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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국으로 확산되는 '소녀상'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소녀상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좋은 방식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지만 일부에서는 정도를 넘어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관해 시민기자의 다양한 의견을 듣습니니다. 아래 기사를 읽고 반론이 있거나 다른 의견을 개진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시민기자 가입 후 '기사 쓰기'를 통해 기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편집자말]
'위안부' 문제는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숙제다. 적지 않은 피해자가 생존해 있고, 그런데 일본의 사과는 요원하다. 그런 와중에 '위안부' 피해를 기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소녀상도 논쟁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최근에는 소녀상 스티커가 만들어져 상업화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위안부'와 소녀상,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제72주년 광복절인 8월 15일 충남 홍성 홍주성 공영주차장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제72주년 광복절인 8월 15일 충남 홍성 홍주성 공영주차장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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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논쟁지점이 있지만,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위안부와 소녀상을 둘러싼 주요한 논쟁은 '위안부'와 소녀상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위안부'는 없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자들이나 피해자를 모욕하는 한국의 일부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이 문제에 있어 일본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위안부'와 소녀상을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는데에 있어 반드시 숙지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그런데  '일본에 책임이 있다'와 '일본이 저지른 특수한 범죄다'라고 인식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위안부'라는 형태는 일본이 저지른 특수한 범죄가 아니다. 일본-한국이라는 식민지 지배구조라는 특수한 관계 속에서만 이야기될 수 있는 담론이 아니라는 뜻이다. 과도한 민족주의적 접근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마이뉴스도 2002년 이를 보도한 적이 있다(관련기사 : '한국군도 '위안부' 운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피해자'로만'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위안소를 운용한 적이 있으니 일본의 위안소 운영을 비판할 수 없다는 얘기가 당연히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피해자로서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바라보는 주류 담론은 '식민지 지배의 비극', '일본이 짓밟은 할머니들의 순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왕 '위안부'가 문제가 된다면 한국군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당시에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도 충분히 문제제기가 될 수 있을 텐데 왜 아직까지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는 특정 국가의 범죄이기 이전에 젠더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국가가 한 개인, 특히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유린한 폭력이다. 그 과정에서 남성 권력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일본만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는 그래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젠더가 은폐된 '위안부' 논쟁이 소녀상을 낳았다. 소녀상이 문제인 이유는 상업화에 있지 않다. 당연히 스티커를 만들고 동상을 제작하는 행위 자체는 훌륭한 운동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운동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대중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그 중 일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상은 '소녀'이기 때문에 문제다. 피해자 할머니들을 '순결을 빼앗긴 백색의 소녀' 이미지로 가둬놓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회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치즈코는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에서 '만들어진 피해자 모델'을 지적한다.

듣는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대로 이야기된 피해자 모델의 이야기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순결한 처녀가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강제로 연행되어 끌려가 윤간당한 후 '위안부' 노동을 강제당해 탈출을 꾀했으나 저지당하고 참기 힘든 고통을 받으며 연명해왔다'와 같은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위안부'가 된 경로는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예를 들면 빈곤이나 부모에 의한 계약, 지방 유력자의 강제, 뚜쟁이의 유혹이나 사기와 같은 수법 등 경로를 일반화시키는 어렵다.

(중략) 선의의 권력이라 할 수 있는 지원단체는 피해자의 순결을 강조함으로써 '순결한 피해자'상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야기 방식이 어쩌면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들에게 생각과는 달리 침묵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여태 한국사회가 피해자를 이미지화하는 방식이었다. 피해자는 반드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서 고통받아야 했으며, 뭣모르는 꽃다운 나이에 겪은 비극이고, 순수함을 빼앗겨버렸다는. 이 이미지가 축약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소녀상이다. 이 이외의 담론들은 우에노 치즈코가 지적했듯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났기 때문에 논의되는 순간 비난에 직면한다.

그들이 피해자인 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개별 피해 양상에 대한 연구가 있어 왔으며 그 중에는 치즈코가 지적했듯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습'이 아닌 것들도 존재한다. 물론 그 연구의 디테일마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사회는 피해자성의 문제를 공론장에 내놓고 논의하기를 게을리 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 박유하

그 게으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대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 하나. 그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는 성역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주장을 왜곡하는 일부 언론들과 누리꾼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박유하의 저서는 절대로 논의선상에 올라서는 안될 존재이며 박유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을 모욕했으므로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라면 지금처럼 학문의 영역을 함부로 공권력이 침범할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검증받고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논의가 하필이면 이것이 '위안부' 문제이기 때문에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더 과격해지면 누리꾼들은 '저 사람 일본인들에게 강간당해봐야 정신 차린다' 따위의 인신공격을 퍼붓는다. 그건 당신도 정도를 벗어난 공격이라고 생각한다고? 글쎄, '위안부' 담론에 대한 다른 시선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폐쇄성이 낳은 결과라는 측면에서 강간 운운하는 것이나 검증과 비판보다는 비난과 매장에 초점이 가해지는 것이나 동일해 보인다.

의도적인 오독도 서슴치 않는다. ''위안부'가 아이돌이 되고 있다'라는 박 교수의 발언을 충격적인 망언인양 보도하는 언론들은 이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올 말인지에 대해서는 고찰해보지 않는다. 물론 박 교수 본인이 논란의 중심에 있음을 알고 있단걸 감안하면 표현을 조금 더 신중했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idol)이란 '대중들에 의해 숭배되는 대상'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미디어서 볼 수 있는 걸그룹, 보이그룹 역시 이 단어에 충분히 포섭될 수 있다. 과연 이해하고 싶지 않아하는 자는 누구인가.

국가와 좌우를 걷어낸 자리

소녀상을 비판하고 박유하를 둘러싼 부당한 평가에 대해 반박하는 것을 두고 '일본 우익의 관점', '가해자의 관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의 오마이뉴스 기사('버스 탄 소녀상'이 광기의 산물? 누가 혐오 부추기나) 역시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쓰여진 듯하다. 사실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굉장히 당혹스럽다. 소녀상을 둘러싼 맥락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일본을 비판해야 하지만 일본만 비판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 일본의 편을 드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부당하다.

게다가 박유하와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일본 우익으로 몰아가는 것 역시 부당하다. 위에서 인용한 우에노 치즈코를 포함하여 박유하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하며 성명을 발표한 일본 지식인 15인은 모두 전후 일본의 책임에 대해 강조해온 학자들이다. 게다가 '진보'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한국 주류사회의 의견과 다르다 해서 그것이 우리가 '적'으로 상정한 세력의 의견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위안부' 문제는, 다시 반복하지만, 특정 국가의 특이한 전쟁범죄가 아니다. 덧붙여서 좌우, 진보 보수의 문제 역시 아니다. 편가르기는 문제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태그:##위안부, ##소녀상, ##박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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