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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름의 고장 양양군에서도 해돋이 명소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낙산 의상대로, 이곳은 새벽예불을 올리려는 이들만큼 많은 탐방객과 사진작가들이 해돋이를 보려고 찾는다. 해가 뜨기 전 하늘이 선홍빛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 또한 곱다.
▲ 의상대 해오름의 고장 양양군에서도 해돋이 명소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낙산 의상대로, 이곳은 새벽예불을 올리려는 이들만큼 많은 탐방객과 사진작가들이 해돋이를 보려고 찾는다. 해가 뜨기 전 하늘이 선홍빛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 또한 곱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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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입장에서 새해를 맞이할 때면 그에 알맞은 시 한 편 써보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를 쓰면서도 솔직히 어느 범위까지가 시라고 명쾌하게 결론내기 어렵다. 그만큼 시는 현대에 와서 정형성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어떤 형식이든 모두 곡을 붙일 수는 있다"는 작곡자의 답변을 들은 뒤로 일정한 음률을 지녀야만 된다는 고집까지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의식의 밑바닥엔 고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시가 폭넓게 대중의 사랑을 받으려면 운율과 음률이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질과 양의 변화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운율과 음률을 포기하면 시로서는 가치가 반감된다는 생각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한계령에서를 쓴 지 이미 37년이 넘어가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시는 더 어렵게 여겨지고 두려워진다. "일생에 단 한 편 한계령과 같은 시를 세상에 남길 수 있다면 성공한 시인이다"는 이들에게 "고맙긴 하지만 여전히 갈증을 느낀다"는 대답을 했지만… 더 좋은 시를 써보겠다는 욕심이 시를 두렵고 어렵게 느끼게 만든 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들에게 새해에 대한 시로 기억하는 작품이 무엇이냐 물으면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를 말한다. 그 까닭은 교과서의 영향 아닐까 싶다. 물론 김종길 시인의 이 시는 쉽고 편안한 시어들로 우리 일상의 아침풍경을 그리듯 설날 아침을 맞이한 시인의 마음을 그려놓았다.

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1926. 11. 5~2017. 4. 1)

지난 4월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오래전부터 인사를 드리곤 했던 두 분 원로시인의 작고 소식을 한꺼번에 들었다. 그날이 4월 10일이었는데 광장에서 함께했던 이들 대부분 떠나고, 서울시에서도 약속했던 날짜가 다가오자 계고장을 보내온 때였다. 스스로도 며칠 뒤엔 광장을 떠날 준비를 할 때였다. 세월호 리본공작소에 들렸다가, 머물던 곳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뉴스들을 살펴보는데 4월 8일에 황금찬 시인께서 작고하셨다는 기사가 보였다.

3·1절 광화문미술행동은 태극기와 함께 서예가들의 현장 퍼포먼스로 국민들이 원하는 세상을 보여줬다. 높이 3m에 길이 10m의 대형 걸개천에 현장에서 <民들레 眞달래>와 <손잘고 더불어> 등의 서예와 그림을 그렸다.
▲ 광화문미술행동 3·1절 광화문미술행동은 태극기와 함께 서예가들의 현장 퍼포먼스로 국민들이 원하는 세상을 보여줬다. 높이 3m에 길이 10m의 대형 걸개천에 현장에서 <民들레 眞달래>와 <손잘고 더불어> 등의 서예와 그림을 그렸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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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면식이 없는 이들이라 해도 황금찬 시인은 많은 이가 기억한다. 하물며 난 1980년 이전 이미 어린 나이에 보리수문학회와 같은 곳을 기웃거렸던 전력이 있다. 그런 입장에서 황금찬 시인을 모른다고 할 수 없고, 이곳 양양군에도 시인의 시비를 양양문학회원들과 함께 양양군에 요청을 해 건립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영결식은 물론이고 장례식장에도 찾아뵙질 못했다. 문학인장으로 치러진다는 소식은 확인했지만 영결식이 치러지는 11일에 중요한 선약이 있었다.

밀레니엄의 해를 맞이한다고 떠들썩했던 1999년 이맘때다. 형편이 어려워 수술을 할 수 없던 투병중인 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시집을 발간하고 시낭송회를 진행할 때, 황금찬 시인께서는 원고를 말없이 보내주셔서 함께 하셨다. 시낭송 행사엔 모시러 갈 입장이 못 되어 함께 자리를 못 하셨으나, 5편의 원고를 보내주신 것만으로도 많은 힘이 되었다.

참고로 황금찬 시인께서는 1918년 8월 10일, 강원도 양양군 속초읍에서 태어나셔서 2017년 4월 8일 횡성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때 김종길 시인께서 4월 1일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확인했다. 황금찬 시인은 우리 나이로 100세셨고, 김종길 시인은 92세셨다.

어느 시인이나 새해에 대한 시는 있겠지만 신동엽 시인의 시 '새해 새 아침은'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새해 새 아침은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 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퀴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 짓는다.

-신동엽 1930-1969

새해엔 누구나 거창한 꿈 한 번쯤 꾸지 않았으랴만 시인들은 소박하게 새해에도 가족들의 평안부터 꿈꾸고 있다. 가난한 시인들에겐 가족이라는 울타리만큼은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지키고 싶은 소망이 큰 이유겠다.

