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녹색전환연구소(www.igt.or.kr)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 전환의 다양한 상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녹색의 시각으로 새롭게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 임순례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녹색전환연구소>사이트(www.igt.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기자말

매년 여름철이 되면 동물보호단체들은 바빠진다.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육류 보양식을 섭취하는 '복날'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복날은 보신탕(개고기) 소비가 급등하는 때이기에 개식용 반대 운동도 가장 활발해진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서는 이번 여름 개식용 종식을 위한 운동으로 '미트 프리 복날!(Meat Free 복날)'을 진행했다. 동물의 고통 없는 채식재료로 만들어진 보양식을 소개하며 육식을 줄이자는 캠페인이었다.

'카라' 대표인 임순례 감독은 육식을 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 동물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하는 그는 동물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이런 애정이 바탕이 되어 그는 올해 초 다시 카라 대표직을 맡게 되었다. 2009년 처음 대표를 맡은 뒤 햇수로 9년째다.

지난 8월 14일, 임순례 감독을 만나 그의 삶과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 감독으로 또 '카라' 대표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들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통해 녹색전환의 상상력을 만날 수 있었다.

임순례 감독 제공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표 임순례 감독 임순례 감독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영화감독이자 동물보호단체 카라 대표로

- 감독님은 1996년 영화 <세친구>로 데뷔한 이래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제보자>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영화 감독으로 유명하다. 현재도 <리틀 포레스트(2018년 개봉 예정)>라는 작품의 막바지 작업으로 바쁘시다 들었다. 영화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카라' 대표직도 맡고 있다.
"2009년에 처음 '카라' 대표를 맡을 때만 해도 그리 큰 단체가 아니었다. 나도 영화를 많이 만들 때가 아니었고. 하다 보니 '카라'도 커지고 영화도 자주 만들게 되더라. 영화라는 게 영화 하나만 매달려도 좋은 작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서 고민도 많았다. '카라'에 나 말고 잘 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이곳이 나를 필요로 하고 동물단체로서 더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영화와 '카라' 두 가지 일 사이에서 항상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영화에, 영화를 찍지 않는 기간에는 '카라'를 위해 집중하고 있다. 시간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감정 등 모든 걸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다.

때론 불행하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두 쪽을 다 잘 못 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고. 두 쪽 다 잘한다는 건 어불성설인 거 같다. 영화를 더 잘 만들지 못해도 그만큼 내가 동물을 위해서 기여하는 게 있다거나, 양쪽 모두를 하는 게 지금 상황에선 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도 있다. 용감하게 하나를 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나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내가 안고 가야 하는 숙제 같은."

임순례 감독 제공
▲ '카라'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임순례 감독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동물이 주는 조건 없는 위로, 우리 삶에 필요한 조건

- 동물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시골로 이사하신 것도 개를 키우기 좋은 환경 때문에 간 거라고 들었다. 함께 사는 동물가족도 소개해달라.
"마당에서 개를 키우려고 서울을 떠나 양평으로 갔다. 2005년에 갔으니 벌써 13년차다. "겨울이"라고 영리하고 귀여운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

겨울이는 유기견 출신이다. 예전에 '가을이'라는 리트리버 성견을 동네 절에 입양시킨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어떤 분이 리트리버를 입양하고 싶다고 해서 유기견센터에 있던 이 녀석이 리트리버 새끼인 줄 알고 입양 보냈었다. 근데 크면서 보니 전혀 아닌 거다. 거기다 입양 보낸 후에는 항상 잘 지내고 있는지 사이사이 체크를 하는데 이번엔 영 잘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래서 불시에 그 집으로 찾아갔더니 얘가 뒷마당에 방치된 채로 한여름에 물도 없이 짬밥만 먹고 있는 거다. 그래서 집으로 데려오게 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겨울이 산책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실 우리 집 마당이 넓은 데도 겨울이 산책은 꼭 따로 가야 한다(웃음). 바쁠 때면 겨울이한테 제일 미안하다. 같이 시간을 많이 못 보내니까."

