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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홍정훈씨가 양심적병역거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1심에서 징역1년6개월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연말 홍정훈씨가 양심적병역거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1심에서 징역1년6개월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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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법정 422호에서 홍정훈(28)씨의 항소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이날따라 법정에 견한 온 초등학생들이 많았고, 앞 사건이 길어지면서 입장이 지연되었네요.

아쉽게도 현장에 취재진은 없었습니다. 매년 600명가량의 청년들이 감옥에 가며, 지금까지 처벌된 인원이 2만 명에 달하는 '일상적인' 사건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한 그도, 병역법 위반 혐의로 원심에서 1년 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함께 온 활동가들은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30분쯤 지났을까.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피고인이라는 무거운 호칭 때문인지, 그의 표정은 담담하면서도, 살짝 긴장되어 보였습니다. 사실 저도 근처 417호 법정에서 피고인으로 서본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총선패배 이후, 낙선운동에 참여한 총선시민네트워크(아래 총선넷) 활동가들을 표적수사하고, 무더기로 기소했기 때문인데요. 판사가 앉아있는 법대 높이가 방청석과는 확연히 달라 보이더군요. 답변 하나에 침이 바싹바싹 마르는, 피고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악의적인 프레임

이날 구형까지 하는 것 아닌가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간단한 인정심문이 있고, 홍씨의 변호인이 항소이유를 밝혔습니다. 병역법 위헌법률심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려달라는 요청을 받자, 재판장은 좌우 배석판사들과 잠깐 고민하더군요. 사실상 재판장이 의견을 통보하고, 배석판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인 듯 했지만요.

30초도 안 되는 짧은 협의였습니다만, 체감시간으로 최소 30분은 지난 것 같았습니다. 재판장은 헌재의 위헌법률심판 선고를 감안해, 12월까지 재판을 연기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네요.

양심적 병역 거부자. 우리사회가 '병역기피'라는 딱지를 붙이며, 그 이름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부분 곱지 않은 듯합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하는 군필자들의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갑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난다는 20대의 약 2년을, 국가를 위해 헌신한 그들에게 진심어린 박수와 존경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병역거부 때문에 성실한 이행자들이 피해본다는 말은 좀 악의적인 것 같습니다. 약자들끼리만 싸움을 붙이는 이런 프레임은, 본질적인 문제를 가리는 데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돈과 빽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져나가는, 일부 특권층 자재들이야 그런 말을 들을 만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종교나 양심상의 이유로 하는 병역거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봐야할지는 의문입니다. 이들은 최소 1년 6월 이상의 징역형을 감수합니다. 겪어야 할 불이익도 생각보다 많고요. 이 때문인지 실제로 병역거부에 나서는 청년들은 연간 징집인원의 0.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하급심에서는 무죄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데요. 24일에는 의정부지법 조정민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며, "국제적으로 양심적 거부권이 기본권으로 인정되고, 대체복무제가 많은 국가에서 채택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홍정훈씨의 항소심 최후변론은 못 볼 것 같지만

재판을 지켜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성'한 병역의무라는데 대접은 왜 그럴까요. 군복무를 통해 무언가 얻었다는 사람들보다는, 치 떨리는 악몽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본 것 같네요.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서의 존엄은커녕, 사실상 값싸고 부려먹기 좋은 노예병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상관에게 수시로 갑질을 당하고, 아군한테 죽어나가기도 하고요. 군에서 자녀를 잃은 어느 부모들은, 자식을 군대에 보낸 죄인이라고 한탄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걸까요. 이쯤 되면 성실한 의무이행자의 적은 따로 있어 보입니다. 군에 남아있는 악습과 적폐에 기대어 반사이익만 챙기려는, 입으로만 안보를 떠드는 사람들 말이지요. 성실한 사람들이 이렇게 피해를 보는데, 병역거부라도 해야 뭐라도 바뀌지 않을지 억한 심정마저 드네요.

아마도 홍정훈씨의 항소심 최후변론은 못 볼 것 같습니다. 저도 조만간 입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데요. 작년에 총선넷 공동정범 22명 중 한 명이 되면서, 군복무에 대한 선택권도 사실상 박탈당했습니다. 카투사·장교·의경·특기병 등 모든 군 지원 자체가 막혔네요. 수사/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스물아홉으로 20대 끝자락에 서있지만, 지금으로서 가능한 건 육군병 뿐입니다. 랜덤으로 영장이 나오거나, 3개월 범위로 입영일을 신청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네요.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필 총선넷 사건을 맡은 재판부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사건이 배정되더라고요. 덕분에 4월쯤 1심선고가 될 듯했던 재판은 계속 연기되었습니다. 이대로라면 군사재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민간인이 군인으로 신분이 바뀌면, 재판권도 군사법원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저희 재판장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해 선고 생중계도 단호히 불허하시고, 이재용씨의 혐의 대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징역 5년이라는 최저형량을 뽑아주신 그분입니다. 피고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봐주시는 김진동 판사님 덕에, 적어도 1심은 무죄를 기대해도 좋을까요.

그럼에도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 때문에 피해봤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습니다. 용기를 내 가시밭길을 택한 홍정훈씨를 응원하고 싶네요. 불이익을 감수하며 앞장서는 사람들 덕에,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가 조금씩 확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2월에 있을 재판에도, 좋은 결과가 나와 그가 활짝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422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한 홍정훈씨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헌재위헌법률심판을 감안해 12월 초로 재판을 연기했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422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한 홍정훈씨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헌재위헌법률심판을 감안해 12월 초로 재판을 연기했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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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양심적병역거부, #홍정훈, #총선넷, #이재용, #김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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