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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일산의 A 대형마트 지하 1층. 육류 코너 등에는 어김없이 시식코너가 한창이다. 해당 브랜드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직원들은 연일 제품 홍보에 열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마트직원들이 아니다. 해당 브랜드에서 파견업체에 의뢰해 나온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물론 이들 하루 급여 등은 파견업체로부터 받는다. 파견업체 역시 해당 브랜드 본사로부터 돈을 받는 구조다. 이같은 모습은 국내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일상화 돼 있다. 하지만 해당 마트의 물건을 자신들이 직접 팔지않고, 납품업체에 판매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납품업체들 역시 대형 마트의 눈치를 보면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같은 판촉활동을 해 왔다.

앞으로 이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갑질'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대형 마트 등 유통업체들도 납품업체의 직원 인건비를 부담해야 한다. 또 그동안 관행처럼 해왔던 대형마트의 '판매분 매입'도 사라지게 된다. '판매분 매입'은 대형마트가 판매된 제품 수량만큼만 납품업체로부터 사들인 것처럼 회계를 처리하는 것이다. 사실상 납품업체에 부당하게 재고 부담을 떠넘겨 온 것이다.

김상조발 경제개혁 2탄, "대형 마트 등 기상천외한 불공정 행위들 많다"

 13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13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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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 유통업체의 '갑질'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과징금 이외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액을 물도록 할 방침이다. 공정위가 13일 내놓은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납품업체 간 거래관행 개선방안'에는 이같은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번에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직접 발표에 나섰다. 지난달 프랜차이즈 불공정거래 대책에 이은 두번째 '김상조 발(發) 경제개혁' 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내 유통산업의 현실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나가면서 "(대형마트 등을 보면) 기상천외한 불공정 행위들이 많다"면서 유통분야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내놓은 대책은 크게 3가지 추진전략과 함께 실천과제 만 15가지에 달한다. 이들 대책 가운데 핵심은 대형 유통업체의 고질적인 불공정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액을 3배까지 물릴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중소 납품업체가 피해를 입고, 소송을 제기해 이기더라도 실제 집행되는 금액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 거래 행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 2015년 이후 공정위에 신고된 이들 업체의 불공정 행위 건수가 84건에 이르고, 이 가운데 부당 반품, 납품업체 종업원 부당 사용 등의 행위가 56건으로 66.7%에 달했다.

앞서 언급된 대형 마트 등의 시식행사 등 납품업체 종업원이 파견되는 판촉행사의 경우, 앞으로는 유통업체와 납품업체가 인건비를 서로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 판촉행사를 통해 얻는 이익의 비율만큼 서로 부담하게 한다는 것. 만약 이익 비율 산정이 어려울 경우, 인건비를 절반씩 분담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 A사에서 전국의 점포 20개에서 20일동안 와인 시음행사를 한다고 하자. A는 50개 납품업체로부터 직원 100명을 파견받아서 하루 8시간씩 행사를 진행한다. 시간당 임금 8000원을 가정해서 20일동안 납품업체는 직원 인건비로 약 1억2800만원이 들어간다. 그동안 이 금액을 납품업체들이 부담해왔지만, 앞으론 대형마트 쪽에서도 64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6400만원은 이번 행사를 통해 납품업체와 대형마트에서 얻을 예상 이익이 같은 것으로 추정해서 인건비의 50%를 계산한 금액이다.

대형마트 시식코너 직원 부당 사용, 적발되면 손해배상액만 10배 가까이 늘 수도

대형마트 A가 인건비 분담 없이 납품업체 종업원을 부당 사용한 경우, 현재보다 최대 10배 가깝게 배상액이 올라갈 수 있다.
 대형마트 A가 인건비 분담 없이 납품업체 종업원을 부당 사용한 경우, 현재보다 최대 10배 가깝게 배상액이 올라갈 수 있다.
ⓒ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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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대형 마트가 이를 어겼을때는 어떻게 될까. 현재는 과징금과 손해배상액을 매겨도 2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해당 마트는 손해배상액이 3배까지 올라가면서 5억 원이 넘는 돈을 물어야 한다. 대형마트 입장에선 인건비 6400만 원을 아끼려다 10배 가까운 손해배상액을 물을 수도 있다.

