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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전날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2시간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던 신생아 4명이 잇따라 숨진 사건이 발생한 서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경찰이 현장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관계자들이 출입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전날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2시간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던 신생아 4명이 잇따라 숨진 사건이 발생한 서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경찰이 현장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관계자들이 출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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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6일, 목동에 있는 이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4명의 신생아가 연속적으로 숨졌습니다. 그로부터 111일이 지난 2018년 4월 6일, 아기들의 사인이 밝혀졌습니다. 시트로박터 프룬디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과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를 통한 결론이었습니다. 경찰과 보건당국은 신생아들이 사망 전날 맞은 지질영양제 '스모프리피드'가 균에 감염되었으며, 이 감염은 간호사들이 주사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밝혔죠. 25년 관행이었던 '주사제 나눠쓰기'가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나눠쓰기'는 언제고, 어떤 상황에서도 허용돼서는 안 되는 일일까요? 2017년 9월께 병원에서는 지질영양제를 용량이 250ml인 '클리노레익'에서 500ml인 '스모프리피드'로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이걸 1인 1병만 사용해야 한다는데, 사건에서는 5명의 아기에게 나누어 주사한 것입니다. 그중 4명의 아이가 죽었죠. 병원에서는 1병으로 5명에게 '분주'한 다음, 나머지 4병은 허위로 요양급여를 청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로서 '사기' 혐의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규정대로라면 1/5만큼만 쓴 뒤엔, 4/5는 버리게 되는 걸까요? 만약 분주하는 일만으로 오염이 의심된다면, 비싼 약을 나눠쓰게 될 경우나, 용량이 많게 나오는 제품을 어떻게 처리를 할까요? 최근 읽었던 책 <랩걸>(자런 호프/알마)에는 이런 상황,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상세히 나옵니다.

열아홉 살 알바의 눈에 비친 대학병원 약제실

일단, 일반주사와 혈관주사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웬만한 환자는 하나씩 매달고 있고, 그 주사기를 통해 몸에 약과 항생제 혹은 영양제가 들어가는 모든 링거 혹은 수액은 혈관주사입니다. 따꼼 몸에 작은 구멍을 뚫을 뿐인 일반주사에 비해, 혈관주사는 장시간 동안 몸을 외부로 열어놓습니다. 주삿바늘, 주사기, 수액주머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몸 안에 들어갈 그 '치료액'이 오염되었을 면적을 백 배 천 배는 증가한 상태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환자의 상태와 몸무게와 증상에 맞게 맞춤으로 완성돼야할 그 수액+약물을 어떻게 멸균 상태로 확보할 수 있을까요? (참고로 호프 자런은 이 일을 '알바'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깨끗한 작업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머리카락 지름의 300분의 1 정도 되는 구멍망으로 공기를 통과시킵니다. 박테리아, 효모, 세균들이 걸러지기 때문에 작업공간의 공기는 무균 상태가 됩니다. 작업자는 그 바람을 맞으며 앉아 엄청난 양의 이소프로판올(에탄올)로 작업을 합니다. 분무를 하며 모든 것을 씻는 거죠. 그 다음에야 제약회사로부터 병원에 배달되어온 약병들 안에서 약제를 수액주머니로 옮기는 것입니다. 숨을 크게 한번 쉰 다음, 소독하고, 소독하고, 또 소독하는 과정을 거치며 옮겨넣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수액의 종류가 바뀌었을지, 용량이 더 많이 들어갔을지는 약사가 한 번 더 점검합니다. 혹시라도 실수가 발견되면 수액주머니는 전부 폐기처분됩니다.
      
"그런 다음 장갑을 벗고, 펜을 들고 주머니에 붙은 스티커 한 귀퉁이에 내 약자를 적어넣고, 무언지 모를 책임을 일부 나눠 가진다. 그 트레이를 선임 약사 앞에 놓인 트레이에 놓는다. 그는 모든 스티커, 주사기, 약병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재확인해서 처방과 내용물이 틀리지 않는지 확인한다. 실수가 발견되면 수액주머니를 폐기처분한다. … 그리고 일하는 동안 끝없이 모니터링을 한다. 그리고 작은 실수로도 누군가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 <랩걸> 68~69쪽


 이 책에서는 열아홉 살 대학 아르바이트생 호프 자런의 대학병원 약제실 경험이 나온다.
▲ <랩걸>의 여러 나라 표지. 이 책에서는 열아홉 살 대학 아르바이트생 호프 자런의 대학병원 약제실 경험이 나온다.
ⓒ 랩걸 <알마> 호프 자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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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목동병원 중환자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먼저, 신생아들에게 투여된 지질영양제는 분주된 후 상온에 방치되었습니다. 남은 액 역시 상온에 있었죠. '분주 이후 즉시 사용할 것, 남은 것은 냉장보관'이란 사용설명서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신생아 중환자실 교수진 3명과 전공의는 모두 그 설명서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답니다. 교수들은 주사준비실의 감염 및 위생 상태를 점검도 않았고, 한번 들어가 본 적도 없었답니다. 간호사들에게 감염예방 교육을 실시할 의무가 있는 이들과, 수간호사 역시 일을 방기했습니다. 분주를 맡은 건, 데이 근무(오전 7시부터 3시근무)를 하는 신입 막내 간호사였고, (감독 없이) 혼자 일했습니다.

