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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이 얼마나 하는지 남편이 물어나 보자고 한다.
 땅값이 얼마나 하는지 남편이 물어나 보자고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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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이 얼마나 하는지 남편이 물어나 보자고 한다. 남편이 택지 개발지 내 임시 건축사무실로 들어선다. 요즘 한참 개발되는 하남 주택단지다. 바둑판 모양 땅 여기저기엔 다양한 모양의 저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풀만 무성한 공간도 있고. 도대체 땅값은 얼마고 건축비는 얼마나 드는 걸까?

남편과 나는 이사할 집을 알아보려고 나온 길이었다. 지금 사는 곳이 남편의 회사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알아보고 있었다. 이 마을의 주택단지는 몇 년 전에 조성이 되어 예쁜 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린 여기 이사 오면 좋겠다 하며 차를 서행하다가 신규 택지지구로 공사가 한창인 이곳까지 들어오게 된 거였다. 이곳에도 주택이 다 들어서면 옆 동네와 비슷해질 거다. 게다가 몇 년 뒷면 전철까지 들어온다.

건축사무소 직원이 친절하게 우리 부부를 맞는다. 땅값이 얼마나 될까? 직원들이 얼마를 부르더라도 깜짝 놀라지 말아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을 했다. 돈이 있는 척 안 놀래야 건축비는 얼마가 드는지 나머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다.

땅값은 분양가에 프리미엄을 1~2억 원은 줘야 한단다. 분양가는 평당 800만 원대. 한 필지를 사려면 땅값만 8억이 든단다. 우리 부부의 재산은 이 도시에 낡은 아파트 한 채다. 팔아도 4억이 안 될 텐데..... 속으론 이런 생각이지만 아닌 척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8억이 다 있어야 하는 건 아니고요. 3억만 내고 나머지는 분납 하실 수 있어요."
"그럼 건축비는?"
"건축비는 평당 400만 원 잡으시면 됩니다. 이 필지의 경우 옥탑 포함해서 100평 정도 지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 4억 생각하시면 되죠. 그런데 이 돈이 다 필요하냐? 건축비는 또 금융기관에서 80%까지 대출을 해 줘요. 그러면 나중에 건축된 다음에 전세금 받아서 주시면 되죠. 전세금은 층당 4억 5천은 되니까..... 3억 8천만 가져오시면 건물 주인이 되실 수 있는 겁니다."

직원이 정신없이 종이에 숫자를 적어 넣는다. 건폐율은 50% 용적률은 100% 1층에 원룸이 1개 2층에 투룸 1개 스리룸이 1개 3층에 투룸 2개 원룸 1개 4층에 옥탑방, 층별로 옆에 전세금이 적힌다. 마법 같다. 땅값에 건축비가 전세금으로 해결이 된다니 그럼 나는 모자라는 3억 8천만 가져오면 이 집 스리룸에 살 수 있단다. 아파트도 지은 지 10년 이내의 것은 이 동네에서 3억 8천으로 구하기 어려운데 이 사람들은 3억 8천만 있으면 이 넓은 땅의 건물주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지어진 집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한다. 남편과 따라나섰다. 집 뒤편엔 공원이 있어서 2층에선 바로 내려다보인다. 직원이 돌아오는 길에 또 설명한다. 저기 저 건물은 건축이 끝난 뒤 매각을 했는데 20억 이상으로 팔렸다고. 건물을 짓기만 하면 앉은 자리에서 수억을 번다는 거다. 그렇게 돈을 벌기가 쉬운데 우리는 여태까지 왜 그리 돈을 못 벌었을까? 그렇게 돈 벌기가 쉬운데 그 기회가 나에게까지 오지? 의문이 생긴다.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까? 이들의 말이 반만 진실이라도 대박 아닌가? 자꾸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릴 적 엄마가 자주했던 말이 있다. '집을 짓는 것은 평생 딱 한 번 하는 일이다. 멋도 모르고 딱 한 번 집을 지어보는 거지.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안 해.' 그 말을 누누이 들었다. 그러니 내 속에 건축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이 없다. 까닥 잘 못 하면 땅까지 빼앗기게 된 사연까지. 건축은 해선 안 되는 선택임을 알려주는 많은 사례를 엄마는 내게 소개했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서 그 근처 비슷한 건물의 매매가를 알아보았다. 최근에 건물이 통 매각이 된 경우는 있었지만 15억이었단다. 건축사무소 직원의 말과는 5억이 차이가 난다. 전세시세나 땅값은 대충 비슷하다.