유성욱 공정위 유통거래과장은 "납품업체 입장에선 불공정행위에 따른 피해액과 소송제기 등에 따른 보상액의 차이가 별로 없으면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통업체의 고질적이고 악의적인 행위에 대해 3배까지 배상책임을 물게되면, 유통업체 입장에서도 부담이 커지게 되기 때문에 불공정 행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밖에 대형유통업체의 '판매분 매입' 관행도 금지된다. 또 납품업체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해 인건비와 재료비 등의 변동이 생기면 유통업체에 납품값 조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공정위 차원에서 대형마트 표준거래계약서도 내놓을 예정이다.

또 그동안 대형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 상품을 주문하면서 상품 수량을 계약서에 적지 않고 구두(口頭)로만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상품 주문의 경우 계약서에 수량을 반드시 쓰도록 했다. 또 제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도 보다 명확한 지침을 만들도록 한다.

신세계 스타필드, 아울렛 등도 대규모 유통업법 규제 받아야

스타필드 하남 내부
 스타필드 하남 내부
ⓒ 스타필드 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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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표에서 눈에 띄는 점은 복합쇼핑몰이나 아울렛 등도 앞으로 대규모 유통업법의 규제를 받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유통업계는 기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대신 복합쇼핑몰을 운영하는 추세다. 예를 들어 신세계 하남 스타필드를 비롯해 대형 백화점의 아울렛 매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업체들은 그동안 '부동산 임대업자'로 분류되면서, 유통업법의 규제를 받지 않았다.

김상조 위원장은 "현재 우리의 유통산업 현실을 봤을 때, 법의 사각지대가 많다"면서 "최대한 사각지대를 메우고, 법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는 쪽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말대로 유통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형유통업체의 경우 유통업 영업을 하면서 직전 사업연도 소매업종 매출액이 1000억 원 이상이거나 소매업 매장면적이 3000평방미터 이상인 업체다.

공정위는 앞으로 임대사업자라도 상품 판매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경우에는 유통업법 적용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유성욱 과장은 "실제로 하남에 있는 스타필드 매장을 가봤는데 사실상 기존 유통업체들이 하고 있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순히 해당 브랜드 업체와 매장 임대차 계약만이 아니라 사실상 상품 판매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

공정위 발표대로 법 개정이 이뤄지면, 신세계가 운영중인 스타필드(하남, 코엑스몰, 고양)를 비롯해 파주 아울렛 등 대형 쇼핑몰들이 유통업법 규제를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유통업체는 납품업체를 상대로 매장 판촉비를 일방적으로 부담시키거나, 계약에 적힌 임대료 등 비용 인상도 계약기간 내에는 어렵게 된다.

또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의 판매수수료도 공개된다. 그동안에는 백화점과 티브이 홈쇼핑 분야에 한정해서 수수료율을 공개해 왔다. 공정위는 판매수수료율이 공개된 후 지난 3년동안 백화점 수수료율은 1.1%포인트, 티브이 홈쇼핑은 1.2%포인트 등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부에선 공정위 판매수수료율 공개를 두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김상조 위원장은 "유통업계의 판매수수료율 공개 실효성에 대한 비판을 잘 알고 있다"면서 "공정위는 담합 등 시장의 경쟁질서를 제고하는 기관이며, 수수료 마진 등에 개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유통산업은 재래시장 등 전 근대와 온라인 등 최첨단 유통채널이 공존하는 복잡한 곳"이라며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과 함께 중소 상공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하는 두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이번 대책으로 유통업 불공정거래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번 프랜차이즈업계와 마찬가지로 유통업계의 자율적인 상생 협력을 강조했다.


태그:#김상조 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 #유통업체, #경제개혁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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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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