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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식사하는 모습.
 지난 2005년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식사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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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탄 저희는 곧장 훈련소로 향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불안했지요.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돼지처럼 말이죠. 한편으로는 '진짜 군인이 되는구나'라는 설렘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신병교육대. 줄여서 '신교대' 안으로 버스는 천천히 들어갔습니다.

마침 날도 어두워서 꽤 긴장됐죠. 특히 위병소를 통과하면서 더 그랬습니다. 소총에 대검을 착검한 경계병의 모습은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죠.

처음으로 오싹했던 그 환영식

신교대 입영 버스에서 내리자 우리를 맞이하는 대열이 보였습니다. 바로 신교대 측에서 환영하는 것이죠. 하지만 버스에서 내린 우리들은 그 환영식이 기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싹했죠. 환영 인사를 나온 교관, 조교들이 굉장히 무섭게 보인 것이죠.

검은색 헬멧을 푹 눌러쓴 교관과 조교. 눈이 보이지 않은 데다가 무표정해서 긴장감을 조성했습니다. 여기에 철저하게 각을 잡은 자세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넘쳐흘렀죠. 덩치가 좋든 왜소하든, 장정들은 모두 굳었습니다. 환영식이 아니라 압박시위 같았죠.

잠시 후에 모이라는 교관들의 말에 장정들은 그제야 움직였죠. 그러나 긴장하면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 몇몇 장정들은 허둥지둥하며 갈피를 못 잡았습니다. 이때 불벼락과 같은 목소리로 어느 조교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빨리빨리 안 움직입니까! 여기가 아직도 보충대입니까!"

마치 불에 덴 것처럼 장정들은 더 빨리 행동했지요. 보충대에서는 구대장들이 반말을 하기는 했지만, 고함을 지른 적은 없었습니다. 모두들 대단히 두렵고 긴장했음이 역력했고요. 이윽고 줄을 선 장정들은 분류됐습니다. 특별히 지병이 있는 사람 등을 선별한 뒤, 비로소 소속이 결정됐습니다. 신교대 1중대 2소대. 그것이 지금부터 저의 소속이죠.

이제부터 우리는 '훈련병'

소대별로 분류가 된 뒤에 조교들은 저희를 각자 생활관으로 보냈습니다. 정식 입소식이 남기는 했지만, 이제부터 번호가 새로 부여됐습니다. 그에 따라 저희는 '장정'에서 'OO번 훈련병'으로 호칭이 바뀝니다. 정말로 이제는 '군인의 대열'에 낀 것이죠.

장정은 민간인도, 군인도 아닌 신분이지만 훈련병은 다릅니다. 엄연히 군인에 속하고 군법에 속박됩니다. 아직 정식으로 입소식을 하지는 않았지만요. 어찌 되었건 이제부터 우리는 '훈련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대별로 생활관을 나눠서 있게 됐지요.

생활관에는 어색한 분위기만이 감돌았습니다. 공통점이라고는 빡빡 밀은 머리와 어색한 전투복 차림, 훈련병이라는 신분이 고작이었죠. 연령대도 다양했습니다. 주로 21살이었지만 군대를 늦게 온 '형'들도 조금 보였지요. 처음에는 다들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마다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이제 만난 시간이 몇 시간도 안 됐지만, 서로 통한다는 느낌이 와 닿았습니다. 물론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접어야만 했습니다. 지나가는 조교가 발견했거든요. 화가 난 조교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것들이 빠져가지곤! 야! 여기 놀러왔어?"

생각해보면 신교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거죠. "여기 놀러 왔어?" '예전 군대'도, '옛날 군대'도 이랬다고 합니다. 군대의 갈굼 레퍼토리는 여러모로 전통적(?)입니다.

입대한 지 4일 만의 '꿀잠'

저녁이 됐습니다. 소대별로 식사 집합을 하라는 방송이 나왔죠. 훈련병들은 신속하게 집합했습니다. 조교의 인솔 하에 훈련병 소대는 취사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직 제식 교육을 받지 못해서 모두 걸음걸이도 대단히 어설펐습니다. 발맞추는 것도 고역이죠. 그래도 어떻게든 갔습니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요.

취사장에 도착한 훈련병들은 놀랐습니다. 보충대와는 너무나도 달랐죠. 아주 깨끗한 식판, 맛있는 반찬, 따뜻한 밥과 국. 양도 보충대에 비하면 많았습니다. 이때만큼은 훈련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줄을 섰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식사를 하니까요.

잔반을 남기는 훈련병은 거의 없었습니다. 보충대와 달리 식사가 아주 좋았죠. 물론 그동안 배가 너무 고팠던 것도 한몫했지만요. 밖에서는 야채를 쳐다보지도 않던 어느 훈련병은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시금치가 이렇게나 맛있는 것인지 처음 알았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생활관으로 복귀했죠. 얼마 후에 씻으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훈련병들은 신속하게 세면장으로 향했습니다. 세면 세족도 아주 좋았죠. 씻는 시간이 충분해서, 훈련병들은 샤워도 했습니다. 물론 샴푸와 린스는 쓸 수가 없었지만요. 그래도 비누만으로 샤워가 가능하다는 점을 군대에서 배웠죠.

취침여건도 보충대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개인 매트리스가 주어졌죠. 1인당 매트리스 1개, 모포 2장, 심지어 침낭까지 받았습니다. 보충대에서 3인당 매트리스 2장, 모포 2장을 같이 쓰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대우죠.

게다가 불침번까지 '공평하게' 따로 세운 덕분에, 처음으로 불침번을 서지 않고 잠을 청하게 됐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습니다.

'이렇게 보충대보다 좋은 여건인 것은, 그만큼 굴려대니까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도 그 불안감은 이내 사라졌습니다. 4일 만의 '꿀잠'은 불안감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니까요. 입대한 이후로 처음으로 행복했던 잠자리였습니다.


태그:#입영부터전역까지, #고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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