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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인이 쏘아올린 작은공이 탄핵으로 돌아왔다"(all****) 시작점은 이화여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경희 전 총장이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나선 일에 학생들이 반대했고, 강고한 농성투쟁을 벌였다. 최순실 딸의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이대의 정부지원 싹쓸이 등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일각이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마침내 승리했다. 하지만 '새로운 이대'는 아직 멀었다. 비리 은폐에 나섰던 이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고 학생들은 아직 아프다. 박근혜를 파면한 한국의 내일이 지금의 이대일 수 있다. [편집자말]
30일 이화여대 본관에서 경찰이 한 학생을 끌고 가고 있다.
 30일 이화여대 본관에서 경찰이 한 학생을 끌고 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제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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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한동안 3일 한 번 3시간 정도밖에 못 잤다."
"그 날 이후, 매일 술 마시고 울다 잔다. 매일 사소한 것에 화가 나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고 공부할 때 집중도 안 된다. 자해할 때도 있다."

86일간의 농성을 이어간 학생들은 아직 '그날'을 잊지 못한다. 2016년 7월 30일. 이화여대 안팎에 경찰 21개 중대, 1600여 명이 투입된 날이다. 학생들은 최경희 당시 총장이 방문한다는 학생처의 문자를 받고 최 총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들이 마주한 건 방패를 앞세운 경찰이었다.

그렇게 이들은 지난해 7월 말 한여름부터 10월 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때까지 농성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농성이 이어지는 동안 이대 졸업생들은 "언니 왔다"라는 팻말을 들고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지지했다. 이대 역사상 최초로 교수들이 집단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이대 교수협의회 소속 비상대책위원회 교수 200여 명은 최 총장의 사퇴 외에도 학내 시위 중인 학생들의 안전 보장,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이대 관련 뉴스가 연일 신문과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고,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대 특혜입학 뉴스도 터져 나왔다. 결국, 최 총장이 사퇴했다. 학생들도 10월 30일을 끝으로 농성을 해제했다.

농성이 끝나고 3개월이 훌쩍 넘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그날'의 고통을 호소한다. 농성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고백이다. 이대 교수협의회의 도움으로 병원 치료, 심리치료, 철학 상담을 받고 있지만 이마저도 지원기금이 얼마 남지 않아 치유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도 느낀다.

<오마이뉴스>는 '이화를 사랑하는 이화인 일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힐링 이화'의 도움을 받아 농성 참여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 두 명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2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본관 입구에 최경희 총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2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본관 입구에 최경희 총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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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얼굴 아른거려 찾아간 농성장

김아무개씨는 반년 만에 만난 부모님과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학교로 갔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날, 시차 때문에 뒤척이다 저녁때야 일어났다. 지난해 7월 30일이었다. 휴대폰을 켜자마자 김씨가 본 건 경찰로 가득 찬 이대 사진이었다. 김씨는 "빨리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라며 "다음날 경찰이 또 올 수도 있으니까 나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밤을 새우러 갔다"고 전했다.

같은 날, 이아무개씨 역시 경찰이 농성장을 주변을 뒤덮은 모습을 학내 커뮤니티에서 보고 뛰어갔다. 그는 "경찰이 방패를 밀고 들어온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대화하자고 찾아온다는 총장 대신 경찰이 온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었을 동기와 후배를 지키기 위해 갔다"고 말했다.

이들이 학교로 달려간 이유는 단순했다. 이씨는 경찰과 대치하거나 몸싸움을 하며 놀랐을 친구와 후배 얼굴이 떠올랐다. 김씨는 언니를 쫓아 이대에 오고 싶어 했던 고3 여동생에게 '이런 학교'를 추천할 수는 없어 달려갔다. 이들 모두 농성이 끝나고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본관 점거 농성이 끝나고 나서야 내 심정이나 몸 상태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온갖 불안과 공포가 나를 뒤덮었다. 학교에서 나를 찾아내 징계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집에서 자고 있는데 경찰에 체포되는 상황까지. 자주 악몽을 꿨다."