남편이 지인에게 전화했다. 이 지인은 얼마 전 자신의 집과 부모님 댁을 새롭게 건축하여 자산 증식에 성공하신 분이다. 전화해서 의견을 구하니 건물 두 채를 짓는 동안 속 한번 섞인 일이 없다며 한 번 도전해 보라고 한다. 자신이 아는 건축회사와 대출해준 은행 지점까지 소개해 준다고 했다.

다음 날 휴가인 남편과 나는 소개 받은 은행 지점장을 만나러 갔다. 프리미엄 포함해서 8억인 이 토지에 대해서 은행은 대출을 최대 4억 8천만 원까지 해 줄 수 있고, 건축비가 4억이라는 가정 하에 1억 2천까지 해 줄 수 있다고 한다. 건축사무소에서 들었던 최대 대출금과 많이 다르다.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저희는 제1금융권이고요. 건축사무소에서 말하는 거는 제 2금융권 대출이라서 액수에서 많이 차이가 나죠?"

제2금융권은 거래를 해 보진 않았지만 대출 이자에서도 차이가 날거다. 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다면 최소 6억을 만들어야 한다. 건축사무소에서 들었던 조달자금이 3억8천에서 6억으로 2억 2천이 늘었다. 지점장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남편의 얼굴에 실망감이 깃든다. 그러면 그렇지 그렇게 쉽게 건축주가 될 수 있을까? 이제 어찌해야 하나? 주택을 갖는 로망을 꿈을 이쯤에서 접어야 하나? 소개받은 건축사무소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래도 만에 하나 건축회사에선 희망 섞인 답을 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 또 건축가와 상담을 받아 볼까 싶어서 건축 사무실로 향했다.

건축가는 업계에서는 나름 유명하고 신망이 높은 분이었다. 건축가에게 땅에 대한 정보를 드렸다. 건축가는 컴퓨터로 위치를 확인하더니 어렵게 말을 뗀다.

"제가 보기에는 좀 애매하기는 한데 용적률 100%면 별로 사업성이 있는 땅은 아닌 거 같고요 지금 시기가 금리도 높아서... "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다. 당신들이 가진 돈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건축가가 일을 거부하는 듯한 말을 하다니... 얼마나 사업성이 없어 보이면 저런 말씀을 하실까?

"이 땅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땅도 서울에 많이 남아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땅을 찾으려면 품을 많이 팔아야 해요. 그리고 아주 집요하다 싶게 찾아다녀야 하고요. 그리고 이런 일은 아무래도 계획대로 안 돼요. 돈이 꼭 부족하게 돼 있어요. 은행에서 대출이 되기 전에 개인적으로 돈을 일 이억은 조달할 수 있어야 해요. 엄마가 뭐랄까? 아주 억척스러운 부분이 있어야 성공을 하더라고요. 안 그러면 성공하기가 힘들어요. 아니면 위험을 줄이게 두 집이 같이 하던가."

'띠링' 머리에서 종이 울린다. 억척스러운 엄마. 집 한 채 가져보려면 억척스러운 엄마의 집요함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엄마인가? 아니다. 어디서 일 이억 조달할 능력이 없다. 하려면 친정에서 해야 하는데 1~2억은 턱도 없다. 같이 투자할 사람을 끌어들인 능력도 없으니 이참에서 건축주가 될 마음은 접어야겠다. 건축가에게도 귀한 시간 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 나오는데 남편의 어깨가 더 쳐져 보인다.

이제 우린 다시 아파트로 이사를 고민해야 하나? 남편의 출퇴근 시간이 너무 걸려서 이사하려는데 그럼 대출을 얼마나 받아 하나? 그런데 우리가 건축주가 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억척스럽지 못한 탓 인 걸까? 모르겠다. 이제라도 나 억척스러워지려고 노력해야 하나?



태그:#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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