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감빵'과 인연이 깊습니다. 학창시절에는 학생운동으로 수감생활을 했고, 사회로 나와서는 인권활동가로서 구금시설 인권 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가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고 느낀 점을 담은 '감빵'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최강 한파에 모두 옷깃을 여미고 집으로 향하는 24일(수요일) 오후 9시,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아래 <슬빵>) '본방사수'를 위해 집에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지난해 11월 22일부터 매주 수, 목에 방송된 이 작품은 16부작을 끝으로 지난주 종영했다. 아마 많은 팬들이 헛헛한 마음으로 수요일 저녁을 맞이했으리라.

<슬빵> 시청률은 역대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중 <도깨비>, <응답하라 1988>, <시그널> 등에 이어 4위를 기록하며 마무리됐다.

<도깨비>는 당대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태양의 후예>, <시크릿가든> 등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인 데다 공유, 김고은 등 유명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았다. <응답하라 1988>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의 속편이라는 프리미엄을 등에 업은 채 출발했고 박보검, 혜리, 류준열 등 이른바 청춘스타들이 포진해 첫 회부터 전작의 시청률을 뛰어넘었다.

또 한편의 명품 드라마 <시그널>은 장르물로 인정받은 김은희 작가의 작품으로 화제를 모은 데다 김혜수, 이제훈, 조진웅이라는 충무로 스타 배우들이 출연해 시청률이 낮을 수가 없었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한 장면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한 장면
ⓒ TvN

관련사진보기


여기에 비해 <슬빵>은 이름은 물론 얼굴조차 잘 기억되는 배우가 대거 출연한 드라마였다.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출연진은 교도관 역을 맡은 정경호, 정웅인, 성동일 등 구력 있는 배우들과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f(x)' 정수정(김지호 역),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위너'의 멤버이면서 슈퍼스타K 오디션 출신 강승윤(장발장 역) 등이다.

장기수 역의 최무성은 <응팔>에서 박보검 아빠, 유대위 역을 맡은 정해인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배수지를 좋아하는 경찰이었다고 부연설명을 해야 기억나는 배우들이었다.

물론 신원호 피디의 명성이 새 드라마에 기대를 갖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16회 내내 감옥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두고 높은 인기를 예상한 평론가들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만큼 <슬빵>은 한국 드라마 역사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메이저리그급 야구선수 김제혁 역 박해수(주인공), 혀가 짧아도 모두가 알아듣게 말하는 문래동 카이스트 역 박호산, 서울대 출신 마약사범 해롱이 유한양 역 이규형, 튀지 않는 비리 교도관 목공반 부장 역 최연동, 어리바리한 척하면서 비수를 감추고 있었던 구치소 소지 역 이훈진, 배식시간에만 포효하는 교도소 소지 역 김한종, 실존 인물 맹검사를 떠올리게 했던 명교수 역 정재성, 김제혁 매니저를 자청한 법자 역 김성철, 김제혁 '덕후' 기자 이준돌 역 김경남, 쉼 없이 말하는 교도관 송담당 역 강기둥….

주요 배역을 받은 이들 모두 연극 또는 뮤지컬 등을 통해 오랜 세월 무대 경험으로 연기력과 내공을 쌓아온 사람들이다. 이 배우들 덕에 '마법'이라고 불리는 신원호 PD의 연출과 오래 호흡을 맞춰온 이우정 작가의 대본이 더욱 빛이 났다. <슬빵>의 성공은 지금도 대학로 작은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많은 배우들에게도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슬빵>의 인기는 '도둑들' 덕분?

<슬빵>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질 '감빵'의 실제 생활을 용어 하나, 소품 하나까지 정확하게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초반 관심을 끌었다(감방이 맞는 표현이나, 드라마에서 쓰이는 표기 방식대로 감빵이라고 씁니다).

감빵 경험을 해 본 사람 입장에서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와 비교하며 리얼리티를 확인하고 감탄하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2상 6방 크기가 너무 넓어 우리나라 구금시설의 가장 크고 오래된 문제인 과밀수용 문제를 드러내지 못한 대목은 많은 '빵잽이'들의 지적을 받았다.

구금시설 과밀수용 문제는 지난 2016년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유현석공익소송기금으로 진행한 헌법소원에서 승소하면서 법무부가 본격적인 대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부 수용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배상을 받아내기도 했다.

2016년 당시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을 통해 모든 구금시설에서 수용자 1인당 최소한 2.58㎡, 즉 0.78평 이상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명시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함에 있어 사람을 국가행위의 단순한 객체로 취급하거나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고 행형에 있어 인간 생존의 기본조건이 박탈된 시설에 사람을 수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수형자의 인간 존엄과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

"범죄자들에게 세금을 들여서 편안히 살게 해주라는 말이냐?"는 질문에 대한 헌재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형벌로 주어지는 징역형은 신체가 구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정해진 일을 하는 형벌이지 춥고 배고프고 좁고 힘들게 가두어두라는 형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대목이다.

