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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철균(필명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3일 구속됐습니다. 류 교수는 정씨가 출석하지 않았는데도 학점을 주고 시험을 보지 않았는데도 조교에게 정씨 명의 답안지를 쓰게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페북에서 "이문열은 이인화의 소설을 '후생가외'라고 극찬했다. 류철균은 <이문열 연구>를 발간했다. 생각건대, 이문열이나 류철균은 초기에 '영남 남인'의 실권(失權) 의식을 가졌으나, 곧 박정희 등 영남 출신 권력자에 대한 충성 의식과 국가주의적 세계관, 정치관으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채웠다. 이후 수구기득권에 대한 옹호로 일관하였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류 교수의 문단 선배인 이승하 시인 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편지를 싣습니다. 이 편지에서 이 교수는 지식인의 책무를 망각한 류 교수의 행태를 낱낱이 짚어내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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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화 작가에게

엊저녁 뉴스에서 자네를 보았네. 수사관들에게 둘러싸여 차에서 내리는 장면을 보고 마음이 착잡하였네.

이화여대 학생인 정유라에게 학사 특혜를 줬다는 혐의로 특별검사팀에 긴급체포된 것이라고 텔레비전 아나운서는 전해주는 것이었어. 기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구치소 잠자리가 춥지 않을지 모르겠네. 부디 자중자애하시게.

자네는 나이로 치면 6년 밑이고 등단 연도로 따지면 8년 후배지.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는데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내게 보내주면서 "이승하 선생님 尊案 이인화 謹上. 2000. 2. 22."라고 썼던 것은 내가 문단 선배여서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네.<영원한 제국>을 내준 출판사 세계사의 문예계간지 <작가세계>의 편집위원이 내 형이어서 그렇게 한 것일 수도 있을까? 내 고향 김천과 자네 고향 대구가 지척이고 내 형이 자네가 나온 대학 학과의 선배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나한테까지 책을 보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하네.

<영원한 제국>같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시인의 별>이나 <초원을 걷는 남자>같은 좋은 소설을 쓴 소설가인 자네가 필화를 입은 것도 아닌데 '긴급체포'되다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네.

자네와 나는 재직하고 있는 학교도 다르고 과도 다르지만 동료교수로서의 유대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네. 그런데 이번 일은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네. 어찌 최순실의 딸에게 그런 특혜를!

어쩌다가 지식인의 책무를 망각했는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이화여대 정유라의 류철균 교수의 '영화스토리텔링의 이해A' 과목의 오프라인 답안지. 확인 결과 단답형 문제 14개 중 10개를 맞혀 관련 과목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김병욱 의원, 정유라 대리답안지 공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이화여대 정유라의 류철균 교수의 '영화스토리텔링의 이해A' 과목의 오프라인 답안지. 확인 결과 단답형 문제 14개 중 10개를 맞혀 관련 과목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김병욱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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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박정희 대통령을 미화한 소설<인간의 길>(1997)을 낸 것이 잘못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 추진, 새마을운동 전개 등을 합쳐도 인혁당사건, 민청학련사건, 동백림사건 등 수많은 사건을 조작해 멀쩡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거나 사람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한 사건들이 상쇄되는 것이 아니네. 설사 경제개발이 좀 더디게 추진되었던들 어떤가. 민주주의가 퇴보한 1961〜1979년이었네. 물론 이승만 정권 때도 민주주의의 '민'도 실행되지는 못했었지만.

나는 내 고향 김천이나 아버지의 고향 대구, 외갓집이 있는 상주에 가면 박정희 예찬론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지. 그분들, 야당 정치인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말하는 어르신네들은 '판단'이라는 것을 일부러 하지 않는 듯하셨지.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어도 그분들은 서슴없이 '빨갱이'라고 말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빨갱이'라고 말했지. 경상도여서 누리는 혜택이 천년만년 이어지기를 원하는 그분들이 요 몇 달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판단'을 제대로 하게 된 것일까?

자네가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여 3권짜리<인간의 길>을 낸 것을 두고 공적으로 비판하거나 사적으로 비난한 적은 없었지만 나와는 다른 '길'을 가는 동료 문인임을 절감하게 된 것은 사실일세. 나는 박정희씨가 대통령이었을 때도, 그의 사후에도 그에 대해 존경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마음 깊이 존경하는 장준하씨의 죽음에 박정희가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데 어떻게 존경할 수 있겠나.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한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안 그의 장녀가 자네를 '우리 편'으로 여긴 것은 비극의 제2막이 아니었을까. 자네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의 민간위원과 청년희망재단 초대 이사 자리를 거절하지 않았지.

