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선주 공동조사단장이 이 날 드러난 유해를 살펴보고 있다. 1950년 7월 미군 장교가 찍은 희생자(사진,앞쪽)들이 67년 만에 세상 바끙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박선주 공동조사단장이 이 날 드러난 유해를 살펴보고 있다. 1950년 7월 미군 장교가 찍은 희생자(사진,앞쪽)들이 67년 만에 세상 바끙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희생자 유해와 함께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탄피(M1소총)가 함께 드러났다.
 희생자 유해와 함께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탄피(M1소총)가 함께 드러났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이거 탄피 아녀?"


대전산내유족회 한 유족이 검은 흙더미 속에서 푸르스름한 쇠붙이를 들어 보였다. 1950년 당시 군인과 경찰이 사용하던 M1 소총 탄피였다. 호미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주변을 더듬듯 헤집었다. 불과 80cm 땅 아래에서 사람의 뼈가 드러났다.

삭아 부서진 두개골 파편, 정강이, 빗장뼈 수백여 편의 유해가 쌓였다. 또 다른 탄피와  2열 흰색 단추도 나왔다. 가해자가 군인과 경찰이고, 희생자가 민간인임을 뒷받침하는 물증이었다.

대전산내학살희생자유족회(회장 김종현)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발굴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아래 공동조사단)은 27일과 28일 대전 산내 골령골 현장에서 유해의 존재 여부와 분포를 확인하기 위한 시굴조사를 벌였다.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28~30, 1400명 / 2차 : 7.3~5, 1800명 / 3차 : 7.6~7.17,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가해자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이었고, 그들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가 자행됐다.

27일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 희생자 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시굴조사 과정에서 당시 희생된 사람의 뼈가 드러났다. 박선주 공동조사단장이 드러난 유해를 조심스럽게 수습하고 있다.
 27일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 희생자 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시굴조사 과정에서 당시 희생된 사람의 뼈가 드러났다. 박선주 공동조사단장이 드러난 유해를 조심스럽게 수습하고 있다.
ⓒ 임재근

관련사진보기


대전 산내 희생자 유가족들이 흙더미 속에서 유해가 섞어 있는 지를 살펴보고 있다.
 대전 산내 희생자 유가족들이 흙더미 속에서 유해가 섞어 있는 지를 살펴보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이들의 유해는 대부분 지금까지 그곳에서 있었던 공사 과정에서 손상되거나 폭우에 쓸려나가는 등 유실됐다. 유족회와 공동조사단은 남아 있는 유해의 위치를 찾아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까지 모두 약 80여 구의 유해를 수습한 상태다.

이번 시굴조사 대상지는 교회 부지 뒤쪽이다. 지난 2015년 발굴 당시 인근에서 유해 일부가 교회부지 뒤편 쪽에 묻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산자락 쪽 동서 방향으로 약 10m 길이의 트렌치(도랑)을 파 내려갔다. 불과 1m가량 아래에서 큼지막한 엉치뼈가 박혀 있었다. 67년 전 '그 날의 진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10m의 시굴조사 트렌치에서 유해가 확인된 곳은 각각 2m씩 두 곳이었다. 박선주 단장은 "트렌치를 통해 드러난 유해로 볼 때 암매장 구덩이가 두 갈래로 뻗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 구덩이는 교회 건물 뒤쪽으로, 또 다른 구덩이는 산자락 밑으로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본격 발굴을 하기 전까지는 정확한 구덩이 길이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도 박 단장의 추정대로라면 북서쪽으로 이어진 암매장지를 연결할 경우, 구덩이 길이는 약 100m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대전 산내유가족들이 이 암매장지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표현을 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붉은 색 네모안이 시굴조사 과정에서 유해가 드러난 지점이다. 유해가 묻힌 구덩이는 네모안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뻗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덩이 길이는 모두 100미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붉은 색 네모안이 시굴조사 과정에서 유해가 드러난 지점이다. 유해가 묻힌 구덩이는 네모안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뻗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덩이 길이는 모두 100미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시굴조사에서 유해가 발굴되었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 실체를 드러내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유해발굴 조사단은 아직 본격적인 유해발굴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김종현 대전산내유족회장은 "유해 매장 위치를 확인하고도 발굴에 필요한 예산이 없어 발굴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을 촉구했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대전 산내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 각양 각지에 희생자 유해가 방치돼 있다"며 "유해발굴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정부가 희생자 유해를 수습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산내,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시굴조사, #유해발굴
댓글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