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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은 소년 감화원이란 이름의 강제 수용소였다. 이 수용소는 일제가 '소년 감화'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수용소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 운영 됐다. 수용소 안에서는 문을 닫던 해인 82년도까지 강제노동과 폭력 등 온갖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그 사이 수많은 수용자들이 고통 속에 죽어갔다. 살아남은 일부 수용자들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경기도의회가 진상조사에 나서면서, 과거 이 수용소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선감학원이라는 이름의 강제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일들, 그 비극을 낱낱이 밝힌다. [편집자말]
선감학원 피해자 임용남 목사
 선감학원 피해자 임용남 목사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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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잘 못 들은 게 아닐까. 인간 세상에서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얼굴에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 청력을 의심하게 하는 믿기 힘든 내용뿐이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목소리 떨림도 없이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할 수 있을까? 성직자라서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임용남 목사(66세), 그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겪은 일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극적이었다. 전쟁통에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 손에 목숨을 잃을 뻔했고, 7살 때 어머니한테 버림을 받았다. 거지가 되어 5년을 떠돌다 붙잡혀 간 곳이 지옥 같은 소년 강제수용소 선감학원이었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 2일이다. 자기 집 거실인데도 그는 정장에 넥타이 차림이었다. 남자치고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가늘고 긴 손가락 그리고 하얀 피부, 한눈에 보아도 병약한 모습이었다.

그는 기운 없어 보이는 목소리로 "며칠 전까지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었어요. 대상포진에 결렸었는데, 머리가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 아프고, 정말 죽다가 살아났어요"라며 드라마 같은 자신의 인생을 담담하게 풀어 놓았다.

임 목사는 소설 <뭉치>(도서출판 생각나눔, 2012년 최건수 지음)의 실제 주인공이다. 소설 내용 대부분(90% 이상)이 사실이라는 게 임 목사 설명이다. 뭉치는 어머니를 뜻하는 뒷골목 인생들 은어다.

작가는 책 들머리에서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열 번 이상을 울어야 했고, 세 번의 몸살을 앓아야 했다"라고 고백했는데, 십분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가슴 밑바닥이 뒤집힐 때 나오는 증상인 울컥거림을 수도 없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정말이냐고, 사실이냐고' 목청을 높여야 했다.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졌다. 동공도 커졌을 것이고 한숨도 새어 나왔을 것이다. 그가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듣는 것을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결사적인 저지로 목숨은 건졌지만

경기창작센터에 전시된 사진, 일제 강점기때 소년들이 배를 타고 선감학원으로 드러오는 모습.
 경기창작센터에 전시된 사진, 일제 강점기때 소년들이 배를 타고 선감학원으로 드러오는 모습.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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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누가 콱 누르는 것 같아서 깨어 보니 제가 대들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거예요. 목에는 밧줄이 감겨 있었고요. 아버지가 저를 교수형 시키려 한 것이죠. 한밤중이었어요.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런 것 같아요. 그때 받은 충격으로 저는 지금도 '아버지'라는 개념을 알지 못해요. 아버지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모르겠어요."

다행히 불길한 낌새를 느끼고 달려온 어머니의 결사적인 저지로 그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성장기를 통째로 갉아 먹은 시련의 전주곡이었을 뿐이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끊임없이 저주를 퍼부었고 죽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아서다.

이 일 이후 그는 아버지가 있는 집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악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언제 또 목을 조를지 알 수가 없어서다. 그래서 이웃집을 전전하며 동냥잠을 자야 했고 죽음의 공포와도 싸워야 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먼 훗날 그의 어머니와 씁쓸한 재회를 하고 나서야 아버지가 어째서 자기를 죽이려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부패한 경찰이었어요. 산에 있는 나무를 몰래 베어다 팔아먹고, 그 돈으로 노름하고 술 먹고 계집질하고. 그렇게 방탕하게 살다가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병을 얻었어요. 죽게 된 거죠. 어느 날 돌중 하나가 집에 와서 몇 푼 뜯어가면서 하는 말이, 저한테 살이 끼어서 아들인 제가 죽어야 아버지가 살 수 있다고. 이 미련한 양반이 사기꾼 돌중 거짓말에 속아서는 친아들 목에 밧줄을 걸어버린 거예요."

동냥잠을 전전하며 보낸 불안한 2년이 흘러 소년 임용남은 7살이 되었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훨씬 더 나빠져 있었다. 아버지 병세는 가망이 없을 정도로 심해졌고 살림살이는 쌀독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어려웠다. 젊은 어머니는 남편 병간호와 어린 자식 끼니 챙기기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큰아들 용남이에게 새 옷을 입혔다. 아직 젖먹이인 용남이 남동생은 둘러업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용남이는 어머니와의 나들이에 기분이 달떴다. 그 길이 어머니와의 이별 길인 줄 알았다면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기차에 몸을 싣지는 않았을 것이다.

7살 어린 아들 손을 뿌리치고 떠난 어머니

선감학원 소년들은 이 물지게를 지고 하루에 몇차례씩 약수터에서 물을 길었다.(선감역사 박물관)
 선감학원 소년들은 이 물지게를 지고 하루에 몇차례씩 약수터에서 물을 길었다.(선감역사 박물관)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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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향한 곳은 서울역 부근에 있는 어느 보육원이었다. 어머니는 곤란한 처지를 설명하며 7살 용남이를 맡아 달라 사정했지만, 돌아온 것은 "전쟁고아도 넘쳐서 다 수용하지 못한다"는 짜증 섞인 말뿐이었다.

눈치가 빨랐던 소년 임용남은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눈물을 뿌렸다. 최대한 서럽게 울었다. 그래야 어머니가 자기를 버리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어미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 애절한 몸짓을 어머니는 끝내 외면해 버렸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어머니는 용남이의 손을 잡고 서울역으로 왔다. 어머니는 '먹을 것을 사올 테니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용남이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매달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빵이라도 사 올 테니 기다리라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불안하긴 했지만, 어머니를 화나게 하면 정말 자기를 버릴 것 같아서 치맛자락을 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 저를 버린 거예요. 저보다 더 어린 동생은 데려갔고요. 병든 아버지와 저를 버리고 도망친 거죠. 어머니가 그렇게 도망치고 얼마 안 돼서 아버지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 또한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알게 된 사실이죠.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뜰 수도 없었어요. 마음이 바뀐 엄마가 제가 없는 사이에 돌아와서 저를 찾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7살은 엄마라는 존재가 세상 전부인 어리고 어린 나이다. 느닷없이 엄마를 잃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울어도 힐끔거리며 쳐다보기만 할 뿐 누가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전쟁고아가 바글대던 시기라,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소년 임용남은 서울역에서 꼬박 3일을 보내며 엄마를 기다렸다. 이른 봄의 한기가 뼛속을 파고들었고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허기가 졌다. 그렇게 사흘을 보낸 뒤에야 소년 임용남은 기다린다는 게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은 엄마를 향해 있었다. 자기를 버린 야속한 엄마였지만 7살짜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엄마를 찾는 것뿐이었다.

그는 엄마를 찾기 위해 하루에 수백 명의 얼굴을 확인하고 다녔다. 그러나 엄마는 없었다.

"살면서 제 인생을 망가뜨린 이들이 누구인가를 많이 생각했어요. 원수 1호는 바로 그 돌중입니다. 해괴한 말로 한 가정을 풍비박산 냈으니까요. 2호는 그 말에 속아서 저 살자고 아들을 죽이려 한 이기적인 아버지이고요. 고생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 저와 병든 아버지를 버린 어머니가 바로 원수 3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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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선감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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