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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은 차별과 폭력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데, 이에 비해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평온하다.
 성소수자들은 차별과 폭력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데, 이에 비해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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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렇지, 여긴 한국이야."

수화기 너머 친구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육군 내 성소수자 색출 사건이 벌어져 한 군인이 구속되었을 때도, 대선 기간 동안 후보들의 동성애 혐오 발언이 이슈로 떠올랐을 때도 말이다. 그는 이 문제에서 당사자라고 할 성소수자였다. 거기에 친구는 바쁜 와중에도 집회나 단체 행사에 꾸준히 참여할 정도로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열심이기도 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말이 저것 뿐이었을까. 나는 그의 평온한 목소리에 안도했지만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친구는 이제 포기한 것일까.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지나치게 만연한 나머지, 이제 그 문제는 어쩔수 없는 것이라 여기게 된 걸까.

하루는 그와 술을 마시다 결국 질문하고 말았다. 어떻게 그렇게 무던할 수 있냐고. 당사자로서 화가 나거나 슬프지 않냐고. 나는 네가 신기하다고. 그러자 친구는 너털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분노나 우울감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감정과 함께 살다보니 더 이상 몸이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억지로라도 의연한 상태가 되고자 했다.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도 하지 않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희망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설명을 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체념은 체념인데 방어적 체념인 거지, 불가능과 적대가 만연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고 살아남기 위한."

'살아남기 위해' 체념에 익숙해져야 하는 삶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되는 일 보단 안 되는 일이 많고 무언가 바라기 보단 포기해야 하는 것이 더 많은 게 그의 삶이었다. 14살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고 언젠가 훤칠한 남자를 배우자로 삼겠다던 친구는 여전히 지인들의 결혼식에 초대 받으면 왠지모를 씁쓸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가슴 아픈 이별을 하고 술을 마시며 울다가도 가족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어야 했다. 그가 너무도 사랑하는 퀴어문화축제는 혐오 집단의 방해로 매년 개최에 난항을 겪었고 행진에는 늘상 훼방이 함께했다. 작년 SOGI 법정책연구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보호 수준은 유럽 49개국을 기준으로 뒤에서 7등인 마케도니아와 유사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공동체 내 특정 집단이 이 정도로 권리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고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 비하자면 사실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평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부러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을까. 어쩌면 이는 인종 차별적이거나 성차별적인 사회가 비백인들이나 여성에게 그런 것처럼, 이 사회가 성소수자를 다른 이들과 동등한 권리와 존엄을 보장받지 못해도 괜찮은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혐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다. 누군가를 일탈적이고 격하된 존재로 파악하는 인식이 그 대상을 보편적 인권의 바깥으로 밀어내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 지니는 의미

2016년 6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퀴어문화축제의 모습.
 2016년 6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퀴어문화축제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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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성소수자들에 대한 비정상이라는 낙인은 이들을 교정의 대상으로 만들며 동일한 성원권을 지닌 주체가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식의 혐오적 인식은 일상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담론에도 내재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거듭된 성소수자들의 투쟁과 가시화로 이들에 대한 편견이 비교적 불식된 후로는 변화가 생겼지만 말이다.

대표적인 분야로 정신의학계를 예로 들수 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에서 동성애를 삭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그와 동시에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2016년 세계정신의학회 역시도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또한 2012년 같은 편람에서 '젠더 주체성 장애'는 '젠더 위화감'이라는 단어로 변경되었고, 이로써 트랜스젠더를 병리적 존재로 보는 분류는 사라지게 되었다.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은 이 같은 획기적인 진전들 중에서 1990년 WHO(세계보건기구)가 국제질병분류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작은 동성애 혐오 반대의 날이었지만, 이후 양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반대하는 날로 발전해갔다. 한국의 경우 2007년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사이버 시위를 시작으로 아이다호 데이를 알리는 행동이 이루어졌다. 이후 2012년 부터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 행동'의 주관으로 매해 기념 캠페인과 액션이 열리고 있다.

성소수자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를 바란다

이렇듯 성소수자를 병리적 존재로 보았던 전문가 집단의 시선이 변화하고 이를 기념하는 행사도 10년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지만, 특히나 한국 사회는 이러한 발전을 전혀 쫓아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2000년대 부터 요구된 차별금지법 제정, 군형법 92조 6의 폐지, 동성혼 제도화 및 다양한 가족 구성권의 보장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아지지 않았으면 악화라도 되지 말아야 하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보수 개신교계는 성소수자 혐오 활동을 전면에 내세우며 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했으며, 그 와중에 서울시민인권헌장 발표를 무산시키거나 이미 제정된 인권 조례의 존립을 흔들었다. 거기에 이들을 저지하고 국민의 존엄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치인들은 눈치를 보거나 그들을 안심시키기에 바빴고, 결국 지난 대선에선 주요 대선 후보들의 혐오적 발언이 생중계 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 정권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나 역시도 그런 모습들이 너무나 반갑고 이제는 정말 나라가 달라지리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있다. 하지만 나의 성소수자 친구도 그럴 수 있을까. 이제는 그가 방어적 체념이란 것을 하지 않아도 될까.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식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아마 성소수자들에게 겪어 보지 못한 그 나라는 '삶을 견디기 위해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인 꿈과 희망을 접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없는 곳'일 것이다. 슬프게도 정말 그런 근본적인 수준이다. 그러므로 나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요구하고 싶다. 부디 이번 정부에서 추진할 개혁의 과정에서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지우지 말아달라. 성소수자 역시도 기본적 인권과 존엄이 보장되어야 할 국민들 중 하나다.


태그:#성소수자, #아이다호 데이, #문재인, #차별,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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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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