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느 날 누군가 갑자기 사라졌다? 어제까지 있던 사람이 사라져 소식을 전혀 알 수  없게 됐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과거에도 지금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다만 내 주위에서 발생하지 않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란 부제를 담고 있는 <인간증발>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단순히 이것이 일본만의 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프랑스인인 저자 레나 모제와 사진 작가인 스테판 르멜이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버린 일본인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이 자신의 나라도 아닌 일본인들의 삶을 추적한 이유는 뭘까? 저자는 도시 생활에서 무의미했던 자신의 삶을 생각하다, 증발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일본 사람들의 흔적을 조사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여러 이유로 자신이 살던 고향, 친구, 가족을 버리고 그들과 소식을 일체 끊은 채 도망친 사람들의 기록이다. 이들은 신분을 바꾸고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자신이 살던 곳에서 연기처럼 도망친다. 주로 야반도주다. 도망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다.

어떤 사람은 건설사 사측과 폭력배의 결탁으로 도망치듯 쫓겨나고,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하다 불황으로 인해 장사가 안 돼 망해 어쩔 수 없이 도망치기도 한다. 그렇게 도망치다가 어떤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어떤 이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죽은 사람처럼 살아간다. 또 어떤 이들은 노숙자가 되어 살아간다.

일본의 또 다른 속살, 증발해 버린 사람들

<인간증발>
 <인간증발>
ⓒ 책세상

관련사진보기


저자는 이런 사람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일본인들이 감추려 하던 일본인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또 다른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던 하시의 이야기는 단순히 하시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내가 혼자 집에 있던 어느 날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집 앞에 서 있는 짙은 색 양복 차림의 두 남자가 짧게 말했다. '건설사가 이 집을 허물고 현대적인 고층 빌딩을 지을 예정이니 집을 비워주셔야겠습니다.' 두 번째 찾아왔을 때도 남자들은 같은 말을 했다. 뒤에 크고 건장한 남자를 거느리고 온 작은 남자가 차갑고 위협적인 말투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어엿한 회사원이었던 하시. 그도 어느 날 증발해버린 남자다. 건설사가 야쿠자들을 동원해 집을 비우라고 협박한다. 당시 개발 경제에 의해 투기에 열을 올리던 일본, 투자자들은 집주인들을 내쫓기 위해 각종 불법적인 수단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협박에 못 이겨 아내는 친정으로 피신한다. 시달리던 하시도 쪽지 한 장 남겨놓고 후지산 숲속으로 떠난다. 축축한 숲속, 그의 가방 안에는 밧줄이 들어있다. 자살용이다. 그러나 그는 자살에 실패한다,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 살아난 하시는 26년 동안 증발된 채 살아간다.

문제는 하시는 어떤 사업도 하지 않았고 빚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건축 개발자들이 고용한 야쿠자들의 협박에 못 이겨 모든 걸 내놓고 스스로 증발을 선택한다. 20년이 흐른 후 하시는 가족을 찾아가지만 아내는 자신이 떠난 후 10년 동안 찾아 해마다 재혼을 했고, 부모님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하시 또한 10년 전에 아내가 사망신고를 해 이미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없는 존재. 숨을 쉬고 있지만 숨이 없는 존재. 세상으로부터 이슬처럼 증발해버린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쫓겨나는 모습,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익숙한 모습이다. 부동산 투기가 불붙었던 70~80년대 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많은 원주민들이 쫓겨났었다. 또한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은 살 곳을 잃은 채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또 IMF 때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잃고 노숙자 생활을 하든가, 거처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모습들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산야, 지도에도 없는 일본의 이상한 도시

