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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반박했다.
▲ 검찰수사 반박하는 이명박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반박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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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신을 향해오는 검찰의 칼끝을 겨냥해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최근 수사를 받거나 구속을 당한 공무원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정치보복의 희생양이란다. 그러다가 기자회견 말미에는 평창올림픽 운운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여유를 부리려 노력한다.

지금은 평창올림픽에 집중할 때지 과거사를 논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현재 진행 중인 국정농단의 수사가 자신을 향한 정치보복이라면 결기 있게 맞서면 되는데도 구체적인 내용 없이 추상적으로 몇 마디를 던진다. 보수세력이 알아서 뭉쳐 대응해 달라는 정도의 메시지를 남기는 건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전방위 수사가 있었다. 국세청과 국정원, 검찰 등 모든 권력기관이 총동원됐고, 과도할 정도의 언론플레이까지 가미했다. 그 당시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회견을 연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그 어디에도 자신이나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정치보복의 희생양이라는 뉘앙스를 풍기지도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어떻든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국민들에게 사죄한다는 내용의 것이었다. 같은 나라에서 거의 동시대에 최고 권력자였던 사람의 태도가 이렇게 다르다는 말이니 당혹스러울 뿐이다.

진정으로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기자회견을 하지 않더라도 일반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한다. 굳이 자신의 입으로 정치보복 운운하면서 책임을 피해가려고 발버둥 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국민들은 그런 꼴사나운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살을 찌푸릴 뿐이다.

최소한 양심이라도 있는 지도자의 기자회견이라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므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것, 새로운 정권이 앞으로 전진을 해야 하는데 자신의 문제로 과거에 묶여 있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는 것 정도로 충분하다.   
  
이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검토해 보자. 자신과 함께 일했던 고위공직자들의 권력형 비리는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의 형님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재판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이고, 이명박 정권에서 차관으로 일했던 신재민, 박영준이 형사처벌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며, 그의 측근 최시중이나 천신일은 왜 구속됐는지 궁금해진다.

더욱이 최근 국정원 특활비를 받은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김진모 전 민정비서관,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 부정선거 개입과 특활비 등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어느 정부 때 활동했던 사람들인가? 권력형 비리가 박근혜와 최순실 정도의 비리를 말하는데, 자신들의 측근들은 그보다 약하다는 의미로 변명하는 건가. 과연 이명박 다운 후안무치다.
 
자신의 5년 업적으로 4대강 살리기와 자원외교를 언급하지만 이미 4대강 사업은 실패한 사업임은 자명하다. 수십조 원의 세금을 쏟아 넣고도 아무런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강이 썩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4대강 사업이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야 한다.

자원외교는 부실 그 차제로 자원외교에 동원되었던 공기업들이 이미 파산의 지경에 이른 상태다. 국민들의 세금을 허공에 날려보낸 책임을 떠안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공으로 내세우려 하니 지금이 과연 어느 시대인지 모르고 사는 것 같다. 과거 시대와는 다르게 지금은 모든 정보를 누구나 공유하고 있다. 자신들이 은밀하게 국민을 속일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적은 것이다.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그리고 당선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논란이 야기되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선거 전에는 BBK 관련 사건, 다스라는 회사의 실소유주에 대한 의문, 그리고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민간인 사찰문제, 내곡동 사저 땅 등 논란의 중심에 이 전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이 언론에서 인터뷰한 기사들이 떠다니는데도 사실을 부인했고, 그러한 의문을 제기했던 측근 김경준, 김유찬, 그리고 야당 국회의원 정봉주가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구속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어떤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모두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제는 공수가 전환되었다.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컨트롤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더욱이 측근들도 그를 감싸고 있기에는 자신들의 책임이 너무 커질 수밖에 없다. 측근들을 중심으로 노무현의 이름이 등장하는 이유다. 현 정권과 동일시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들먹임으로써 물타기를 하려는 시도다.

중요한 건 '적폐청산'... 물타기는 먹히지 않을 것

"물러서지 않겠다" 지난 2003년 10월 10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기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뒤따라 들어오는 윤태영 대변인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물러서지 않겠다" 지난 2003년 10월 10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기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뒤따라 들어오는 윤태영 대변인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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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복이라면 자신들의 결백을 입증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굳이 노무현의 이름을 들먹일 필요가 없다. 결국은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같은 잘못이 있으니 자신들만 수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흔히 범죄자들의 하소연 중 '다른 사람들도 같은 잘못을 했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변명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노무현 파일'을 거론한다. 자신들도 5년간 집권했고 사정기관의 정보를 모두 들여다봤으므로 (노무현 정부의 비리에 대하여) 아는 것이 많다는 취지다. 한편으로는 물타기를 하면서 쟁점을 흐리고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세를 결집하겠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흙탕 싸움을 이어감으로써 정치 쟁점화하면 정국이 혼란스럽게 되고, 결국은 정권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그러나 분명해 해둬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적폐는 청산되야 한다는 것, 같은 잘못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 주말마다 촛불을 들었던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들의 소망이다. 자신들의 후손이 언제까지나 촛불을 들게 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노무현 정부의 비리가 드러나는 것이 무서워서, 정국혼란이 정권에 부담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다면 또다른 적폐를 남기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서 현 상황을 지켜본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아마도 '과거 내가 집권할 당시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라도 책임을 지겠다, 나 때문에 적폐청산에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든지 밟고 지나가라'라고 자신 있게 외치지 않았을까. 그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여준 자기희생이고 진정성이었다. 별다른 세력이나 지역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집권했던 까닭이다.

정부 여당은 과감하게 외쳐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잘못이 있다면 언제든지 같은 책임을 묻겠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잘못했다면 언제든지 그의 무덤에 돌을 던져도, 침을 뱉어도 좋다고. 국민들은 노무현을 이유로 이명박을 덮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을 문재인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정범씨는 법무법인 민우 소속 변호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입니다.



태그:#참여정부파일, #노무현파일, #이명박국정농단, #이명박비리, #노무현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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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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