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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아주 뻔한 이야기

내가 좀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 당당한 까꿍이 내가 좀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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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쓰는 글은 대한민국에서 딸을 가진 부모가 쓰는 아주 뻔하고 뻔한 고전적인 이야기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그래서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는 이야기.

어느 날 1학년 까꿍이와 직업에 관한 숙제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이 되고 싶은 직업을 골라 체크하는 숙제였다. 질문지에는 여러 가지 직업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보기를 둘러보더니 자신이 되고 싶은 만화가가 없다며 까꿍이는 울상을 지었다.

"잉? 만화가가 없네."
"화가나 만화가나 비슷하지 않아?"
"아니야. 달라. 만화가는 화가와 달리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잖아."
"예전에는 꿈이 화가였잖아. 그런데 왜?"
"그냥. 만화가는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니까.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의사는 어때? 사람들 고쳐주고 좋잖아."
"의사? 의사는 남자가 하는 거잖아."

순간 머리를 띵 맞은 듯 했다. 그래도 나름 깬 사람으로서 성역할을 고정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살았는데 8살 꼬맹이는 이미 사회의 성역할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구나.

"왜? 네가 자주 가는 병원의 의사들은 대부분 여자잖아. 남자들만 의사한다는 법이 어디 있어? 간호사는 여자만 하고 그래야 돼?"
"어? 그러네. 그래도 왠지 의사는 남자가 하는 것 같아. 간호사는 여자가 하는 것 같고."

당황스러웠다. 물론 가사에 있어서는 아내가 나보다 더 많이 하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어쨌든 집에서는 성역할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모든 건 열려 있다고 가르쳤다. 아니, 오히려 당시 대통령은 여성으로서 직업에 남녀 구분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이미 성역할에 대해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것이었다. 학교가 요즘 세상에 그렇게 가르칠 리는 만무하고, 결국 아이가 접하는 미디어 때문일까? 이게 바로 사회화의 결과인가?

깜짝 놀란 난 아이에게 직업에 남녀구분은 없다고 강조했지만, 그 이야기를 까꿍이가 얼마나 받아들일 지는 의문이었다. 아무리 부모가 가르치려고 해도 아이의 사회화는 나의 영역 밖의 일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부디 사회가 어서 바뀌어서 여아가 성역할과 상관없이 다양한 꿈을 꾸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었다.

예쁜 원더우먼

영화를 보는 내내 여주인공만 보고 있었다는
▲ 예쁜 원더우먼 영화를 보는 내내 여주인공만 보고 있었다는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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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봤던 영화 <원더우먼>은 앞서 언급한 성역할에 대한 내 자신의 고정관념을 다시금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원더우먼>이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때문에 여성 감독이 찍은 여성 히어로물이 기존의 히어로 무비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 분석하고자 했다.

실제 영화 <원더우먼>은 다른 히어로 무비들과 달랐다. 여성 감독이 연출한 만큼 여성이 주체적으로 그려져 있었고, 1차 세계 대전까지만 해도 여성 인권이 얼마나 형편없는 수준이었는지 영화 내내 보여주고 있었다. 여성이어서 회의에 들어오면 안 되고, 여성이어서 공적 발언도 제한되는 사회.

그러나 나의 분석은 거기까지였다. 영화는 많은 평론가들이 이야기하듯이 여성에 관한 이야기들을 좀 더 나열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보다 영화 <원더우먼>의 주연 갤 가돗에게만 오롯이 집중했다.

영화는 생각보다 단조롭고 평이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액션신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보다 주연배우가 예쁘기 때문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내가 한 일은 갤 가돗이 나온 영화를 찾아보는 것이었고, 그녀가 시오니스트적인 발언을 해서 논란이라는 걸 알고 안타까워했다.

여성의 주체성을 주제로 한 영화 <원더우먼>을 보고서도 여배우의 미모에만 집중하는 행태. 고백하건데 그것은 나의 한계였다. 물론 주연 배우가 잘 생기고 예쁜 것은 영화의 큰 매력 요소지만, 여배우의 미모만으로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가부장사회에 길들여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딸을 자식으로 두고 있는 부모로서 그것은 분명 지양해야 할 지점이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생각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방문했을 당시 받은 배지를 달고 지난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 방향에 대해 강 후보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모든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은 물론 단체, 정부와 국민들, 의원님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주 금요일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피해 할머니께서 달아주셨다"며 가슴에 단 배지를 가리킨 강 후보자는 "이 배지를 달아주신 할머니의 마음을 담아서..."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 피해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방향으로 적극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달아 준 배지 단 강경화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방문했을 당시 받은 배지를 달고 지난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 방향에 대해 강 후보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모든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은 물론 단체, 정부와 국민들, 의원님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주 금요일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피해 할머니께서 달아주셨다"며 가슴에 단 배지를 가리킨 강 후보자는 "이 배지를 달아주신 할머니의 마음을 담아서..."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 피해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방향으로 적극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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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길게 까꿍이와 영화 <원더우먼>을 언급한 것은 결국 현재 여야 간 교착 상태에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에 관한 건 때문이다.

야당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현재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을 반대하고 있지만, 딸자식을 두고 있는 부모의 마음으로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능력을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진일보한 것이고, 성평등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비 외무고시 출신으로 기존 관료들의 카르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려본다. 혹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과를 열거하면서 권위주의 타파, 공기업의 부분적인 지방 이전, 국민연금의 암 치료비 지원 등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의 가장 큰 성과는 그가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 정의와 원칙을 이야기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성과는 그가 학연과 혈연, 지연으로 엮어있는 이 사회에서 유리천장의 균열을 냈다는 것이고, 그의 당선으로 많은 이들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지난한 일이기도 하지만 최근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서 보듯이 그것은 소중한 밀알이 되기도 한다.

성역할의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여주인공 미모에만 관심을 쏟는 찌질한 아빠. 이 역설적인 조합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성공하기를 고대한다. 부디 그가 장관이 되어서 존재 자체로 이 사회에 남아있는 또 하나의 유리천장을 깨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까꿍이가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을 믿고 정치해 주기를. 또 야당은 자신들이 예전에 자행했던 만행들을 기억해 주기를.


태그:#강경화, #원더우먼,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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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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