자네는 본명이 류철균이고 이인화는 필명이지. 염상섭의 소설<만세전(萬歲前)>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을 필명으로 삼았던 것인데, 나는 오늘 자네의 체포 소식을 접하고 보니 이 필명이 무슨 운명이라는 생각이 다 드는 것이네. 이인화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젊은이지. 이인화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일제의 포악한 무단 정치와 가혹한 수탈만이 아니었지.

조선이라는 곳은 자신이 왜 불행한지도 모르는 무자각 상태의 민중과 구태의연한 가족 제도에 사로잡힌 우매한 농촌 사람들, 겉멋이 든 신여성, 친일 군상 등이 뒤섞여 우글대고 있는, 이른바 '구더기가 끓는 묘지' 같은 곳이었지. 염상섭은 일제하에 우리 민족이 수탈당하는 모습을 고발하고 비판하고 있었지만 정작 주인공 이인화는 암담한 현실을 인식하고서도 이를 타개할 구체적 행동을 모색하지 않고 다시 동경으로 쫓기듯이 돌아가고 말지. 이것은 도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그 당시 다수 지식인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자네는 소설 속 이인화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박근혜 정부에서 두 자리 한 것이야 뭐 그렇다 치더라도 정유라 학생에게 불법적으로 점수를 준 것은 지식인의 책무를 망각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네.

아주 많은 사람들이<영원한 제국>을 재미있다고 얘기하기에 내가 사본 것이 1994년 3월이었네. 1993년 7월 15일에 제1판 1쇄를 찍었는데 8개월 뒤인 1994년 3월 10일에 21쇄를 찍었으니 그 당시 엄청난 베스트셀러였지. 아마도 60〜70쇄는 찍지 않았을까 싶어. 그런데 자네는 박근혜 제국이 영원한 제국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가?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이인화 <영원한 제국>
 이인화 <영원한 제국>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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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도 나도 지식인일세. 일제 강점기 때 이인화가 일본 동경에 유학을 갔던 지식인이었던 것처럼 말일세.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지식'을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일까? 누구를 위해 써야 하는 것일까?

자네의 이상문학상 당선 소감 중 "문학의 위대함은 새시대의 변화에 편승하지 못하고 망해간다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이 위대함과 망함의 형용모순을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때 그의 문학 속에 인간 정신의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생성된다고 생각합니다"란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문학적 자서전 <문학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그 순간순간들>의 마지막 문장, "세상이 너무도 많이 변했지만 그때 문학에 대해 가졌던 그 초심(初心)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라는 말도 잊지 않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문학에 대해 경외감을 갖고 있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네.

자네는 나보다 훨씬 죄질이 나쁜 아무개 전 수석, 아무개 전 실장은 멀쩡히 거리를 활보하는데 나는 왜 이 고생을 하고 수모를 겪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분노는 마음과 몸을 다 상하게 할 수도 있네. 밥도 잘 들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네.

나는 근 10년 동안 교도소, 구치소, 소년원에 가서 일종의 재능기부로 시 창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아는데, 형기를 사는 재소자들 중에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그 안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 세월이 빨리 간다고 하네.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우울해 하면 사고도 자주 치고 병도 와서 수형생활 자체를 아주 힘들어한다네. 민주화의 진통을 겪는 과정에서 김지하·김남주·박노해 시인은 10년 가까운 세월을 독방에서 살다 나오지 않았는가. 그분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게.

이 겨울에 검찰의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서고, 형을 살게 될 수도 있고... 부디 마음 든든히 먹고 건강을 잃지 말기를 바라네. 자네가 진정으로 뉘우치고 반성한다면 형량도 참작이 되지 않을까. 아무튼 거듭 말하네만 자중자애하고 이번 기회에 큰 교훈을 얻고 거듭나기를 바라네. 부인과 아이를 보면 많이 위로해주시게.

2017년 벽두에
                                                                                                                                     이승하 선배가.


태그:#류철균, #이인화, #정유라, #이대,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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