<슬빵>이 대중적인 인기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도둑놈'들의 사연 때문이기도 했다. 감빵에서는 교도관들도, 수용자 자신도, 갇혀 있는 사람들을 '도둑놈'이라고 부른다. "다 도둑놈끼리만 모여 있는데 누가 누굴 믿고 누가 누굴 배려하냐"는 자조적인 소리가 수시로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공소장 또는 판결문상) 감빵 수용자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주고 온 사람들이 99%다. 150여 명이 있던 서울구치소 10동 하 사동 전체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던 나와 향정신성의약품 단순투약범인 서너 명 빼고는 모두 그랬다. 그래서 아마 다른 사람들을 칭할 때도, 자신을 칭할 때도 '도둑놈'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나쁜 놈'이 아닐 수도 있다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속 고박사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속 고박사
ⓒ tvN

관련사진보기


감빵에 있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억울한 부류와 억울하지 않은 부류이다. 먼저 억울하지 않은 부류는 <슬빵> 장기수 김민철처럼 자신이 한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며 피해자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감빵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 <슬빵>같은 드라마를 만나는 일처럼 매우 드문 일이기는 하다.  

억울한 부류는 또 세 갈래로 나뉘는데, 첫 번째 억울한 부류는 자신이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는 '완전히 억울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정말로 누명을 썼거나 잘못된 법 집행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영화 <재심>으로 알려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나 삼례 나라슈퍼 강도살인 사건처럼 의도적이거나 잘못된 수사로 부당한 옥살이를 한 이들의 진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으니 말이다. <슬빵>에서는 유지웅 대위가 이렇게 완전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두 번째 억울한 부류는 자신이 죄를 짓기는 지었으나 이 정도의 형량을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상당히 억울한' 사람들이다. 이 부류들은 대부분 공범이 배신해서 뒤집어썼다고 주장하거나 변호사가 실력이 없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믿는다.

자신이 전관예우 같은 수임료가 높은 변호사를 선임했다면 훨씬 적은 형량을 받거나 집행유예로 끝났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옥살이 내내 상당히 억울한 마음이 유지된다. <슬빵>에서는 문래동 카이스트가 이런 부류다.

세 번째 억울한 부류는 자신 말고도 죄지은 놈들이 많은데 왜 자신만 이런 벌을 받느냐고 하는 '살짝 억울한' 사람들이다. 이 부류들은 일단 뉴스를 장식하는 재벌들이나 정치인들이 자신보다 훨씬 나쁜 놈들인데 벌 받지 않는다고 분개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나쁜 놈'들을 줄줄이 말한다.

마약사범 중에 이런 사람들이 꽤 있는데, <슬빵>의 해롱이 유한양은 그래도 이런 주장은 하지 않았다. 물론 고박사처럼 남의 죄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감빵에 들어온 '선택형 억울한' 사람들과 김제혁처럼 정당한 일을 했으나 억울하게 일이 꼬인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슬빵>이 뛰어났던 것은 감빵에 있는 사람들의 죄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애틋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덜 미워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연결하면서, 감빵 안에 천성이 나빠 구제불능인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상기시켜 준 것이다.

이는 범죄 발생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는 '사회적 책임' 논리와 맞닿아 있다. 실제로 많은 범죄가 빈곤으로 인해 생겨난다. 부의 불공정한 분배로 인한 가난의 반복, 그로 인해 생겨나는 교육의 부족, 가정의 불화와 파괴 등 사회적 요인이 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범죄 행위 자체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데에는 사회의 책임도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감옥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일뿐

더 나아가 우리가 인권 침해를 호소하는 수용자들의 항변을 향해 "죄인이 말이 많다"거나 "죄의 대가"라고 말하진 않았는지, 수사과정이나 형 집행 중에 일어나는 가혹행위나 부당한 권리 침해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이번 기회에 생각해봤으면 한다.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고, 만나고 싶은 이를 만나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이 어디 있겠는가.

극중에서 경찰이 출소하는 '해롱이' 유한양에게 함정을 파 마약을 투약하게 한 후 다시 체포해가는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출소 직후 교도소 바로 앞이라는 설정이 과하기는 하지만, 마약사범 수사에서 그동안 비슷한 방식의 함정수사나 검거된 피의자에게 제보를 강요해 실적으로 올리던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죄를 짓고 형벌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빈번한 인권 침해를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인권과 그렇지 않은 인권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교도소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감옥은 우리가 외면하고 피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넘어서야 할 과제다. 감옥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감옥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우리 중 누군가가, 또는 내 가족 중 누군가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눈앞에 두었던 김제혁 선수처럼 담장 안에 갇힌 후에야 깨닫게 된다면, 그땐 너무 늦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인권활동 16년 차.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집시법 위반 등으로 두 차례 구속돼 실형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감빵생활'을 하던 중, 열악한 구금시설 인권상황에 분노하며 인권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출소 직후 유일하게 감옥인권활동을 하던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인권활동을 시작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자유권 전문위원으로 전국 30여 개 구금시설에 대한 방문조사와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등 구금시설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다. '감빵' 수용자들의 인권 보장이 사회 전체 인권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태그:#슬감, #슬기로운감빵생활, #명랑한감빵생활, #수용자인권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