임순례 감독 제공
▲ 산책 중인 겨울이 임순례 감독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 감독님처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 감독님에게 반려동물과 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조건 없는 위로를 받는 것 같다. 동물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행복해지고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게 사람과의 사이에서는 어렵다.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가치관이 안 맞아서 섭섭하기도 하고. 동물이 나를 볼 때 조건 없이 사랑으로 볼 것 같고, 나 또한 동물을 볼 때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가 가능하다. 이런 존재는 삶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

불교적 세계관으로 보면 동물이나 여타 다른 존재가 나와 나눠져 있는 게 아니다. 동물이 나일 수 있고 내가 동물일 수도 있다. 불교의 윤회 관점에서 보면 이 동물이 전생에 나의 어머니였을 수도 있고 내가 동물의 몸을 빌어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는 거다.

불교에서는 동물을 차별함이 없고 인간 중심적인 우월사상도 없다. 이런 사고가 동물보호운동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오래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란 내가 불교신자가 된 것도 이런 가치관들이 나와 잘 맞았기 때문이다."

결혼 대신 '비혼',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족형태도 변화해야

- 천주교 가풍 속에서 유일한 불교도가 된 건 일종의 비주류를 선택한 셈이다. 감독님의 과거를 돌아보면 고등학교 때 자퇴한 것이나 기존 체제와 달리 다른 길을 갔던 내력이 있다. 이 중에는 잘 나가는 영화 감독에서 동물보호 운동가로 활동하는 것도 포함되고 일상의 영역에서 보자면 비혼으로 사는 것도 그중 하나다. 비혼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비혼 선배로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만약 비혼을 생각하는 여성이 백만 명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백만 가지 사정이 있을 거다. 짧게 몇 마디 한다고 해서 그 안에 내 생각이 잘 담길지 모르겠지만 내가 왜 비혼을 선택했는지는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집안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결혼을 안 할 거라고 얘기했다 한다. 어쩌면 전생부터 결혼의 풍습이 없었던 게 아닐까(웃음). 그 후로도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평온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가장 큰 원인이 된 것 같다.

성인이 된 후로도 결혼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건 비관적인 개인 성향도 한몫했다. 당시에는(80년대)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 게 일반적이었다. 예전부터 세상에 내가 태어난 것이 좋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나의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살아가라고 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직업적으로 영화 일을 하면서부터는 집을 많이 비우고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되어 결혼에 적합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외로움이나 결핍을 해소하고 싶지 않았다. 해소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고. 운도 좋았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닌데 결국 내가 바라던 대로 살 수 있었던 걸 보면.

비혼이 나한테는 잘 맞았지만 단순히 내 경우만 갖고 결혼보다 비혼이 더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 결혼을 통해 행복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출산, 육아를 통해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도 있고. 너무 한가지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으면 좋겠다. 자기 상황과 기질, 가치관 이런 것들을 잘 고려해서 결정해야지 유행이나 트렌드처럼 좇아가지 않길 바란다.

대신 지금의 결혼제도가 절대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현실을 깨닫고 제도적으로 보완하지 않는 한 전통적인 결혼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안가족이나 동성커플이 늘어나는 것처럼 가족의 형태도 계속 변해야 한다. 만약 국가적 지원과 제도적 보완이 잘 이뤄진다면 복고풍이 유행하듯이 기존의 결혼방식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녹색당과 같은 소수정당의 확산을 꿈꾸며

- 시대의 변화를 가장 읽지 못하는 곳 중 하나는 바로 정계가 아닌가 싶다. 정치계의 변화가 너무 더디다. 감독님은 녹색당원으로도 활동하며 동물권, 세월호 사태, 선거제도 개혁 등 다양한 의제에 정치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녹색당 활동은 언제부터 하셨는가.
"녹색당이 한국에 생겨서 반가웠지만 창당 때부터 함께 하진 못했다. 당시 '카라' 대표였기 때문에 특정 정당에 가입하는 게 회원들에게 어떨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녹색당의 가치가 '카라'의 활동방향이 일치했기 때문에 가입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어 곧 당원으로 가입했다. '공장식 축산 반대' 헌법소원처럼 동물권을 위한 정치적인 행보가 필요할 때 '카라'와 녹색당이 함께 하는 등 활동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

카라 제공
▲ 2013년 공장식축산반대 헌법소원 당시 녹색당, 카라와 함께 카라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 2016년 총선이 끝난 후 한 인터뷰에서 "내 주변은 다 녹색당 찍은 것 같았는데 투표 결과는 크게 차이 났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어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실현될 수 없고 아무리 좋은 가치를 내세운 정당이라도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녹색당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표가 정작 선거 때 투표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동안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아니었다. 하나의 수직적인 문화 속에서 하나가 옳으면 나머지는 다 배척당했다. 그러다 보니 주류에서 멀어지길 두려워한다. 가까스로 라인 안에 들어가면 성공이고 아니면 루저로 규정해버리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변화가 참 쉽지 않다.

