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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전사> 4, 5권이 나왔다. 2012년 3월에 <토론의 전사> 1, 2권이 처음 나오고 4년 만인 2016년 2월에 3권이 나왔다. 그러더니 다시 4년 만인 올해 3월, 4권과 5권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이로써 <토론의 전사> 시리즈는 5권의 묵직한 무게를 갖게 되었다.

1권부터 3권까지는 스스로 전사를 자처하며 고독하게 토론의 길을 개척해 온 토론 교육 전문가 유동걸 교사의 땀과 노력의 산물이었다. 1권은 토론의 필요성에서부터 토론의 준비 과정, 사회자의 역할, 경청의 중요성, 토론의 피드백과 글쓰기 등 토론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일종의 토론 입문서였다.

2권은 다양한 토론 방법을 상세하게 제시하여 토론이 학교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목적을 두었다. 3권은 교실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토론 교육 활동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지침서의 역할을 해주었다.

독서와 만난 토론

<토론의전사 4 >
 <토론의전사 4 >
ⓒ 한결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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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년 만에 돌아온 <토론의 전사>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일단 저자에서 유동걸 교사의 이름이 빠졌다. 4권은 유동걸 교사의 추천사라도 있지만, 5권에서는 아예 유 교사의 이름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책표지 뒷면에 이르러서야 4줄짜리 짤막한 유 교사의 책 소개 글을 만날 수 있다. 이제 전사의 고독한 여정에는 든든한 동반자가 생긴 듯하고,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토론의 확산을 위해 유 교사는 스스로 길을 터주고 뒤로 물러서기로 한 듯하다.

내용은 더욱 큰 변화를 보여준다. <토론의 전사> 4권의 부제는 '고전 읽기와 독서 토론'이라고 되어 있다. 토론이 독서와 만났다.

독서는 지식과 교양을 키우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자, 토론 교육이 제기되기 이전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 주는 가장 유력한 도구였다. 그리고 근래 독서 활동의 중요성이 학교 현장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중이다.

토론 교육 전문가 유 교사는 토론 공부를 하다가 독서에 미쳐 있는 한 교사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이 수년 동안 읽은 방대한 양의 문학 작품 목록과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치밀한 논제를 보여주었을 때, 유 교사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단다.

그동안 자신이 뿌린 토론의 씨가 나무로 자라 제법 뿌리를 내렸다면 이제는 새롭게 줄기를 뻗고 무성해져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 유 교사는 토론과 접목한 다양한 융합 교육을 구상하게 된다. 수년간 독서 지도에 매진해 온 정한섭 교사와 토론 교육의 외길을 걸어 온 유 교사의 만남은 이렇게 해서 <토론의 전사> 4권이라는 특별한 결실을 탄생시킨 것이다.

유 교사는 추천사에서 이 책이 고전 읽기를 토론과 접목시킨 최초의 사례라고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은 흔하지만 디베이트라는 대회식 토론의 형식을 도입하여 독서 토론의 새로운 틀을 짠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책을 쓴 정한섭 교사는 자신의 방대한 독서 편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질문을 구상하여 문학 작품을 디베이트 형식으로 가르치는 일에 몰두해 왔다. 책은 독서 방법론에서부터 시작하여 독서에 토론을 접목한 독서 디베이트의 의미와 역할을 규명하고 있다. 그리고 책의 반 정도 분량을 독서 디베이트에 적합한 도서를 선정하고 논제를 정리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카프카의 <변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비롯하여 낯익은 문학 작품들도 눈에 띄지만, <안티고네>나 <오이디푸스 왕>과 같이 요즘 청소년들이 흔히 접하기 어려운 고전의 목록도 망라되어 있다.

토론 강사들의 좌충우돌 활동담

<토론의전사 5>
 <토론의전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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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전사> 5권에 이르면 더욱 허를 찔린 느낌을 받는다. '학교, 마을과 만나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2014년부터 강원지역에서 토론 교육 연수를 마친 사람들이 지역 강사로서 활동한 경험담을 엮은 것이다. 토론 교육이라면 으레 대도시 잘 짜인 교육 시스템을 떠올리고 학교 교육의 전유물인 양 여기게 마련인데, 이 책은 전혀 의외의 영역에서 토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책의 내용은 모두 화천, 동해 등 다양한 지역에서 토론 교육을 하거나 강원 토론 교육 협동조합에서 활동한 토론 강사들의 좌충우돌 활동담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교육적 여건이 대도시만 못한 지방의 소도시, 토론 교육 볼모지에 토론 교육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기도 하고, 무작정 토론 교육에 뛰어든 토론 초보자들이 토론 교육 전문 지역 강사로 성장하는 성장기이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교사나 독서 논술 강사처럼 토론 교육 관계자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은 평범한 학부모들이다. 학생 상담 자원 봉사 등으로 학교 일에 관여하다가 토론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어 토론 교육 연수를 받고 본격적으로 토론 교육에 뛰어들게 된 토론의 문외한들이다.

