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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는 이웃 사람들. 식탁에 같이 모였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는 이웃 사람들. 식탁에 같이 모였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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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월요일이다. 시골에서 지내는 은퇴 생활이지만 월요일에는 할 일이 있다. 매주 동네 사람이 모여 골프를 치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호주에서는 부담 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동네는 골프장을 중심으로 조성된 동네라 시골치고는 많은 사람이 참가한다. 따라서 월요일은 동네 사람이 모여 동네 소식을 나누며 떠드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왼손잡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랐기에 완전한 왼손잡이는 아니다. 글을 쓰든가 수저를 사용하는 것 등은 어른들의 간섭(?) 때문에 당연히 오른손으로 한다. 그러나 야구 등을 비롯해 많은 운동은 왼손을 사용한다.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시작한 골프도 당연히 왼손으로 친다.

가끔 정치적 성향을 묻는 사람에게는 골프를 왼손으로 친다며 나의 성향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마도 한국에서 골프를 배웠다면 오른손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왼손으로 골프 치는 한국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호주에는 왼손잡이 골퍼가 많은 편이다. 물론 많다고 하지만 소수임은 분명하다. 얼마 전에 나를 비롯해 왼손잡이만 모여 팀이 된 적이 있었다. 흔하지 않은 일이다. 평소에 안면이 있던 사람들이지만 왼손잡이만 모여 운동을 하니 색다른 기분이 든다. 평소와 같이 게임을 끝내고 맥주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에는 왼손잡이 골퍼가 거의 없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왼손잡이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듣던 호주 사람들도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 서양에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왼손잡이의 설움(?)이 화제가 되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야기 도중 왼손잡이만 모여 골프 여행을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제안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좋아한다. 우리 동네에 왼손잡이 골퍼가 더 있지만 이번에는 우리끼리만 떠나기로 했다. 2박 3일로 날짜를 정했다.

한가한 골프장에서 여유 있는 골프를 즐긴다

퍼시픽 듄즈(Pacific Dunes) 골프 클럽. 호주에서는 경제적 부담 없이 원하는 날짜에 쉽게 골프를 즐길 수 있다.
 퍼시픽 듄즈(Pacific Dunes) 골프 클럽. 호주에서는 경제적 부담 없이 원하는 날짜에 쉽게 골프를 즐길 수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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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가족이 모여 골프 여행 떠나는 날이다. 예약한 넬슨 베이(Nelsons Bay)에 있는 골프장으로 떠난다. 두 시간이 걸리지 않는, 멀지 않은 곳이기에 느긋하게 일어나 준비하고 떠난다. 한국은 추운 한겨울이지만 호주는 무척 더운 한여름이다. 여유 있게 골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미 와 있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아담한 골프장이다. 너무 더워서일까, 한가하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더운 날씨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낯선 골프장에서 재미있게 즐겼다. 골프를 끝내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클럽 라운지에 들어선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더운 날씨에 마시는 맥주 맛이 좋다.  

골프장을 떠나 가까운 곳에 있는 숙소로 향한다. 숙소에 도착하니 작은 수영장이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영장으로 뛰어든다. 더운 날씨다. 물놀이와 농담으로 더위를 잊는다.  

저녁 시간이다. 숙소 주인이 추천한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걸어간다. 상쾌한 바닷바람이 분다. 초저녁의 낯선 마을 풍경이 정겹다. 한국말로 마음껏 떠들 수는 없지만,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웃이 있어 좋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제공한 아침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사람 나름이긴 하지만 호주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말이 많다는 생각을 요즈음 종종 한다. 하잘것없는 것도 화제로 삼으면 끝이 없다. 시간에 맞추어 수다를 끝내고 두 번째 골프장으로 떠난다.

골프를 끝내고는 어제와 같이 수영장에서 지내다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어제 갔던 식당이다. 걸어서 갈 수 있어 좋다. 마지막 밤이 서운했던지 당구를 치자고 한다. 잘 치지 못하는 당구를 함께 즐긴다. 한국에서 치던 당구와는 다르다. 실력도 없고 규칙도 잘 모르지만, 운이 좋아 우리 팀이 이겼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잠을 청한다. 

마지막 날 아침이다. 오늘도 굿모닝 인사를 하며 아침 식탁에 모였다. 어제와 같이 수다를 떨고 골프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퍼시픽 듄즈(Pacific Dunes)라는 골프장이다. 세 번을 계속해서 치는 골프지만 한국과 달리 경제적으로 부담이 없다.  

골프장에 도착하니 골프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이곳에 몇 년 전에 왔었다는 피터(Peter)는 골프를 치면서 계속 놀란다. 허허벌판이었는데 집이 많이 들어섰다고 혀를 내두른다. 호주도 인구가 늘어나면서 지방에도 건축 붐이 한창이다. 우리 동네도 집 지을 사람을 찾지 못해 기다리는 사람을 몇 명 알고 있다.

골프를 끝내고 간단한 음료를 마시며 지난 3일을 회고한다. 모두 좋았다고 한다. 다시 기회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한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같이 떠들며 지내다 보니 전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가까운 친구가 된 기분이다. 

친구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즐기는 친구, 이용 가치가 있는 친구 그리고 삶을 나누는 친구라고 한다.

그동안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친구로 기억되고 있을까? 호주 시골에서 새로 사귀는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와 동시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한국에 사시는 분을 위해 내용은 조금 수정해서 쓰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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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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