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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모처럼 만에 읍내에 있는 장터에 나왔습니다. 사람 구경도 하고,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강화풍물시장. 상설시장이지만 2일과 7일에는 오일장이 서는 전통시장입니다.
 강화풍물시장. 상설시장이지만 2일과 7일에는 오일장이 서는 전통시장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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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풍물시장은 상설시장이지만, 5일(2일, 7일)마다 난장이 서는 전통시장이기도 합니다. 장이 서는 날이면 강화도 주민뿐만 아니라 외지 관광객들까지 몰려와 장터가 떠들썩합니다.

상설시장 건물 안은 제법 따뜻하나, 난장이 서는 한데는 요 며칠 추위로 찬바람이 쌩쌩 붑니다.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해야 하는데, 날이 추워서 그런지 여느 때와 달리 한산합니다. 두툼한 옷을 걸쳐 입고, 손님을 부르는 목소리도 잦아들었습니다.

추운 날 생각나는 풀빵

오일장이 서면 풍물시장에는 풀빵 장수가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오일장이 서면 풍물시장에는 풀빵 장수가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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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장터에 손님들이 몰려있는 곳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풀빵 국화빵을 굽는 곳입니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아저씨 두 분께서 기계 두 대로 부산 나게 손을 놀립니다.

나는 아내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여보, 우리 국화빵이나 몇 개 사먹을까?"
"좋지! 추운 날 먹으면 안성맞춤이에요!"

내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아내가 먼저 풀빵 굽는 곳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풀빵가게는 포장을 쳤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우리도 줄을 섰습니다. 

"한 봉지에 얼마예요?"
"여덟 개에 2천 냥입니다."

우리는 풀빵 두 봉지를 주문하였습니다. 

빵을 굽는 두 분 손길이 더욱 빨라집니다. 풀빵기계가 바삐 돌아갑니다. 

풀빵 굽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이 일도 만만찮아 보입니다. 오랜 기간 손에 익힌 노하우가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아저씨보다 아주머니 풀빵 굽는 솜씨가 더 놀랍습니다. 

풀빵은 굽는 일도 만만찮습니다. 재료는 밀가루 반죽에 팥소가 들어갑니다.
 풀빵은 굽는 일도 만만찮습니다. 재료는 밀가루 반죽에 팥소가 들어갑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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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빵 굽는 일은 반죽이 잘 되어야하고, 불 조절을 잘하여 뒤집기를 잘해야 맛나게 구워집니다. 팥소도 맛있어야 하구요.
 풀빵 굽는 일은 반죽이 잘 되어야하고, 불 조절을 잘하여 뒤집기를 잘해야 맛나게 구워집니다. 팥소도 맛있어야 하구요.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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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 붓으로 국화빵 틀에 기름을 칠을 합니다. 구멍 틀에 주전자에 담긴 질척한 반죽을 리드미컬하게 붓습니다. 틀 속에 적당량이 들어갑니다. 이제 팥소를 떠서 넣습니다. 이때부터 뒤집는 기술을 발휘합니다. 뒤집는 데 상당한 기술이 숨어 있습니다. 너무 일찍 뒤집으면 설익을 테고, 늦게 하면 타기 때문입니다. 한 두어 번은 제때 뒤집어야 풀빵이 적당히 구워집니다.

아내가 아주머니께 묻습니다.

"아주머니, 풀빵 굽는 게 쉬워 보이지 않네요! 빵 뒤집는 게 타임을 잘 맞춰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보여요? 누구나 부닥치면 잘 해요! 처음엔 좀 그러겠지만…."
"근데, 아저씨는 아직 좀 더뎌 보여요?"
"좀 그렇죠! 이 양반 가끔 불 조절을 못해 까맣게 태우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아저씨가 구운 틀에서는 탄 게 몇 개가 보입니다. 세상에 쉬운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풀빵에는 아련한 추억이 있다

내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를 따라 곧잘 장에 가곤 했습니다. 그 당시 오일장은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삶의 현장이고, 이웃마을 사람들과 교류하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장에 따라가면 장구경도 좋았지만, 어머니가 사주는 군것질거리에 군침을 흘렸습니다. 장날 먹은 짜장면은 그때 최고였습니다. 부모님은 눈깔사탕이며 겨울철에는 풀빵도 많이 사주셨습니다.

집안 큰 제사를 앞 둔 어느 장날. 어머니는 맛난 풀빵 몇 개를 내게 안겨주고, 당신 볼일을 보러 갔습니다.

"나 일보고 올 때까지 넌 꼼짝 말고 여기서 좀 기다려라!"

나는 풀빵을 야금야금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었습니다. 풀빵 몇 개를 게 눈 감추듯 먹고, 한참을 기다려도 어머니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기다리다 못해 어머니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어머니는 장을 다보시고 허겁지고 풀빵장수한테 왔을 때는 내가 그 자리를 떠난 뒤였습니다. 어머니가 이젠 나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찾느라 복잡한 장 구석구석을 헤맸습니다. 풀빵 파는 데서 결국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마음은 바짝 타들어갔습니다.

"우리 아들 미안해라! 건너 마을 고모님 만나 이야기 하다 늦었어. 여기서 그냥 기다리지 않고선…."

나는 어머니를 보고,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어머니도 반가움에 야단치기보다는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풀빵 몇 개를 더 사주셨습니다. 그 때 먹었던 풀빵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호호 불며 먹는 풀빵 맛

쉴 사이 없이 돌아간 풀빵기계에서 말랑말랑 익은 풀빵이 구워집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차례차례 빵이 건네집니다.

우리 차례도 되었습니다. 종이 봉지에 풀빵 두 봉지를 받았습니다. 한 봉지는 아내 몫, 또 하나는 내 몫. 우리 어린애들처럼 풀빵을 먹어봅니다.

"당신, 천천히 호호 불어 먹어? 잘못하단 입천장 데이니까!"

따끈할 때 먹는 풀빵은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따끈할 때 먹는 풀빵은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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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불며 풀빵을 입에 넣는데, 따뜻해서 참 맛있습니다. 팥소가 달달합니다. 예전 어머니가 고향 장날에 사주셨던 그 맛과 비슷합니다. 금세 한 봉지가 바닥납니다.

풀빵은 아무래도 날이 추운 겨울날 먹어야 더 제 맛인 것 같습니다. 추억이 담긴 맛입니다.

추억이 있는 풀빵. 예전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추억이 있는 풀빵. 예전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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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풀빵, #국화빵, #강화풍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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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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