일본의 한 중심인 도쿄의 게토라 할 수 있는 도시 산야. 도시 속의 도시라 할 수 있는 산야는 한때 지도에 있었지만 지금 일본 지도 어느 곳에도 산야라는 지명은 없다. 일본인들에게 이곳은 없애버리고 싶은, 없었으면 하는 도시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범죄자와 부랑자, 노숙자, 빈민들이 득실거리는 지저분한 소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택시 기사들에게 이곳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이들은 이곳을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인간, 모두에게 잊힌 인간, 이름 없는 인간들'만 존재하는 그야말로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사는 곳이라고 지칭한다. 마치 영화 <청년 경찰> 속에 나오는 중국 교포들에 의해 인신매매와 장기매매가 성행하는 으스스한 도시의 뒷골목이 연상되는 도시가 산야다.
"세계 3위의 경제 대국 수도 안에 침묵이 가득하고 사회규범이 통하지 않는 유령 같은 세계가 있다. 에도시대에는 범죄자의 처형장이었다가 훗날 도살장이 되었고 그 다음에는 일본에서 가장 커다란 인력시장 되었다. 좁은 골목마다 쓰레기가 널려 있고 지린내와 술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그림자들 외에는 인기척이 없다."
휴지 하나 발견하기 힘든 일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많은 이들은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는 이들 대부분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어느 날 증발해 버린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시골이나 산으로 사라지지만 도시 속으로 증발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매년 10만 명 이상 사라지는 일본인

매년 일본인들은 10만 명 이상이 사라진다고 한다. 사라진다는 것은 죽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디에선가 이들은 존재하고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 일본 사람들은 이들을 인도의 불가촉천민처럼 취급한다. 사회 최하층 계급이 되어 지저분하고 피를 묻히고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신분제도가 없지만 인도의 카스트 제도 하에 있는 것처럼 최하층이 되어 빈민촌이나 동네 외곽에 살면서 자기들끼리 은밀하게 살아간다. 가짜처럼 살아간다.

한때 검도 강사로 활동했던 이치로도 이중 한 사람이다. 80년대 일본은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시기였다. 이때 이치로는 살림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교자 가게를 열었다. 은행 대출을 받고 연 가게는 불경기 탓에 장사가 되지 않았다. 대출금은 늘어나기만 했다. 결국 그는 견디지 못하고 '심야 이사 업체'의 도움을 받아 가족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하고 만다. 그 후 그가 하는 일은 공사판 건설노동자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런데 그는 야반도주를 이렇게 말한다.
"도망쳤다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낙인입니다. 증발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일이죠."
이치로의 집에서 야반도주란 말은 일종의 금기어다. 배척받는 계층이었단 말도 금기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향해 수군댄다. 함께 할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일본 사회에서 이들은 터부시하는 사람들로 취급받지 함께 살아가야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해서 이들이 도망칠 곳은 사람들의 눈길이 최대한 닿지 않는 곳이다.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더럽고 지저분하고 병들고 아무런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이치로의 말처럼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일일지 모른다.

이들 중 이치로처럼 가족 모두가 숨어살지 않고 혼자 사라졌다 소식이 없는 사람들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망자로 처리되거나 실종자로 처리된다. 그러다보니 주민등록도 소멸되어 사회보장 혜택을 못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의 자녀들마저 학교에 다닐 수 없다. 이게 일본에서 증발된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증발된 사람들의 유형엔 다른 종류의 사람들도 있다.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라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가족과 소통하지도 않고 친구와 연락도 하지 않는다.

오직 집, 그것도 자신의 방에서만 틀어박혀 살아가는 오타쿠들이다. 오타쿠는 일본에서 80년대 초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취미에 몰두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세계에만 갇혀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일본 사회를 이렇게 진단한다.
"일본 사회는 다른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캐릭터를 통해 개성을 뽐내고 일상을 우상에게 바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일본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 자발적 은둔을 선택하기도 하고 축제를 열어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한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디를 가든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특히 자신보다 힘이 있거나 윗사람들에 대한 깍듯함은 그 자체다. 그런 일본인을 사람들을 칭찬한다.

그런데 한 번 되돌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획일주의 문화와 수직적 관계의 사회의 산물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이것이 일본만의 모습일까? 일본과 가까운 한국 사회 또한 어떤가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 또한 자발적 실종을 택하고 있지 않을까. 온라인 속에 파묻혀 자신들만의 세계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오타쿠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는 이런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경쟁이라는 울타리 속으로 내몰리고 있고 경쟁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절망이라는 모자를 쓰고 해매이다 좌절의 늪에 빠져 살아간다.

그러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든가 방에 처박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아간다. 그리고 온라인에 온갖 불만과 불평을 털어놓고 증오의 씨앗을 키우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증발'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곧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책세상(2017)


태그:#인간증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