해오름의 고장 양양군엔 명품 소나무들이 많다. 고속도로를 건설하며 많은 소나무들이 도시로 팔려나갔는데 그만큼 양양군의 소나무들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증거다. 사진의 송림은 지난 2005년 양양산불 당시 화마가 일순간 스쳐지나가기는 했어도 온전히 보존된 낙산해변에 있는 대규모 솔밭이다. 아시안 하이웨이로 불리는 7번국도 옆에 위치하고 있어 무심히 지나치는 이들이 많으나 이곳은 작품사진을 남기려는 이들도 4계절 많이 찾는다.
▲ 낙산해변 솔밭 해오름의 고장 양양군엔 명품 소나무들이 많다. 고속도로를 건설하며 많은 소나무들이 도시로 팔려나갔는데 그만큼 양양군의 소나무들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증거다. 사진의 송림은 지난 2005년 양양산불 당시 화마가 일순간 스쳐지나가기는 했어도 온전히 보존된 낙산해변에 있는 대규모 솔밭이다. 아시안 하이웨이로 불리는 7번국도 옆에 위치하고 있어 무심히 지나치는 이들이 많으나 이곳은 작품사진을 남기려는 이들도 4계절 많이 찾는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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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 예순 다섯 날 가운데 어느 하루인들 좋은 마음으로 특별하게 맞이하지 않을 아침이 있겠느냐만 그래도 한 해를 배웅하고 맞이하는 세날 새 아침엔 각별하게 더 많은 희망들을 얹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구현하기 위해 어제 보다 오늘이 더 활기차고 할 수 있는 일이 많기를 바라며, 그 일들을 온전히 완결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겨울 그런 마음으로 함께 힘들을 모으기를 소원했다. 권력을 비판하는 글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들에 내게 "정치를 할거요?"라고 묻곤 했다. "아니요. 정치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란 대답만 했다. 솔직히 말하면 정치를 직접 할 마음은 없지만, 정치가 내 삶을 편하게 만들도록 할 생각은 분명히 가졌다.

대체로 보수적인 생각을 지닌 이들이 내게 그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이 지지하는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니 자신들이 편하게 대할 수 없었고, 그런 글을 더 이상 쓰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편한 이야기만 써보면 어떻겠어요"라 아예 방향까지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한계령과 같은 시를 많이 써서 노래로 만들면 좋지 않아요"라며 경제적으로 무능에 가까운 처지에 충고를 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까지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되는 사람으로서는 자연스럽게 어떤 글을 쓰던 세상을 보고 느낌 감정들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다만 이롭지 않은 말을 세상에 많이 내어 놓을 생각은 없다. 함께 나눠 이로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강릉시에 대한 이야기를 쓸 기회가 있으면 한 번 소개할 생각으로 간직하고 있는 메모가 있다. 허난설헌의 오라비인 홍길동전을 쓴 허균에 대한 이야기다. 아마도 허균이 자신의 재주를 믿고 말을 조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명대사가 허균에게 보낸 시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休說人之短與長(유설인지단여장)
非徒無益又招殃(비도무익우초앙)
若能守口如瓶去(약능수구여병거)
此是安身第一方(차시안신제일방)

다른 사람 장단점은 말하지 마시게
이롭지 못할 뿐 아니라 재앙을 부르네
능히 제 입을 물병처럼 지킬 수만 있다면
이것이 몸 편히 할 으뜸가는 방편일세

-송운 유정(松雲 惟政, 1544-1610), 「허생에게 보내다(贈許生 증허생)」

내용으로 보아 허균이 다른 사람들의 장단점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곧잘 한 모양이다. 어쩌면 백성들의 원성을 사는 고관대작들에 대한 말을 거침없이 토로하였거나, 사명대사가 그런 허균의 재주를 어여삐 여겨 이와 같이 좀 더 몸을 편하게 할 방도를 귀띔해주었다고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허균이 살았던 시대나 앞의 두 시인께서 살다 가셨던 시대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로부터 금보다 더 귀하다고들 말하는 현대를 거쳐 미지로 말할 수 있는 미래로 향하는 과정 속에서 늘 경계하며 살아갈 뿐이다.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갖추어졌다고 확언할 수 없는 미지의 내일, 바로 그런 새해에 대해 아픔이 아닌 즐거운 복락으로 채워지기를 희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삶이 무겁거든

정덕수

삶이 무겁다 생각되거든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땅의 흙 같은 진실만 마음에 담아라
희망이 어찌 무거울 것이며
가볍다 하여 가치가 적다 할 수 없으니

가는 길 멀다 생각 되거든
이 길 먼저 걸었을 이들의 고되었을 여정 먼저 기억하라
처음부터 길이었던 적 없는 거친 들
메마른 대지에 쬐는 뙤약볕 타는 갈증
이보다 더 고되고 힘겹게 걸었을 그들

남이 무어라 하거든 물어라
언제 최선을 다해 참여한 적 있더냐
언제 스스로 피맺히게 외쳐 본 적 있더냐
최선을 다한 참여가 힘을 만들고
그 힘이 세상을 바꾸고
그 바뀐 힘이 세상을 편하게 하리니

삶이 무겁다 생각되거든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어둔 하늘 별 초롱한 꿈을 가슴에 품어라
희망이 어찌 무거울 것이며
가볍다 하여 가치가 적다 할 수 없으니

지난 겨울 가족들이 있는 이곳 양양을 떠나 광화문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버티며 썼던 이 시엔 막연히 희망을 이야기하기 전에 스스로 나서야 된다는 주장을 담고자 했다. 스스로 떨쳐 일어나 맞섰을 때 세상이 보다 편해지고 꿈꾸었던 일들이 실현되는 걸 보게 된다. 무엇을 내게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함께할 줄 아는 사람이 강원도에도 있다는 사실과 끝까지 두려움 없이 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 내 가족과 고향, 그리고 함께하는 이 세상을 참으로 아끼기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광화문미술행동, #양양군, #의상대, #황금찬, #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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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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