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을이 언제 온지도 깨닫지 못한 채 겨울을 맞이해버렸다. 급작스럽게 추워진 날씨는 사람들의 외출을 뜸하게 만들었다. 난방이 틀어진 곳에서 한껏 게으름을 즐기다가 연말을 허둥지둥 보내버렸다. 그렇게 학기를 무사히(?) 끝내고 방학을 맞이했다. 나는 왠지 더 쓸쓸해진 마음을 안고 고향 전주에 내려왔다. 

전주의 날씨는 서울이 마치 다른 나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외투를 벗어던질 정도로 따뜻했다. 어쩌면 심리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서울은 날씨만 추운 곳이 아니다. 마음의 공허함이 바깥의 찬바람을 더 차가운 것으로 만든다.

서울에서의 나는 긴장 상태가 '정상 상태'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졸여진 마음은 몸까지 피곤하게 만들곤 했다. 먹는 양이 줄어들고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말랐다'는 소리를 상경 생활 3년차부터 줄곧 듣게 되었다.

나는 내가 서울에서 그렇게 지내고 있는지 요즘에 와서야 깨달았다. 서울의 자취방에서는 가만히 있는 걸 못견뎌랴 했고 혼자 먹던 함께 먹던 식당에서 내 몫으로 나온 음식을 항상 조금씩 남겨야만 했다. 무엇이든 손에 붙잡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고 숟가락 몇 번만 왔다갔다 해도 배가 불러 음식이 물리곤 했다.

 전주의 나의 집, 따뜻해지는 곳.
 전주의 나의 집, 따뜻해지는 곳.
ⓒ 김용석

관련사진보기


 가족들의 사랑방. 두런두런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족들의 사랑방. 두런두런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 김용석

관련사진보기


이번 방학에 스케줄 상 전주와 서울을 사나흘에 한 번씩 오가게 되었다. 전주에서 보내는 사흘 동안 나는 엄청나게 먹어댔다. 있는 힘껏 늘어지기도 했다. 하루에 다섯 번씩은 음식을 챙겨 먹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집 바로 옆에 있는 가족의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집이 한옥마을 근처라 가끔 야경이 아름다운 그곳에 밤산책을 가기도 했다. 세월아 내월아, 시간을 하릴없이 흘려보내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내 방은 이층의 다락방인데 작은 베란다가 딸려 있다. 아침마다 그 작은 공간에 참새와 까치가 놀러온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많이들 놀러오곤 했다. 날씨가 추운 요즘엔 발길이 드물지만 요새도 종종 그들의 목소리는 내 아침잠을 기분 좋게 깨운다. 새들의 앙증맞은 목소리에 잠을 방해 받는 아침,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창에 처져있는 블라인드 틈새로 침입해오는 아침햇살도 불쾌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물론 매일 같이 참새가 시끄럽게 굴고 햇빛이 날카롭게 비춰온다면 이런 좋은 것도 결국은 불쾌하고 짜증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절한 시간 안배(?)로 일주일에 한두 번, 많으면 서너번 정도로 이런 훼방을 '즐겁게' 받는 중이다.

어제인가. 아빠가 마당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아침에 놀러올 참새들이 반가워하겠지.

 아빠가 만들어놓은 눈사람. 귀엽다. 참새들의 친구가 되어주길.
 아빠가 만들어놓은 눈사람. 귀엽다. 참새들의 친구가 되어주길.
ⓒ 김용석

관련사진보기


이런 삶을 지낸 지 어느새 보름이 지났다. 그리고 내 마음은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전주에서의 나태한 삶. 그렇다. 이런 삶의 방식은 분명히 나태한 것이다. 물론 내가 하루를 온종일 참새 구경만 하면서 보내버리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공부를 시작해서 하고 있고 책도 꾸준히 읽고 있다. 그런데 무언가 공허한 것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치열함'과 '열정'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은 욕심의 도시다. 전주는 안분지족, 안빈낙도의 도시다. 나의 처지를 비관할 만한 환경과 조건이 드문 곳이어서 그대로 만족해 버리게 되는 곳이다. 물론 전주와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전주에도 분명 자신의 삶을 더 좋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오히려 더 많을지도 모른다.

나의 거만함이요 게으름이 이런 배부른 소리를 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나는 전주에 오면 마음이 지나치게 편해진 나머지 아무 욕심도 갖지 못한 채 무의미한 시간만을 보내게 된다.

서울의 삶은 녹록지 않다. 정체불명의 멈추지 않는 흐름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자조와 비관을 하며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요즘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방식이란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요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커다랗지만 일시적인 행복은 행복이라기보다 쾌락이라고 생각한다.

소소하지만 안정적인 행복이 진정 행복이라 일컬여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확행은 인생의 본질인 것이다. 도처에 깔린 어두운 불행이 이런 신조어를 낳았을 뿐, 삶을 낙관하는 사람들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소확행을 추구하고 얻으며 살아왔으리라.

전주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소확행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서울의 치열함과 분주함, 긴장이 그립다. 기질상 소소한 생활에 오랫동안 만족하지 못하나 보다. 나는 소확행을 잃어가고 있다.

어떤 것의 가치는 그것의 부재를 통해 알게 된다. 나는 넘쳐 흐르는 행복의 조건 속에서 행복을 잃어버렸고 그 이전에 나를 불행하게 했던 것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의 도전이, 그 치열한 삶의 조건이 그리워졌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토록 모순적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마을재생사업 기획 및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