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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전 성공회대교수가 쓴 <남자 마음 설명서> 겉표지
 탁현민 전 성공회대교수가 쓴 <남자 마음 설명서> 겉표지
ⓒ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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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논란이 된 지 꽤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별다른 조치가 없다. 최근 청와대 행사기획 담당 행정관으로 채용돼 근무 중인 탁현민 전 성공회대 교수 이야기다. 문제는 그가 쓴 책 <남자 마음 설명서 : 남자가 대놓고 하는 말>로 부터 촉발되었다.

2007년에 발간된 해당 도서는 이미 절판되어 구입이 불가능 하다. 다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책에는 '콘돔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선 테러당하는 기분이다',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일 때 한손으로 가슴을 가리는 여자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마라'와 같은 문장이 등장했다고 한다. 맥락을 차치한다 해도 이것이 책의 소개 문구처럼 그가 '대놓고' 드러낸 스스로의 속마음이라면 고위 공무원으로서의 자격을 심각하게 의심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한 비판은 이미 많았으므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없다. 다만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 책의 제목이다. 왜 탁현민은 여성에 대한 자신의 성적 대상화와 멸시, 혐오를 풀어 놓으며 그것이 '남자'의 마음이라고 그랬을까. 모든 남자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사실 이건 탁현민만의 문제도 아니다. 내가 일상에서 마주쳤던 많은 수의 남성들도 자신의 특정한 성적 욕망(하지만 사실상 여성 비하에 가까운)을 풀어 놓으며 그것이 '남자의 본능'이라고 말하곤 했다. 가령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는 나에게 '구멍만 보면 넣고 싶은 게 남자의 본능'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아직까지 기억이 날 정도다.

너무도 만연한 '남자 본성론'

이러한 시각은 통념 정도로 돌아다니는 것도 유해한데 최근에는 아예 이론의 외피까지 뒤집어쓴 모양새다. 한동안 서점가에 유행했던 데이트 코칭 서적들을 살펴보자. 이 책들은 자기 주장의 근거를 무려 진화심리'학'에서 찾는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남성의 성욕이 왕성하고 그래서 최대한 많은 파트너와 섹스를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남자들에겐 최대한 많은 씨를 뿌려 자손을 남기고자 하는 강한 번식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여성은 성욕이 전무하거나 순결을 지키는 것이 좋은데 정자와 달리 난자는 생성되는 개수가 제한적이고 이들은 자신을 지켜줄 파트너를 신중하게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농담 같겠지만 '보편'을 가장한 '편견'들에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책들은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예를 들어 소위 진화심리학자들은 근거를 찾기 위해 오랑우탄을 비롯하여 공작새, 심지어 비둘기에서까지 사례를 끌어오지만 정작 인간과 가장 가까운 보노보나 침팬치가 그들의 이론과 정반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간단히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이들은 여성과 남성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번식 유전자가 정확히 어떤 기여를 했는지도 입증하지 않는다. 또 다양한 피임 기구의 존재가 입증하듯 문명이 번식의 촉진이 아니라 그것을 막는데 심혈을 기울여 온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비판의 지점은 무수히 많다. 심지어 책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에 따르면 같은 통계 조사 자료를 놓고 학술 논문과 대중서에서 정반대의 결론을 주장한 학자까지 있을 정도다!

'남자는 원래 그래'가 유해한 이유

탁현민 전 성공회대교수
 탁현민 전 성공회대교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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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이런 주장을 하는지 알 길은 없다. 직접적인 의중을 표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들어지는 효과는 명백하다. 어떤 욕구가 특정한 개인의 것이 아닌 남성 보편의 것이 되고 심지어 자연적인 것이 될 때, 그것을 말한 사람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하냐는 질문이 무의미 해진다. 원래 남자들은 다 그렇고 자신은 사실을 말한 것 뿐이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은 이제 과학적이기까지 하다. 오히려 그들이 말한 여성성/남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연을 거스르는 돌연변이로 치부되고 만다. 동성애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혐오적 진단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 '남자 고유의 마음과 본능'을 면죄부로 삼는 행위는 그것을 주장할 때에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규정된 '자연적 남성성'이 문제를 일으킬 때도 이 같은 주장은 반복해서 호출된다.

눈치를 챘겠지만 문제가 된 탁현민의 문장들 중 몇몇은 그가 탱크톱을 입었거나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이거나, 짧은 옷을 입은 여성들을 바라 봄을 전제로 한다. 특정 신체부위를 노골적으로 훑는 그의 행동은 사실상 성추행이라 할 만한데, 탁현민의 글에서 그 같은 모습들은 황당하게도 남자의 마음(본능)을 설명하는 사례로 둔갑한다. 하지만 설사 그것이 남성들이 지닌 보편적인 습성이 맞다고 해도, 이 정도면 그러니 잘 사용하라는 독려가 아니라 '진단'을 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닐까?

그런 성적 수행은 적폐다

앞서 언급한 책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에서 저자인 마리 루티가 언급했듯 사람들은 특정 대상에 '자연'이나 '과학'의 수식이 붙으면 그것이 변화가 불가능 하며 심지어 옳고 당연하기까지 하다는 오해를 하곤 한다. 그래서 그것이 진화건 본성이건 마음이건 어떤 빌미를 들어서든 '남자는 (원래) 그렇고 여자는 (원래) 그래'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유해하다.

그리고 심지어 그 남성성이 타인의 신체를 마음대로 훑고 안전하지 않은 섹스를 추구하며 여성을 오직 성적 대상의 위치에 놓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성적 수행은 폐기되거나 최소한 지양 되어야지 유지되고 고정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 성평등 정부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 와중에 적폐나 다름 없는 섹슈얼리티를 당당하게 전시하고 심지어 책으로도 판 사람이 공직에 오른다? 나는 이건 아이러니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 두 가지의 선택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된 사람을 내보내거나 아니면 선언한 원칙과 소신을 내팽개치거나.


태그:#탁현민, #여성혐오, #남자마음설명서, #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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