이씨는 "한동안 불면증이 심해 격일에 한 번밖에 못 잤다"고 털어놨다. 잠을 못 자니 바로 몸에 신호가 왔다. 그는 결국 병원을 찾았다. 이씨는 "병원에서 불안도가 너무 높다고 항불안제 및 수면제, 항우울제를 처방해줬다"라며 "점거 중 매일 바뀌는 상황 때문에 긴장 속에서 묻어 둔 감정들과 기억들이 올라와 발작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상을 잃었다. 그는 "덧셈, 뺄셈 같은 간단한 것도 못해 실수를 연발하고 토할 거 같아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친구도 만날 수 없게 됐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원래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교우관계도 좋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플러스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모든 게 변했다"라며 "지금은 마이너스만 가득한 느낌이다. 농성 이후 카카오톡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러움이었다. 이씨는 "학교본부는 농성이 끝나고 괴로워하는 학생들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는 굳이 '시위'를 한 '학생'들의 아픔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모두 거짓말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제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청문회 출석한 최경희 전 이대총장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제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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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 처리 안 돼 지원 못 해준다는 학교에 무엇을 기대하나"

불안, 발작, 자해까지. 농성 이후, 고통은 계속되지만, 치료는 요원하다. 이대 교수협의회에서 농성 후 트라우마를 겪는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을 하고, 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자금이 바닥나고 있다.

"그동안 교협의 지원으로 정신과 통원치료와 심리상담을 이어갔다. 발작이 일어나는 때에 약을 먹으며 극한의 불안까지 가지 않도록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기금이 고갈돼 치유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씨는 "더는 프로그램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라며 "통원치료조차 언제까지 가능할지 불투명해지면서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악몽을 다시 꾸고, 불면증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현재 아무 치료도 받고 있지 않다. 그는 "아직 무언가 시작할 힘이 없다"라며 "사회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난 이후 내가 알던 세계가 박살 났다"라며 "조각난 파편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의 치료를 위해 교수들이 모금했던 기금도 벌써 끝이 보인다고 하더라"라며 "학생들이 모두 괜찮아질 때까지 몇 년이고 치료를 계속하겠다는 교수님의 말이 아직 귀에 선한데, 치료할 비용이 없다니…"라며 말을 아꼈다.

현재 교협이 지원하는 치유 프로그램은 교수들의 모금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교의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은 익명 치료를 요구하지만, 학교는 익명 처리일 경우 회계상 문제가 된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협 관계자는 "정신과에서 익명 치료를 받을 수는 있다고 하는데,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라며 "그렇다고 고통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책임을 물거나 실명을 요구할 수도 없다. 학교가 도와주면 좋겠지만, 익명 치료는 영수증 처리가 안 돼 절차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밝혔다.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과 재학생 100여명이 2일 오후 5시경부터 이화여대 정문부근에서 졸업증서를 학교측에 반납한다는 의미로 졸업증서 사본을 벽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과 재학생 100여명이 2일 오후 5시경부터 이화여대 정문부근에서 졸업증서를 학교측에 반납한다는 의미로 졸업증서 사본을 벽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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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후 다시 만난 또 다른 세계

"직접 시위를 해보면서 다른 많은 시위에 관심을 두게 됐다. 시위는 어떤 방법을 써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최후로 선택하는 수단이다. 시위하겠다는 마음부터가 이미 절벽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이씨는 "농성에 참여한 후 다른 농성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갈 데 없는 이들이 최후로 선택한 시위, 농성이라는 수단에 대한 관심, 연민이 짙어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왜 시위하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게 가장 필요하다. 그런데 언론은 너무 편파적"이라며 "언론은 가십거리만 찾고 이슈를 만들기 위해 좋은 문장만 뽑아서 사용한다"고 성토했다.

이어 "우리도 농성장에서 많은 성명을 발표하고 학내 치료, 학내 구성원의 안위 보장 등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정유라 얘기만 나왔다"라며 "왜 시위를 하는지 왜 농성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는지 상황을 전달하는 언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성은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전달했다. 이대 농성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내가 알던 세계는 다 무너졌지만 새로운 사랑과 믿음을 배우기도 했다. 사회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바닥난 상황에 또 다른 사랑과 신뢰를 얻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하루하루 살다 보면 어느새 순응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험이 나를 바르게 살 수 있도록 지탱해 줄 거라 믿는다."

김씨는 "평화로운 캠퍼스, 자유로운 대학생활 등 '내가 알던 세계'는 무너졌지만 '다시 만난 세계'에서 아픔과 사랑을 접했다"고 덧붙였다.



태그:#이대농성, #정유라, #트라우마, #최경희,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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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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