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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5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2005년 출소한 나동혁씨가 포승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5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2005년 출소한 나동혁씨가 포승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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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 지나고, 온종일 푹푹 찌는 한여름 열대야마저 지나고 더위가 살짝 꺾일 무렵. 11년 전 늦여름에 나는 인천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죄명 병역법 위반, 형량 1년 6개월, 수번 2422번. 감옥 방 철문 밖에 꽂아놓는 내 패찰에는 이런 단어들이 쓰여 있었다.

지금도 병역거부 관련 기사가 많이 달리는데, 당시 내 병역거부 인터뷰 기사에도 많은 악플이 달렸다. 그 당시 열심히 병역거부자들에게 악플을 달던 중학생이 세월이 지나 병역거부자가 되었다. 병역거부자 박상욱. 그 또한 11년 전 자신이 달았던 악플과 비슷한 악플을 봐야 했고, 7월 6일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교도소로 떠나기 전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소견서(전문 보기)를 남겼다.

11년 동안 대체복무제도는 도입되지 않았고, 병역거부자에 대한 악플은 여전하다. 바뀐 것도 많다. 특히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인식은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기적으로 여러 인권 사안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오고 있는데 병역거부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2006년 10.2%에서 2011년 33%, 2016년에는 46.1%까지 증가했다. 반면 병역거부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2005년 89.9%에 달하던 것이 2016년에는 52.1%까지 내려왔다.

대체복무제도로 좁히면 찬성 의견은 더 많이 나온다. 2016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72%가 이해할 수 없다고 대답했지만 대체복무 도입은 70%가 찬성했다. 16년이라는 세월에 비춰보면 작은 변화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초창기 병역거부에 대한 한국 사회 전반의 반감을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이 변화의 폭은 감개무량할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것은,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을 인권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병역거부자들의 생각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병역거부자들이 신념이나 양심 때문에 처벌받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이제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생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 변화가 무척 반갑지만 좀 아쉽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가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여전히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들이 왜 감옥에 가면서까지 군대를 거부하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위에 인용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만 보더라도 감옥 가는 문제와 직결되는 대체복무제는 찬성이 많은 반면 병역거부 자체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은 자기가 왜 감옥을 무릅쓰면서까지 군대를 거부하는지, 그 이유를 담은 소견서를 발표하고 그 생각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은 토론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소견서를 통해서 병역거부자들이 한국 사회에 던지고 싶어 한 이야기를 쉽게 들어볼 수 있다.

대체복무제도 찬반을 넘어 어떤 대체복무제도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적절한지를 논의하는 지금 시점이라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물론 병역거부자들이 죄다 평화주의자는 아니며 안보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병역거부자들의 고민은 저마다의 힘을 지니고 있다.

공중에 붕 뜬 이상주의적인 생각, 혹은 젊은 시절의 치기만으로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갈 수는 없다. 그들의 오랜 고민들, 신중하게 내린 결정들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살펴보는 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서 평화와 안보를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질문하는 힘, 병역거부의 이유가 되다

병무청의 병역기피자 신상공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박상욱
 병무청의 병역기피자 신상공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박상욱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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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외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군인이었고, 아버지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14년 동안 특전사 복무를 했다 한다. 군복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집안에서 자란 남자아이는 왜 악플러에서 병역거부자가 되었을까? '폭력'에 대한 질문이라고 박상욱은 이야기한다.

"고등학생 때 술에 취한 아버지로부터 잊지 못할 말을 들었다. 아버지가 광주 5.18에 투입된 계엄군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주는 북한 간첩들이 선동한 폭동이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역사관은 내가 학교에서 배워온 것과 너무 다른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제로 계엄군 아버지를 둔 병역거부자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병역거부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올 것이 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다. 박상욱은 '계엄군 아버지를 둔 아들의 병역거부'라는 찡하면서도 쉽게 설명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질문을 더 던진다. 평소에는 가족에게 손찌검은커녕 화를 내면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유독 다른 정치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배타적이었는데 그 폭력성의 기원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일상에서 드러나는 '다름'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성이, 군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의문이 생겼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은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쉽고 단순한 방식 같지만 실은 폭력에 연루된 모든 이들의 몸과 마음을 파괴한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박상욱 또한 고등학교 시절 겪은 경험이 폭력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나는 말을 자주 더듬었고 타인과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많은 괴롭힘을 당해왔다. 나를 괴롭혔던 친구들도, 자기보다 더 힘센 친구한테 괴롭힘을 당했고, 집에서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다. 더욱 참담한 건, 나도 약한 누군가를 괴롭혔다는 사실이다."

