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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계속된 누드 스케치

누드 스케치(1981)
 누드 스케치(1981)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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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은 문은희 화백의 그림인생에 큰 전환이 이루어진 해다. 딸 윤선 출산 이후 10년 동안 남편과 자식들 중심으로 산 인생이 너무나 억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20년은 자신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누드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누드를 통해 새로운 예술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억눌린 감정을 표현해 나간다.

70년대 들어 추상을 통해 감정을 표현했다면, 80년대 들어서는 구상을 통해 사상과 감정을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누드를 통해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창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1979년 이규호(1920-) 선생 화실을 찾아 누드 크로키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규호 화백은 동경의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박물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누드 스케치(1982)
 누드 스케치(1982)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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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달맞이꽃 화가로 유명해졌지만, 당시는 누드 스케치를 지도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동양화가로서 누드를 시도한 화가는 천경자 화백 정도였다. 문은희는 이규호 화백을 통해 누드 데생과 크로키의 기본을 배웠다. 데생은 연필로 대상의 특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미술기법이다. 이때 명암과 질감을 표현할 수도 있다. 크로키는 대상의 움직임과 형태적 특징을 빠른 시간 안에 표현하는 미술기법이다. 동적인 누드를 그리기 위해 익혀야 하는 필수 기법이다.

문은희는 남관 화백으로부터 스케치의 기본을 배웠기 때문에 누드 데생과 크로키를 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의 기술이나 기법을 완성하려면 꾸준한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그 후 5년간 집중적으로 누드 스케치 기술을 연마했다. 처음에는 연필로 시작했고, 사인펜을 거쳐 나중에 붓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처럼 붓을 들게 된 것은 자신이 동양화를 그리는 화가였기 때문이다.

붓을 사용한 누드 스케치(1981)
 붓을 사용한 누드 스케치(1981)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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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필과 붓은 차원이 달랐다. 연필로 스케치북에 그릴 때는 생각하며 천천히 그려도 되지만, 붓으로 화선지에 그릴 때는 일필휘지(一筆揮之)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 연필 스케치는 지우고 다시 그리기가 가능하고 서양화도 개칠(改漆)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붓으로 그리는 누드는 한 번 잘못 되면 버리는 수 밖에 없다. 그 때문에 스케치로 끝없이 누드를 그려보아야 했다.

"내가 맨 처음 누드 배울 때 데생 먼저 정확히 했어요. 연습을. 오랫동안 데생을 하고 그 다음에 크로키를 했지. 그리고 크로키에 자신이 생겼을 때 붓으로 했는데, 붓으로 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어. 너무 어려워서 그만 둘까도 생각했어요."

누드 스케치만 한 건 아니다

인물 스케치: 남농 허건(1984)
 인물 스케치: 남농 허건(1984)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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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희는 누드 스케치만 한 것이 아니라 일반 스케치도 꾸준히 연습했다. 스케치는 대상에 따라 인물, 동물, 풍경, 꽃 스케치로 대별할 수 있다. 인물 스케치는 문은희와 인연을 맺은 사람을 그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딸 윤선이를 많이 그렸다. 운보 김기창, 석불 정기호, 연민 이가원, 남농 허건도 그렸다. 숫자로는 남농 허건 스케치가 가장 많다. 그러나 세부묘사 등 정확도에서는 연민 이가원 스케치가 최고다.

친구로는 천상병 스케치가 있고, 동생 등 자매를 그린 스케치도 있다. 이웃집 할머니의 모습도 여럿이다. 할머니 중에는 1994년 충주에서 생활하면서 도움을 받은 덕희 할머니 스케치도 보인다. 그리고 1981년 1984년에 그린 자화상 스케치도 있다. 그 외 아이, 아기와 엄마, 젊은이, 중년의 남자 등이 스케치의 대상이다. 사람을 여럿 그린 군상도 있다. 문은희는 이들 스케치의 얼굴과 포즈를 통해 감정까지 표현하려고 했다.

고양이 스케치
 고양이 스케치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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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스케치는 인물 스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것은 스케치 후 추구한 것이 수묵 누드였기 때문이다. 스케치로 그린 동물로는 개, 고양이, 개구리 등이 있다. 그런데 개보다는 고양이 스케치가 많다. 그것은 개보다 고양이가 화가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때문인지 문은희 화백은 요즘도 집을 찾아오는 길냥이를 키우고 있다.

풍경 스케치는 산수화의 밑그림으로 연습한 것이 많다. 앞에서 언급한 산, 섬과 같은 그림이 여러 장 보인다. 그리고 도시, 농촌, 어촌 풍경도 있다. 풍경은 사실 누드 크로키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선지 풍경 스케치도 많지 않은 편이다. 그 외 정물로 과일나무나 식물도 보인다. 감 스케치도 있다. 다음으로 언급할 수 있는 스케치가 꽃이다. 그런데 꽃 스케치 역시 많지는 않다.

