 4월 30일 / 값 16,000원
ⓒ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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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 덖음차>(지은이 묘덕, 펴낸곳 담앤북스)는 하나의 나뭇잎에 불과할 수도 있는 찻잎이 맛과 향기를 머금는 차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차솥 걸기에서부터 아홉 번째 덖음까지는 물론 차를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최소한의 준비물 등까지를 잘 꾸려진 찻집 분위기처럼 전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차가 인연이 되어 출가까지 해 수행의 한 방편으로 차 덖는 일을 하고 있는 묘덕 스님이 염불을 하듯 펼치는 차 이야기는 굴뚝 없는 차솥을 거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차는 찻잎을 어느 때 따느냐에 따라 맛도 달라지고 향도 달라지고 가치도 달라지지만 차 맛을 좌우하는 건 역시 어떻게 덖느냐가 우선입니다.

차는 찌거나 볶거나 지지거나 튀기거나 삶는 게 아니라 덖습니다. 덖는다는 건 '물을 더하지 않고 그대로 볶아서 타지 않을 정도로 익히는 것'을 말합니다. 차를 덖는 온도는 무려 400도 이상이나 되는 고온입니다.   

400도 이상이나 되는 솥에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얼마나 덖어내느냐가 차 맛을 좌우합니다. 무조건 온도가 높아서도 안 되고 빨라서도 안 됩니다. 찻잎이 비밀처럼 감추고 있는 맛은 야금야금 배어나오게 하고, 찻잎이 사연처럼 품고 있는 향을 간지럼이라도 태우듯 은근하게 달래내야만 합니다.

차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사람의 손끝에서 맛과 향이 더해지고 모양이 잡히니 말이다. 차는 고통의 순간을 견뎌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차 덖듯 나도 달달 덖으면 아홉 번 덖음차처럼 단맛 나는 수행자가 될까? -<아홉 번 덖음차>, 64쪽-


차를 덖는 다는 건 디지털 온도계로 맞출 수 있는 온도가 설정돼 있는 게 아닙니다. 전자 장비로 제어할 수 있는 어떤 속도나 압력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찻잎이 갖고 있는 잠재적 맛과 향을 인간이 갖고 있는 육감으로 불러내는 인고의 과정입니다.

400도가 넘는 고온에서 비벼가며 덖고, 비벼가며 식히기를 무려 아홉 번이나 반복하다보면 수줍은 미소 같은 향, 겸연쩍은 표정 같은 맛이 간간한 차 맛으로 우러나 차 마시는 이의 육감 속으로 스며듭니다.    

차는 제다나 법제에 따라 맛이나 향이 달라진다. 그뿐인가. 찬 우리는 사람의 방법에 따라 차가 부드럽기도 하고 은은하기도 하고 진하기도 하다. 차는 그야말로 요리와 조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듯하다. 그래서 차맛을 간이라 표현하나 보다. 자, 차 간 잘 맞춰 마셔 보자. -<아홉 번 덖음차>, 145쪽-


뜨거운 김 풀풀 솟아나는 차솥에 두 손 담가가며 덖고 덖기를 거듭하고 또 거듭하고 있는 묘덕 스님의 뒤태는 어묵동정으로 어른거리는 차향이고, 곁들여진 사진을 배경으로 상상해 보는 아홉 번 덖음차는 행주좌와로 유혹을 하는 차맛입니다. 

고온에서 아홉 번이나 덖어내 차를 만드는 전 과정을 읽을 수 있는 <아홉 번 덖음차>는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차를 눈 틔워줄 점안이며, 차가 품고 있는 향기를 생명력 넘치는 다도의 길로 열어 줄 '참깨' 같은 키워드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아홉 번 덖음차> / 지은이 묘덕 / 펴낸곳 담앤북스 / 2018년 4월 30일 / 값 16,000원



아홉 번 덖음차

묘덕 스님 지음, 담앤북스(2018)


태그:#아홉 번 덖음차, #묘덕,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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