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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기체를 몇 번 덜커덩거린 뒤에야 착륙을 마쳤다. 드디어 도착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코모도로 아르투로 메리노 베니떼즈 국제공항(Comodoro Artuno Merino Benítez International Airport)은 오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룬다.

여권 안에 잘 넣어둔 비행기 표를 보면서 이름 한번 참 거창하게 기네, 싶었다. 한국의 인천공항은 간결하게 인.천. 딱 두음절인데 말이다. 갑자기 현지인들도 이 공항의 긴 이름을 다 외우는지 문득 궁금해진다(실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산티아고의 공항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구글 검색을 해야만 했다).

기내에서 스페인어와 영어 방송이 번갈아 나오기 시작했다.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승객들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모두가 허둥댔고 푹 절인 파무침이 된 나는 거기에 낄 기력조차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준수한 외모의 남자 승무원 분이 내게 미소를 보내며 도움이 필요하냐는 제스처를 취한다. 나 역시 잘생긴 그에게 미소를 보내며 아니라고 손을 휘휘 내저은 뒤 느릿느릿 나갈 채비를 했다.

너무 오랜만에 다리를 움직여서일까, 하반신 전체의 근육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마비된 곳이 풀리라고 허벅지를 주먹으로 통통 두드리며 수화물 찾는 곳으로 향했다.

텔레페리코 산티아고(Teleferico Santiago)에 올라가면 이 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볼수있다. 중남미 대륙에서 가장 높은 안데스 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산티아고는 전형적인 분지도시로 우리나라로 치면 대구를 생각하면 쉽겠다.
▲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전경 텔레페리코 산티아고(Teleferico Santiago)에 올라가면 이 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볼수있다. 중남미 대륙에서 가장 높은 안데스 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산티아고는 전형적인 분지도시로 우리나라로 치면 대구를 생각하면 쉽겠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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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스페인어를 잘 못한다고 이곳 공항이나 다른 스페인어권 국가의 공항에서 당황할 필요는 없다(스페인어는 스페인, 중남미의 대다수 국가들에서 공식 언어로 쓰이고 일부지만 몇몇 북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사용된다).

공항에서는 대개 영어와 스페인어를 혼용하나 모든 표지판이 다 그렇게 친절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럴 때 유용한 나만의 팁이 있다. 별거는 아니나 실제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일단 'Salida'라는 말에 주목하자. 이 말은 출구라는 뜻으로 표지판의 이 문구와 화살표, 그리고 그 옆 표지판에 그려진 기호들을 잘 확인하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겼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대부분의 공항이 와이파이가 잡히니 구글 번역기나 통번역 어플을 써도 좋겠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한국어→스페인어' 번역보다는 '영어→ 스페인어' 번역이 훨씬 더 정확하고 깔끔하니 영어가 조금이라도 되는 여행자들은 간단한 영어 문장이라도 써보는 것이 더 낫겠다.

짐을 찾아 이고지고 찾아간 곳은 모든 여행자들이 통과해야하는 입국 심사대. 짐작은 했지만 심사대 앞 줄은 분식집 찜기 위에 잘 말아진 순대를 연상시켰다. 내가 줄을 서자마자 내뒤로 다른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데도 게이트를 다 열지 않은 걸 보며 짜증이 솟구쳤다.

피곤에 찌든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무리의 다국적 좀비가 따로 없었다. 나도 너무 피곤한 나머지 칠레에 있다는 사실을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전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대륙에 있다는 사실보다 시차때문인지 꿈과 현실의 몽롱한 경계에 있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공항은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 중 하나이므로 이 나라에 대한 첫인상으로 치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느새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내 차례가 드디어 다가왔다. 그렇게 엄격하다는 칠레의 입국심사에 긴장이 되어 쭈뼛쭈뼛 걸어나갔다. 하지만 오래 기다린 것 빼고는 생각 외로 모든 게 수월했다. 친절한 공항 직원분은 스탬프를 여권의 특정 페이지에 찍어달라는 내 요청에 흔쾌히 수락까지 해주었다.

콰앙! 콰앙! 그렇게 90일의 체류를 허가하는 스탬프가 내 여권에 박력있게 찍혔고 여행 허가증 겸인 작은 종이도 내 손 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공식적으로 칠레의 여행자가 되었다.

"쏭!!!"

누군가 배낭 무게 때문에 뒤뚱뒤뚱 펭귄처럼 걸어가는 나를 불렀고,

"다니???"

내 5년지기 친구 다니엘라가 저멀리서 보인다. 우리는 호주 퍼스에서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도 그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그녀는 내가 칠레를 첫 여행지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근 3년간 서로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앞에 맨 가방 때문에 배불뚝이가 되어 꼭 안아줄 수는 없지만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 등 난리굿을 피웠다. 공항 경찰이 다가와 우리를 제지하려 할 정도였으니 말해 무얼할까. 내 짐을 같이 이고지고 공항을 나서던 그녀가 갑자기 문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사교계에서 댄스 신청을 받은 숙녀처럼 허리와 무릎을 굽히는 포즈를 취하더니 나지막이 말한다.

"Welcome to my country Chile, Song"
(우리나라 칠레에 온 것을 환영해, 송)


자세는 진지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지구 반대편의 동방예의지국에서 왔는데 가만 있을 수는 없다 싶었다. 그래서 나도 다리를 조금 굽히는 것으로 답을 했다. 그때였다. 일어설 때, 순간 무거운 짐 때문에 몸이 휘청, 하는가 싶더니 뒤로 넘어가버렸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가방을 잡아줬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거북이처럼 뒤로 고꾸라질뻔했다. 큰 배낭에 대한민국 국기까지 달고 공항 출입문 앞에서 큰 망신을 살 뻔했다. 뒤에서 잡아준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방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밖으로 나가자 뒤통수에 내리쬐는 태양이 뜨겁다. 발을 성큼성큼 내디디며 다니를 따라나섰다. 아스팔트 길의 기다란 내 그림자가 여간 씩씩해 보이는 게 아니다. 언젠가 이 여행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향할 때 쯤이면 나는 이 그림자만큼이나 자라 있을까.

[엄격한 칠레의 입국심사 & 수화물 체크]
칠레는 남미 내에서 경제가 가장 안정되어 있고 생활 수준 또한 높은 편이다(이 말은 또한 여행비용도 다른 남미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비싸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의 선진국이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우리에 상응하는 혹은 더 엄격한 입국 심사와 수화물 통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심지어 아르헨티나에서는 칠레를 거쳐온 여행자의 짐을 꼼꼼히 검사하지 않는다. 그만큼 엄격한 칠레 국경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현지인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입국 심사대 앞에서 1시간 동안 기다리는 일은 예사도 아니라고 하니 알고가면 좋은 정보일 듯하다. 또한 칠레 정부는 자국의 자연보호를 범국가적 사업으로 친다. 그래서 자국의 풍토를 해치거나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행자가 타국에서 들여올 수 없는 '반입 금지 품목들'이 있다. 동식물이나 그 추출물 및 가공품은 모두
검역절차를 걸쳐야하거나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문제시 벌금을 물어야하니, 미리 주의하자.

* 관세청 블로그 [해외여행 이것만은 알고가자] '칠레' 참고해도 좋다.


태그:#여행, #남미, #칠레, #여행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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