꽃 스케치: 해바라기
 꽃 스케치: 해바라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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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묘사의 분명함과 정확성에서는 꽃 스케치가 가장 두드러진다. 꽃의 경우 형태와 특징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완성된 꽃 그림으로는 수선화, 목련, 창포, 나리 등이 많다. 목련 같은 경우는 채색도 했다. 자목련임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해바라기와 국화를 그리기 위한 밑그림 스케치도 보인다. 그 외 이름을 알 수 없는 꽃 스케치도 여러 점 보인다. 

붓으로 하는 누드 크로키의 어려움

수묵 누드
 수묵 누드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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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희가 수묵 누드를 처음 시도한 것은 1985년 압구정 화실에서였다. 연필과 사인펜으로 하는 스케치 단계를 거쳐 붓으로 하는 크로키로 넘어간 것이다. 수묵으로 누드를 시도한 것은 문은희가 처음이다. 그 때까지도 동양화에서는 누드가 금기시되었다. 그리고 붓의 먹물이 화선지에 번지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수묵으로 누드를 그리는 일이 너무나 어려워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다. 

"연필로 그릴 자신이 있으니까 붓으로 되겠지 했더니 그게 아니더라고. 내가 붓을 그렇게 쓰고 크로키를 그렇게 했는데도 그렇게나 어려운 거야. 먹은 멈출 수가 없잖아. 한 필에 좍 나가야 하니까 힘들지. 그런데다 누드 형태가 얼마나 복잡해. 젤 그리기 어려운 게 누드. 그래서 옛날에는 누드 잘 그리면 그림 잘 그린다고 그랬어. 화가들도 누드 잘 못 그려. 그렇게 어려워요."

누드 스케치 작업
 누드 스케치 작업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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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희는 그 어려운 수묵 누드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므로 피나는 노력과 연습이 필요했다. 그러나 수묵누드가 너무 어려워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김기창 선생이 화실에 와 격려해주는 바람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이건 못 그린다. 네가 세계에 없는 걸 했다. 네가 마티스보다 낫다."는 말에 힘을 얻어 누드에 온몸을 바쳤다.

모델을 데려다 하루 두 시간씩 그려댔다. 그러니까 모델의 포즈만이 아니라 감정표현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델에게 포즈와 감정을 요구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문제는 한 두 시간이 지나야 붓에 힘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그때서야 붓을 지배하게 되고, 원하는 대로 선묘를 할 수 있게 된다. 문 화백은 그것을 신기(神氣)라고 말한다. 무당에게 신이 내리듯, 문 화백에게도 화신(畵神)이 내려오는 것이다.

수묵 누드 작업
 수묵 누드 작업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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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이 나타나 그리는 그림이 작품이 되는 것이다. 하루 3시간 동안 100장 정도 그리는데, 그 중 잘된 것을 한 장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그리고 나서 그 한 장 그림에 대고 절을 한다. 이건 하늘이 줬다고. 그 때문인지 문은희가 그린 누드는 먹선과 누드의 자태가 잘 어우러진다. 문은희의 수묵 누드는 몸매가 우아하다. 그리고 선 속에 역동적인 움직임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인물의 얼굴과 포즈를 통해 감정까지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문은희의 수묵 누드를 보면 괴로움과 고뇌가 표현된 경우가 많다. 그것은 문은희가 억누르고 살아온 예술적인 한을 누드를 통해 표현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문은희는 수묵 누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삶의 고뇌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수묵 누드에의 몰두가 그녀의 삶과 예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1987년에 수묵 누드를 대중에게 보여줄 기회가 생겨나게 된다.

누드 스케치를 하는 가운데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경인미술관을 찾은 이규호 화백
 경인미술관을 찾은 이규호 화백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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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희는 1984년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종로구 관훈동 경인미술관에서 제3회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회는 1975년의 신세계작품전, 1976년의 지방 순회전시회 후 세 번째로 열리는 개인전이었다. 3회 개인전에는 1/2회에 전시된 작품 외에 누드 스케치가 추가되었다. 그러므로 누드 스케치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이때 출품된 누드 스케치는 1980년대 초반에 그려진 것으로, 완성을 향해 나가는 단계에 있었다. 그러므로 완성도는 80년대 후반 수묵 누드 크로키전에 출품된 작품들에 비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은희의 누드 스케치가 대중으로부터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경인미술관 개인전은 큰 의미가 있다. 이때 선을 보인 누드 스케치는 선묘와 수묵 채색 두 가지가 있다. 

경인미술관을 찾은 중광 스님
 경인미술관을 찾은 중광 스님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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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미술관 전시에는 이규호 화백, 중광 스님 등이 와서 격려해 주었다. 경인미술관 전시회가 끝난 후 바로 지방 순회전시회가 열린다. 이때 찾아간 도시가 부산, 진주, 순천이다. 부산 전시는 부산호텔 화랑에서 열렸다. 순천 전시는 라이온스회관에서, 진주 전시는 가야화랑에서 열렸다.


태그:#누드 스케치, #이규호 화백, #인물 스케치, #수묵 누드, #경인미술관 개인전(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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