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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일요일 아침 8시 30분경. 이곳은 방송국이다. 옆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넌지시 물었다.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우측에 앉아있던 중년 여성은 "댁은 그럼, 어떻게 왔어요?"라고 되묻는다. 주부학교에 다니는데, 사전에 섭외를 받아 여기로 왔단다.

좌측의 60대로 보이는 장년층 남성는 "인천에서 왔는데, 섭외로 여길 왔다"고 말한다. "종종 (방송국) 직원들도 여기에 앉아있어요"라고 말하는 거로 봐선, 여기 한두 번 앉아본 것 같진 않다.

카메라 기자는 토론자의 얼굴이 빗나갈까봐 화면의 초점을 맞추는 데 열을 올린다. 방청객들도 자리를 바삐 조정한다.

방송 시작 십여 분을 앞둔 시각. 토론자가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일요일 아침, KBS 1TV에서 방송하는 '생방송 일요토론' 현장이다.

방송 한 시간 전 스튜디오.
 방송 한 시간 전 스튜디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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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얘기해야 밀도가 있어요"

방청을 신청해서 온 사람은 필자 포함 단 3명. 질문은 할 수 없고 방청만 할 수 있다. 토론 중간에 질문을 하는 방청객은 제작진이 사전에 섭외한 이들. 진행자가 토론자들에게 당부한다.

"매번 진행자가 질문하면 시청자가 다 떠나가요. 토론이 밀도 있게 진행되려면 여러분이 자유롭게 얘기해주셔야 해요"

토론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한다. 당일 아침에 비가 내렸다. 진행자는 "장맛비가 매일 20mm씩 정도만 내려오면 좋겠어요"라며 토론자들의 긴장을 풀어준다.

방송 시작 전, 진행자는 질문할 방청객과 사전에 조율하는 것도 빠뜨리질 않는다. 사전에 대본이 있는 것 같았다. 진행자가 원고를 바라보고 질문을 하더니 방청객은 답을 술술 이어나갔다.

방송 시작 5초 전, 타이틀이 나가고 방송은 시작됐다. 토론 의제는 '한미정상회담'. 토론자들은 대체로 회담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리며, 날 선 공방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방송 10분 전 스튜디오.
 방송 10분 전 스튜디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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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와 다를 바 없지 않나

방송 중간, 진행자는 "여기 많은 분들이 와주셨는데, 질문 받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실, 방청을 신청해서 온 이는 몇 안 되는 데 말이다. 질문을 하는 이도 결국 사전 섭외된 이들. '국민패널' 이름을 단 두 방청객이 진행자와 말을 주고 받는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방청객 모두에게 질문할 권한을 줬다면 어땠을까? 대본에 없는 돌발 상황이 때론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날 것 그대로의 생방송에 더 적합한 게 아닐까? 물론 '사고'가 나면 경위서를 써야 하는 제작자 입장에선 그러긴 힘들 거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토론은 말이 생방송이지, 녹화나 다를 바 없는 거 아닌가. 질문할 방청객은 토론 주제에 어느 정도 식견을 갖춘 사람을 섭외했을 것이다. 이것은 예측이 가능한 상황이다. 날 것을 줄이고 NG를 없애는 녹화와 무엇이 다른가.

질문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방청객 누구에게나 질문할 기회를 제공해줬더라면, 민주주의 참여의 순간을 방송이 제공하는 데 일조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아쉬움이 들 뿐이었다.

생방송 일요토론 제작현장
 생방송 일요토론 제작현장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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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시대, 더 쇠약해진 토론 공간

더구나 질문할 방청객이 말하는 건 진행자와 주고받는 문답에 불과했다. 토론자들이야 토론 의제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니, 생방송을 하건 녹화를 하건 일사천리로 토론을 이끌어 나갔을 것이다.

토론을 민주주의의 보루라고들 한다. 매사 갈등과 이견이 있기 마련인 것이고, 또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반이기도 하다. 그 기반이 탄탄해지려면 토론은 필수적이다. 아울러 토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갈등의 시대가 아니던가.

허나 지상파 토론 중 KBS <심야토론>과 SBS 토론은 사라졌고, MBC <100분 토론>은 방청객을 없앴다. 토론의 장이 흔들리고 방청객이 있는 토론마저 드문 세상이다. 말을 나눌 공간이 그마마치 사라졌다. 방청객, 국민의 의중을 공유하며 토론할 공간도 사라졌다. 그나마 존재한 <일요토론>은 시청률이 낮은 일요일 아침에 편성이 된 데다 방청객은 사실상 '들러리'로 사전에 틀이 짜여 있다.

제작자도 하소연할 게 제법 있을 것이다. 방청객 전부를 방청 신청으로 바꾼다면 누가 일요일 아침에 나와 자리를 채울 것이며 사전에 질문할 이를 섭외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점은 어찌 할 것인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제작자선에서 풀 문제가 아니다. 갈등을 대화로 풀어나가야 하는 시대에 토론을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인식하여 프라임타임이나 주목도가 높은 시간대에 배치하는 방법, 자율과 관용을 일정 부분이라도 허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다. 이는 방송을 이끄는 책임자의 몫이다. <일요토론>의 방송사는 '공영방송', KBS다.


태그:#방송, #토론, #KBS, #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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