5권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왜 토론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 학교,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의 모습을 통해 토론 교육 이론과 철학, 토론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부는 구체적인 토론 교육 실천 과정이다. 가족 독서 토론, 학교로 찾아가는 토론 수업, 방과후학교 수업에서의 토론 교육, 도서관 연계 토론 수업, 방학을 이용한 청소년 토론 캠프, 폐광 지역 토론 캠프, 진로 수업에서의 토론 교육 등 다양한 상황에서의 다양한 토론 수업 경험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3부에는 '미래를 열다'라는 제목 아래 작은 도서관, 그림책 토론 수업, 토론 수업 커리큘럼 짜기, 마을 교사가 되기 위한 6가지 자세 등 각 분야 전문가의 글을 실었다. 토론 교육의 확장과 발전이라는 토론 교육의 미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특히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토론의 전형인 찬반 대립 토론보다 '협력적 토론'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토론에 주목하고 있다. 토론은 입장의 차이를 확인하고 승부를 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방안을 찾아나가는 실천적 과정이다. 이것이 협력적 토론의 정신이다. 이는 기존의 대회식 토론, 경쟁적 토론의 부작용에서 벗어나 토론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근래 우리 사회는 예기치 못한 토론의 열기로 전에 없이 뜨거운 시기를 보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즉석 토론이 꽃을 피웠고, 국정 농단이라는 비상한 사태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새 틀을 짜기 위한 시민 대토론회가 곳곳에서 개최되었다. 한 방송인은 시국 현안을 토론하는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의 토론회로 전국을 순회하기도 했다.

최소 3회 이상 개최하게 되어 있는 대통령 선거 TV 토론도 이번 대선 기간에는 6차례나 개최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붙들었다. 지난 18대 대선 때 3회에 불과했고 사전 질문지에 따라 답변을 준비하고 질문-답변 시간도 지나치게 제한해 토론이 아니라 낭독회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커다란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지난 몇 달간, 대한민국은 거대한 토론 교육장이었다. 교실을 뛰쳐나온 토론의 열기가 전국을 달구는 동안 우리는 직접 참여하여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의 현장을 체험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닫힌 말문이 열리고 경청하는 귀가 열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다양한 의제에 대한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했다. 우리가 광장에서 꽃핀 협력적 토론을 경험하는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성큼 몇 발자국을 내딛었다. 이것이 토론의 힘이다.

책은 '왜 토론, 그리고 토론 교육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로, 토론은 지식을 종합 · 분석 · 비판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지식의 이해와 암기에 머물 때 우리는 똑똑한 앵무새가 되고 말지만, 토론을 하면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된다.

둘째로, 토론은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토론 교육은 민주 시민 교육의 중요한 축이다.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설득과 수용의 과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하는 민주적인 문화와 풍토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론을 배워야 한다. 셋째로, 토론은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하고 논리를 정교해지게 한다. 토론 자체가 유용한 배움의 과정인 것이다.

<토론의 전사> 시리즈를 처음 낸 유 교사는 특히 두 번째 항목을 강조해 왔다. 토론은 민주주의 훈련의 장이자 민주주의 구현의 토양이고 민주주의 수호의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토론 없는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사회를 고인 물처럼 썩어 버리게 할 것이다.

<토론의 전사> 1, 2, 3권에 깊은 애정을 느꼈던 독자로서는 유 교사의 빈 자리에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4권의 해박함과 전문가적 깊이는 일반인들에게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5권에 실린 18명의 체험담은 사례 그 자체보다 체험자의 생각이나 느낌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아 실천 사례를 활용하고자 하는 독자의 갈증을 다 채워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토론의 전사> 시리즈가 유 교사 개인의 저작물을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이번 4, 5권의 출간은 토론에 대한 논의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느끼게 한다.

민주주의 정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화두로 떠오른 우리 사회에서 토론은 학교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사회로 확산되어 나가야 하고, 학교 수업을 넘어 일상 속으로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한다. 2000년 무렵 싹트기 시작한 토론 교육은 이제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 진짜 전사로서의 면모를 갖춰 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수호의 전사로 말이다.


토론의 전사 5 - 학교, 마을과 만나다

강원토론교육협동조합 지음, 한결하늘(2017)


토론의 전사 4 - 고전 읽기와 독서토론

정한섭 지음, 한결하늘(2017)


태그:#토론교육, #유동걸, #정한섭, #강원토론교육협동조합, #독서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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