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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982년에 태어난 나는, 당시 1980년대에 대해 여러가지 좋은 추억들만 가지고 있다. 집 앞에 지하철이 개통되어 퇴근하시는 아버지 손 잡고 개찰구를 통과하며 신나 하던 기억부터 온 가족이 함께 야구장에 놀러갔던 기억까지, 내게 1980년대는 지금도 여전히 가끔씩 추억할 때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시대로 회상되곤 한다.

그러나 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며 알게 된 1980년대의 실상은, 처참함 그 자체였으며 당시 대학생을 비롯한 지식인들, 노동자들이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일들은 나의 아름다운 추억과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당시의 권력들은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혹세무민하며 민주주의를 기만하고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길이라고 속삭이며, 이에 반기를 든 사람들을 하나 둘 은밀한 방으로 부르곤 했다.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그 사실들 말이다.

내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1980년대 당시가 일제 강점기와도 비견될 정도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어느 국가든, 또 어느 시대든 착취하는 쪽과 착취 당하는 쪽은 늘 존재하지만 그 간극이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순간 사회를 힘겹게 지탱하던 기둥에 조금씩 금이 가게 마련이다.

1980년대는 그 조그맣던 금이 걷잡을 수 없이 전 지역으로 번져 온 나라가 들끓던 때였다. 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지식인들의 입엔 재갈이 물려졌으며 대학생들에겐 경찰 곤봉과 매케한 최루가스만이 허락된, 그런 시대였다.

그 당시 있었던 일들의 참혹함과는 다르게 책의 표지는 서정적이다. 마치 평온을 바랐던 그 시절에 대한 갈망을 염원한 듯 하다.
▲ 1908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표지 그 당시 있었던 일들의 참혹함과는 다르게 책의 표지는 서정적이다. 마치 평온을 바랐던 그 시절에 대한 갈망을 염원한 듯 하다.
ⓒ 이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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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에서는, 제목 그대로 1980년대의 시대상을 바탕으로 당시 처연한 삶을 살았던 문인들의 행적을 재조명하고 있다. 권력의 횡포를 낱낱이 드러냄과 동시에,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할 반성 역시 촉구하는 듯하다.

과거에서 뭐 하나라도 배우지 않다간, 우리는 또다시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에 갇히기가 매우 쉽다. 반성과 성찰 없는 역사는 여지없이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일들이지만, 그 내막에 대해 속속들이 알려는 노력을 우리는 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어둡고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다소 무거운 주제다. 부끄러운 과거와 묻고 싶은 기억을 우리는 언급하길 꺼려한다. 과거는 과거일 뿐, 창창한 앞날을 우리 함께 걸어가자고 어느 누군가는 늘상 우리를 꼬드기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늘 같은 과오를 반복해서 저질러오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누군가의 반성을 촉구하려거든 냉엄히 그 잘잘못에 대해 따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건, 바로 '앎'이어야 한다.

박해현이 젖은 목소리로 기형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알렸다.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날 나는 아침에 이어 점심 때 다시 빈소를 찾았으나 기형도의 죽음이 영 믿기지 않았다. 밤늦게 다시 찾았을 때 기형도 또래의 젊은 시인들이 까닭 없이 집단난투극을 벌인 패닉의 흔적을 보고 그때서야 기형도의 죽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29세 생일을 엿새 앞둔 기형도의 짧은 생애는 그렇게 허무하게 종말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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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中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그러하였고, 또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198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목에 칼이나 권총을 들이대면 사람들은 정확히 두 가지 태도로 양분이 된다. 굴복하는 자와 끝까지 저항하는 자, 이 두 부류로 말이다.

그리고 일제 치하에서도 그러했듯, 1980년대 역시 굴복하는 편에 속한 문인들은 권력의 힘에 빌붙어 부의 축적에만 몰두했다. 반면, 끝까지 저항하는 편에 속한 문인들은 어김없이 일찍이 명을 달리하곤 했다. 다만 역사에 이름 석 자 크게 남겼으니, 과연 어떤 삶이 더 가치 있는 삶인지는 이 책을 읽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볼 일이다.

희미한 기억은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 젊은 문인들이 맞이해야 했던 죽음이 얼마나 참혹했었는지, 당시 처연했던 현실에 대해 우리는 두 눈 크게 뜨고 다시금 봐야한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 1980년대 요절할 수밖에 없었던 문인들 희미한 기억은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 젊은 문인들이 맞이해야 했던 죽음이 얼마나 참혹했었는지, 당시 처연했던 현실에 대해 우리는 두 눈 크게 뜨고 다시금 봐야한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 이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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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만 해도 당대의 지식인들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지금의 '아이돌'들과 같은 입지를 누렸으리라 생각된다. 이들의 말과 행동이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그 파급이 적지 않았을 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의 환난이 닥쳤을 때 이러한 지식인들의 행보에 따라 나라의 명운 휘청이거나 크게 갈리기도 했으니, 이들의 영향력은 지금의 정치인들과 비견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때문에 누군가의 잘못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하고, 다른 누군가의 잘한 일은 칭찬하고 널리 알리는 일이야말로 당대 지식인들에게 부여된 역할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바로 진정 '아는 이'의 보이지 않는 책임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 시대로 나는 이해한다. 권력의 그늘에 호의호식한 이가 있던 반면, 끝까지 체제와 권력에 저항한 문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권력에 저항하다 요절한 이들의 피와 희생을 양분삼아 우리의 역사가, 또 지금 이 사회가 이렇게까지 진일보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나 자신만의 부귀와 영달을 생각했더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었으리라.

마침내 대검은 1992년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내사를 종결한다고 발표했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 표현물과 적에 대한 고무찬양에 저촉되는지를 내사한 결과 작가에 대한 의법조치나 책의 판금을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데 단서로 붙인 문구가 희한했다.

'일반 독자들이 교양으로 읽는 경우에는 무관하지만, 학생이나 노동자들이 읽으면 불온서적 소지 및 탐독으로 의법 조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검찰당국의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때 이 발표를 접한 조정래는 이렇게 말했다.

"안방에서 어머니가 읽으면 교양물이고, 건넌방에서 대학생 아들이 읽으면 이적 표현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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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中

단순히 문학을 넘어, 이 문학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대 지식인들의 사투와 그 힘겨운 투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분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지금의 민주주의를, 또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을지 잘 모르겠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이 분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 아닐까.

책을 읽기 전, 그리고 읽는 중간중간 책의 내용과 주제에 비해 그 제목이 지나치게 서정적인 느낌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저자인 정규웅 작가님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난세가 아닌 태평성대가 1980년대에 펼쳐졌더라면 이 모든 문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글솜씨를 뽐내고 저마다 후대에까지 남을 문학 작품들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찰나의 순간이라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서로 웃고 즐기며 소설과 책에 대해 논하며 웃고 즐기던 그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말이다.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정규웅 지음, 책이있는마을(2018)


태그:#1980년대, #군사정권, #독재정권,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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