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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인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드는 광부들의 삶과 죽음이 베인 폐석더미 위에 지어졌다. 좌측이 폐석더미이고 우측이 강원랜드다.
 내국인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드는 광부들의 삶과 죽음이 베인 폐석더미 위에 지어졌다. 좌측이 폐석더미이고 우측이 강원랜드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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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마다 하나씩 수식어가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기 전 긴장된 마음으로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 멘트들.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로!", "롯데월드, 꿈과 희망의 나라로!" 그리고 여기 어른들을 위한 놀이공원이 있다. 대신, 여기에는 환상도 꿈도 희망도 없다. 이 놀이공원에 들어서기 전 "비리와 청탁의 나라로~"라는 멘트를 들려준다면 꽤 적절할 것이다.

강원랜드 이야기다. 강원랜드가 인사청탁과 비리의 장이었음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권성동, 염동열 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지역 인사들이 인사에 개입하거나 취업을 청탁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여기 와서 당시 사회지도층 중에 청탁 안 한 사람 있는지 한번 물어봐라. 없을 것이다." (강원도 한 현직 군의원, <한겨레>와의 인터뷰 중)

수치는 더욱 충격적이다. 강원랜드 채용 합격자의 95%가 비리에 연루되었고, 인사팀장이 받은 청탁 문자와 전화가 무려 200통이 넘은 날도 있었다. 인사팀장과 연줄이 없거나 아는 국회의원, 지역 인사가 없다면?

그런 경우에는 돈이 필요하다. 강원랜드에 근무 중인 16년 차 직원은 1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연줄이 없는 사람의 경우 금품을 통해 청탁한다"며 "일반직 청탁은 1500만~1700만 원, 직급이 높으면 3000만 원을 입금하라고 온라인 계좌를 미리 알려준다."고 주장했다. 강원랜드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했던 건 능력과 열정 따위가 아니라, 돈 혹은 권력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대대적인 취업∙채용사기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문제시됐던 적은 없었다. 2015년 내부감사에서 문제가 드러났으나 유야무야 넘어갔다.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강원랜드의 공개채용은 채용 과정도 기준도 공개되지 않은 말뿐인 공채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가렸다는 점에서 이는 또 다른 블라인드 채용이라 불릴 만하다.

정부는 지난 7월, 공약이었던 블라인드 채용을 공기업 중심으로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책에 발맞추어 기아자동차, CJ, 기업은행, LG전자, SK텔레콤 등은 하반기 채용을 블라인드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취준생의 대다수는 반기는 분위기이다. 그동안 학벌, 스펙, 성별, 출신 등으로 차별받았던 취준생들에게는 희소식일 수밖에 없다.

김씨가 염동열 의원에게 보고용으로 만들어 보냈다는 강원랜드 인사청탁 결과 문서
 김씨가 염동열 의원에게 보고용으로 만들어 보냈다는 강원랜드 인사청탁 결과 문서
ⓒ 김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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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는 '빽의 잔치'가 펼쳐지고 있었고, 이는 취업을 간절히 원하는 청년들을 또다시 절망케 했다. 문제는 공기업이었던 강원랜드가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따라서 이와 같은 기업이 얼마나 더 되는지, 더 심하지는 않은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기업의 채용과 겉으로 내세우는 공정성을 섣불리 믿기 어려운 이유다. 심지어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있다고 내세우며 학벌, 나이, 성별을 묻는 기업 역시 여전히 존재했다.

'핵'(Hack)을 쓰는 유저가 판치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유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상대를 이기기 위한 방법이 오직 '더 좋은 핵, 더 좋은 빽'을 사용하거나, 그런 상대를 만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면, 누구도 이 게임을 진행하는데 열의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대학교 4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다. 취업난이 턱밑까지 닥쳐온다. 청년체감실업률이 22.5%, 실업률이 9.3%에 육박한다. 토익 점수가, 한국어능력시험이, 자격증 여부가, 경력과 학력이, 그로 인해 달라질 취업의 결과가 우려스러운 이때, 지금까지의 게임이 공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과연 앞으로는 '공정한 게임의 룰'을 세울 수 있을까?


태그:#강원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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