잘못된 관행 바로잡을 기회 25년간 여러 번 놓쳐

이대목동병원에서 이렇게 '분주'를 한 지는 오래입니다. 병원을 연 1993년부터 그랬답니다. 그러니 사고는 아마 그 이후 계속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엔, 4명의 아이가 한꺼번에 죽으면서 널리 알려졌을 뿐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죠. ('중환자실'은 변명의 구실이 됩니다.) 사고가 생긴 지난해까지 24년여 기간 동안 문제를 바로 잡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시정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1993년에 이 병원이 하나의 주사제를 여러 명에게 나눈(分注) 이유는 보험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엔 지질영양제가 일주일에 2병만 보험 적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994년에는 주사제 잔량까지 보험적용이 되는 것으로 행정지침이 바뀌었습니다. 경찰조사 결과로는 이대목동병원이 이를 통보받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의 잘못이죠.

두 번째. 이대목동병원은 2010년에 국제의료기관평가인증(JCI)를 준비합니다. 그 기준으로는 '처방'과 '투약'은 반드시 '일치'되어야 합니다. 신생아 중환자실의 교수들도 이때 지질영양제 처방 기준을 '환아 1명당 매일 1병씩'을 바꿉니다. 그러나 아마도 평가인증기관에 보여주었을 그 지침을, 간호사들에게는 알리지 않습니다. 병원의 잘못입니다.

세 번째. 병원비는 자기부담금이 있고, 나머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요양급여 비용을 청구하여 확보됩니다. 이대목동병원에서는 그 비용 청구를 할 때, '1명당 1병씩'으로 청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병원에선 자체적으로 지질영양제를 25ml 클리노레익에서 500ml 스모프리피드로 바꿉니다. 용량이 커지면 가격도 오를 테지만, 동시에 분주에 따른 감염 위험도 커집니다. 그러나 이때도 간호사들에게 아무런 처방도 지시도 감독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험심사평가원도 감독을 못했죠.)



 왼편은 이번 신생아 사망사건을 일으킨 스모프리피드 약제의 사용설명서. “약은 개봉 즉시 사용하고, 한번 사용하고 남은 액은 버려야한다.”고 돼 있다. 오른편은 이번 사건이 ‘스모프리피드 약제의 부작용이 아니라는 해명자료’다.
▲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에서. 왼편은 이번 신생아 사망사건을 일으킨 스모프리피드 약제의 사용설명서. “약은 개봉 즉시 사용하고, 한번 사용하고 남은 액은 버려야한다.”고 돼 있다. 오른편은 이번 사건이 ‘스모프리피드 약제의 부작용이 아니라는 해명자료’다.
ⓒ 식품의약품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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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 수 있는 문제 안 고쳐 온 의료진 책임져야

의료 과실은 어떻게 성립하게 될까요? 환자가 중태에 빠지거나 죽으면 책임을 물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환자란 대개 이미 위험에 빠진 이들이니까요. 대략 다음의 4가지가 연속적으로, 함께 일어날 때라야 의사에게 그리고 그를 감독할 상위 기관에 의료과실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상식적 교육을 받은 의료인은 이 의료행위로 인하여 환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2. 의료인은 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방편도 알고 있고, 그 행위도 가능하다. 
3. 그럼에도 이를 시정하지 아니하고 태만, 방관, 실수(이익을 취할 목적도 포함해)로 위험을 초래할 이 행위를 지속한다.
4. 그로 인하여 환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제적 위험이 발생했다.


'중환자실(重患者室)'을 영어로는 '인텐시브 케어 유닛(Intensive Care Unit)'이라고 합니다. 이대목동병원도 그랬죠. 집중적인 치료를 행하는 곳이란 뜻입니다. 더 확실하게, 더 성실하게 치료를 하겠다고 약속한 방입니다. 환자들과 그 가족이 그렇게 믿고 있는 방입니다. 보호자도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죠. 그곳에서 의료진들은 야식을 먹었습니다. 근무지침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아이들이 죽기 얼마 전에는, 16명의 아기 중 13명이 로타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습니다. 전조증상도 있었습니다.  

"신생아들을 위해서 헌신해온 의료인들을 구속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만, 우리는 저런 관행을 '헌신'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의료행위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환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것은 오염된 약물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 지원군입니다. 알바를 하던 랩걸은 이제 중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은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 아프지 않은 사람은 입을 다물고 도와야 한다. 25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그 시각이 잘못된 세계관이라고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 <랩걸> 69쪽

하물며 의료진들임에랴…, 말할 것도 없죠. 책임 있는 자가 마땅히 책임을 지는 것에서부터 해결도 시작할 것입니다. 닥치고 책임, 닥치고 치료!



태그:#신생아사망, #이대목동병원, #랩걸, #스모프리피드, #의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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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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