병역거부가 준 '선물'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겁쟁이" 혹은 "비겁자"라고 부른다. 반면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병역거부자들을 '감옥도 불사하는 강한 신념을 가진 젊은이'로 보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강철 같은 사람은 아니다.

군대를 거부하겠다는 결심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번복되기 일쑤고, 다른 이들처럼 치솟는 전셋값을 걱정하거나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박상욱 또한 병역거부자를 실제 만나면서 자신의 편견이 깨져나갔음을 고백한다.

"병역거부는 특별한 사람들만 한다고 생각했기에, '비밀 결사'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갔다. 그런데 학교 동아리방 같은 곳에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회적 편견과 달리, 출소한 병역거부자들은 다양한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었으며, 다른 예비 병역거부자들도 투사보다는 나처럼 불확실한 고민에 빠진 청년들이었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이런 편견이 잘 드러나는 질문은 예컨대 이런 것이다. "병역거부를 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언론 인터뷰를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기자들이 원하는 그런 드라마틱한 대답을 들려주지는 못한다. 그러면 기자들은 "그래도 잘 찾아보시라"고 친절하게(?) 조언해주지만 특별한 계기를 억지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가끔은 귀찮은 마음에 뭔가 기자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 같은 걸 언어로 정리해보고 싶을 때도 있다. 박상욱도 그런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아버지가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있었습니다" 같은 대답은 누구나 기대하는 드라마틱한 병역거부 사유가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박상욱은 쉬운 대답 뒤에 숨지 않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더 던지는 길을 택했다.

"아버지에게 오랫동안 삼켜왔던 광주를 꺼냈다. 아버지는 계엄군이 아니었다고 대답하셨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웠다. 아버지의 대답 외에 확인할 방법도 없었고, 내 무의식이 오랜 시간 기억을 조작해온 것은 아닌지 의심도 갔다. 하지만 이제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아버지의 5.18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버지가 설령 계엄군이었다 해도, 그것은 아버지가 병역문제를 내게 맡겼듯, 아버지가 대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나는 왜 병역거부를 고민하느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5.18 군인이었다고 여러 번 답해왔다. 그렇게 하면 묻는 사람은 숙연해져 입을 다물거나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예외적인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나도 이런 대답과 시선을 의도했던 것 같다. 피곤하게 상대방과 논쟁을 벌이거나 복잡하게 사고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가 5.18군인이라는 서사로 평범한 '나'를 대단한 고민을 품은 것처럼 포장할 수 있었다. 자아의 불명함을 아버지에게 떠맡겨 버렸던 것이다. 그 대답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5.18만 있었을 뿐, '나'는 없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5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병역거부자 및 엠네스티 관계자들이 옥중 기자회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5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병역거부자 및 엠네스티 관계자들이 옥중 기자회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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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들은 감옥 다녀와서 대체로 잘 산다. 감옥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거나 감옥에서 건강이 안 좋아져 나와서 고생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감옥은 다시 가고 싶은 곳은 아니지만, 전과자라는 딱지가 딱히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병역거부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을 배우고 느끼기도 한다. 병역거부가 꽃길은 아니지만, 그 길을 걷다 보면 제법 많은 선물을 받게 되는 거 같다.

"병역거부는 나 자신의 '소수성'에서부터 출발해 처음으로 고민하고 내린 선택이다. 또한 당연하다고만 여겨왔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물음을 안겨줬다. 그 물음은 병역거부를 처음 고민한 시점부터, 재판과 수감을 앞둔 지금까지 여러 차례 변해왔다. 감옥 안에서도, 출소 후에도 내가 그 물음에 답하고, 다시 물음을 던지는 한, 나는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병역거부가 안겨준 가장 큰 선물이기에, 나는 병역거부자로서 살아가고자 한다."

수감되자마자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었다. 짜증과 불쾌함이 극도로 팽창하는 장마철의 감옥. 하지만 병역거부가 준 선물, 쉬운 방법 뒤에 숨을 수 있던 순간마다 박상욱을 성장시켰던 그 질문들의 힘이 박상욱의 감옥 생활을 잘 돌봐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박상욱님은 지난 7월 6일 구속되어 현재 의정부교도소에 수감중입니다. 편지 쓸 주소를 알고 싶거나, 박상욱님의 소견서 전문을 읽고 싶은 분들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보세요. http://www.withoutwar.org/?p=13692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박상욱,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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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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