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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의 버스터미널은 어딘가로 꿈을 찾아 떠나는 출발지였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교외로 떠나는 버스에는 늘 내 청춘의 꿈으로 가득했다. 그 시절 터미널에는 농사지은 것을 내다 팔려는 아낙들의 보따리들로 가득차기도 했다.

필요한 물건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표정에는 세상을 얻은 것 같은 만족감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 친구와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가는 날은 잠깐의 일탈만으로도 짜릿했다. 갑갑한 일상을 환기시키기 위한 새 에너지의 시발점이 내겐 터미널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친구가 유성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의 도착시간 전, 일찌감치 마중을 갔다. 터미널은 우리 집에서 십여 분 남짓의 거리에 있는 유성시외버스터미널이다. 그 터미널은 내가 사는 집에서 오일장이 서는 유성재래시장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있다.

    사람들이 유성터미널이라고 부르는 공식명칭은 '유성 시외버스 정류소'이다.
▲ 유성 시외버스 정류소 사람들이 유성터미널이라고 부르는 공식명칭은 '유성 시외버스 정류소'이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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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서 대전에 살게 된 지도 30여년이 되간다. 그때만 해도 유성은 서울에 비해 한적하고 심지어 적막하기조차 했다. 유성시외버스터미널은 2018년 현재, 지금도 내가 청소년기에 경험했던 대합실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결혼할 당시와 비교해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주변 풍경도 그렇다. 굴뚝이 솟아 있는 오래된 목욕탕, 대합실 안의 벤치 형 긴 의자와 침침한 분위기는 '응답하라 90년대'에 버금간다. 이는 30년 전, 흑백영화를 찍는 세트장이라고 해도 알맞을 풍경이다. 반면 터미널 주변을 제외한 유성의 다른 곳(노은, 신도안, 죽동 등)은 마치 신도시처럼 바뀌어 있다.

그럼에도 유성시외버스터미널은 지리적으로 유성의 중심지인 봉명동에 위치해 있다. 터미널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편의점이 있고 편의점과 매표구 사이로 화장실 가는 길이 있다. 옹색한 복도에 남녀화장실은 양쪽으로 구분되었지만 청결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1979년에 건립된 터미널은 처음 간이정류장 형식으로 지어진 것이라 운행되는 노선과 이용객 대비 부지면적이 매우 좁다. 터미널 안에 주차할 수 있는 차량은 기껏 해야 대여섯 차량이다. 승객들은 주차하는 버스의 이동에 따라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승차해야 한다. 버스가 들어오고 나갈 때 출구와 입구전용통로가 따로 없다. 그래서 수신호를 하는 아저씨 한 분이 늘 2차선을 막아 차를 들여보내고 또 차를 다시 내보낸다.
        조명이 밝지않아 어둡고 침침하다.
▲ 터미널 내부 조명이 밝지않아 어둡고 침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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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 시외버스 터미널 긴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 터미널 옆문 유성 시외버스 터미널 긴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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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표구 옆으로 화장실이 나 있는 좁은 길.
 매표구 옆으로 화장실이 나 있는 좁은 길.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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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유성구에서는 이 터미널의 하차장을 터미널 맞은편에서 300미터 이동한, 유성온천역 인근 4차로 도로변으로 이전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임시방편의 조치는 그 이후에 유야무야 되었다.

이후 수차례에 걸친 유성버스터미널 사업장 선정과정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사업선정 작업에서도 1차 선정자가 '수익성' 등을 이유로 포기한 바 있다. 관계당국에서는 2019년에 유성고속터미널과 통합된 복합터미널의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시간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유성구 봉명동 네거리를 지나 교통체증이 시작되는 곳.
▲ 터미널 좁을 길로 들어가는 버스들 유성구 봉명동 네거리를 지나 교통체증이 시작되는 곳.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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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돌아가는 길, 다시 터미널로 향했다. 들어오고 나가는 버스들 사이로 사람들이 주변을 살피며 내리고 오른다. 특히 주말과 유성오일장(4일, 9일)이라도 겹치는 날의 주변 교통체증은 아주 심각하다.

오랫동안 유성복합터미널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유성구의 주민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수많은 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터미널사업이 연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성복합터미널 이전계획은 수익성과 공공성 사이에 지리멸렬하게 서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버스들이 복잡하게 들고나는 터미널에서 우중충한 대합실에 앉아 버스시간을 기다린다. 신호를 보내는 아저씨의 호루라기 소리가 급하게 들리다 사라진다. 가뜩이나 미세먼지나 황사가 짜증을 더하는 이즈음, 유성복합터미널사업이 공공성의 무게에 힘이 실리길 기대해본다. 


태그:#대전 , #유성시외버스터미널, #수익성,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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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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