사회의 잣대가 아닌 본인의 잣대로 살려면 용기, 저지름이 필요한데 그런 것들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어려운 것 같다. 삶이 너무 각박하니 주저하게 되고, 스스로 자신감을 갖기보단 불안감이 앞서게 되는 거다.

이런 상황이 정당을 선택하는 일에 있을 수도 있고 모든 면에 통용될 수 있다. 사실 녹색당보다 더 리버럴하고 혁신적인 정당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국내 소수정당 사정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사회가 바뀌려면 아직도 멀고 먼 길을 가야 한다. 정치, 제도, 언론 등 사회적인 시스템이 다 중요하지만 이 모든 걸 구성하는 것은 각 개개인이다. 새로운 세대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논의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이 개인들이 뭉쳐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다."

녹색전환은 "기존 가치에 대한 점검"

- 녹색전환연구소도 그런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개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 중이다. 기본소득의 일종인 성남시 청년배당의 모니터링과 공론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그 예다.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녹색전환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기존의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류의 가치관으로 살면 이 사회는 바뀔 수가 없다. 바뀌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봐야 한계가 있다. 자기 삶에 있어서 중점을 두는 가치에 대해 점검을 해보는 게 녹색전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연봉 높은 직장에 취직해서 여가 없이 일만 하다가 은퇴하고 나면 과연 행복할까? 삶의 가치라는 건 정말 다양하다. 재정적인 안정이나 주류에서 인정하는 가치만 좇을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행복을 느끼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보탬이 되고 진정성을 갖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치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불행함의 고리를 깨기 위한 교육을 시작해야

-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치들이 살아있는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나마 젊은 세대에게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이 친구들이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게 주류를 확 휩쓸지는 못하더라도 소소하지만 사회를 더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이런 고민과 활동을 실천하는 모임과 공동체가 더 많아져야 한다. 작은 것들이 힘을 얻고 연결되면 그 안에서 어떤 방향을 찾기가 수월해질 거다. 빠른 시일 내에 되기는 어렵겠지만.

임순례 감독 제공
▲ '카라' 유기동물 입양 홍보 행사에서 임순례 감독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지난 대선 국면에서 느낀 건데 한국인들의 장점과 재능과 에너지가 있다. 그렇게 추운데도 촛불이 5달을 꼬박 이어 왔다. 그 에너지가 정권교체를 이뤄냈다고 본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꼭 촛불뿐만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도 개개인의 우수성을 느낀다.

각 개인들의 자질과 능력은 정말 뛰어나지만 이런 개인의 생활도 결국 정치제도에 지배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대통령이 되느냐, 어떤 국회의원이 되느냐는 어떤 법안이 통과되느냐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개인의 결속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새로운 의견이나 담론이 나오면 토론하고 연구해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면 좋겠는데 결국 논지가 엉뚱한 데로 흘러가고 마무리가 좋지 않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왜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 가장 큰 건 교육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의 교육이 추구하는 지식은 외우는 것뿐이다. 인문학적인 소양이라든가 합리적인 토론은 심어주지 못한다. 이런 교육이 결국 스펙은 좋지만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을 만든다.

우리 사회는 세대 불변하고 모든 구성원이 불행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 불행함의 고리를 누군가 깨야 한다. 그 시작을 교육에서부터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성숙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부터."

덧붙이는 글 | 박이상 (녹색전환연구소 편집위원)



태그:#임순례 감독, #카라 대표 임순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유기견 입양, #녹색전환연구소
댓글

녹색전환연구소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민간연구소입니다. 내 삶과 가족, 이웃, 지구와 생명을 지키고 함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길 - 우정과 즐거움으로 잇는 녹색전환의 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http://www.igt.or.kr)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