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민사, 석천사 150m →"여수 현암도서관을 지나자 충민사와 석천사 안내판이 보입니다. 여기서 몇 발짝 가자 '하마비(下馬碑)'가 있습니다. 하마비는 이곳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뜻의 비석입니다. 사람들 그런데도 차로 쓱 지나갑니다. 길 위에 낙엽이 수북합니다. 낙엽에 온몸이 반응합니다. 걸음을 멈추고, 여수 전경을 파노라마처럼 훑습니다.
오동도 쪽을 봅니다. 오동도와 여수 동바다가 아파트에 가렸습니다. 건물 사이로 겨우 보이는 바다가 그나마 위안입니다. 종고산 왼쪽으로 돌산 2대교 기둥이 보입니다. 그리고 종고산이 자리합니다. 종고산은 "임진왜란 때 산이 스스로 울어 국난을 알려주었다 하여 이순신 장군이 종고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종고산 오른쪽으로 멀리 여수 가막만이 보입니다.
"석천사는 정유재란이 끝난 지 3년 뒤인 1601년, 이순신 장군과 판옥선을 함께 타고 종군한 승장 옥형 스님과 자운 스님이 충무공의 인격과 충절을 기려 세운 암자이다."다시 길을 걷습니다. 마래산 석천사는 일주문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있었다고 하는데, 충민사 정화사업 등으로 일주문이 없어졌습니다. 이곳에선 일주문을 대신해 마음 문을 세워야 합니다. 갈래 길입니다. 석천사 범종각으로 드는 입구와 주차장과 충민사 방향으로 나뉩니다. 충민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등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충민사를 둘러본 후, 요사채 계단을 통해 석천사 대웅전으로 듭니다.
석천사, 대웅전 처마 밑 '풍경'을 본 후의 상념
"진옥 스님 계십니까?""제사 지내는 중입니다. 30분 후쯤 끝납니다."공양주 보살님, 기다려야 할 시간을 알려 줍니다. 덕분에 시간을 쪼개 쓸 여유가 생깁니다. 관세음보살을 살핍니다. 뒤쪽에 작은 불상이 즐비합니다. 아울러 다양한 색깔과 모습의 밀랍 인형까지 놓였습니다. 게으른 동자승 인형에 꽂힙니다. 다리 꼬고, 손 뒷머리에 괸 채 누워 있는 모습에서 느긋한 풍요를 봅니다. 다음은, 석천사 의승당 기둥에 소개된 시문입니다.
"옥형 자운 두 큰스님 삼백여 의승군임진 정유 왜란에 온 중생 허덕일제연꽃 잡은 손으로 호국의 기치 들어왜인의 침략 야욕 파사현정 하셨네충무공 순국하여 호국의 용 되시고의승군 대승의 얼 등불되어 빛나네""절집 처마 밑에 계절이 달렸습니다. 산사 지붕 네 귀퉁이에 풍경이 매달렸습니다. 바람에 풍경이 흔들릴 때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같이 움직입니다. 풍경만 움직이면 외로울까봐. 풍경만 홀로 흔들리면 중심 못 잡을까봐. 그래서 풍경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외롭지 않습니다. 같이 동참하는 세상이 있으니…."여수 마래산 석천사 대웅전 처마 밑 '풍경'을 보고, 혼자 시적 감상에 빠졌드랬습니다. 어느 촌로, 겨울을 비집고 석천사 경내로 뚜벅뚜벅 걸어옵니다. 물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마십니다. 그러더니 상념을 깨는 질문.
기상천외한 질문, "풍경 속에 왜 물고기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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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옥 스님, 대웅전에서 '관세음보살' 음과 리듬을 맞추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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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로의 지적대로 여수 마래산 석천사 대웅전 처마 밑 풍경 속에는 물고기가 없었습니다. 스님 왈, 바람에 떨어졌다 합니다. 그저 이치인 것을... 인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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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물읍시다. 다른 절에 가면 저 처마 밑 풍경 속에 물고기가 달려 있지. 물고기가 달린 이유는 눈을 감지 않은 물고기처럼 밤낮 없이 열심히 수행하라는 의미. 근데, 여기 석천사 풍경 속엔 왜 물고기가 없어요?"난감하더이다. 전혀 예상 못한 기상천외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절집 처마 밑에 달린 풍경은 그저 운치거니 했습니다. 그랬는데 촌로께서는 풍경 뿐 아니라 풍경 안에 달린 물고기까지 유심히 본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세상에 대한 관심이 궁금증을 유발한 겁니다. 그제야, 속으로 '맞다. 왜 물고기가 없지?' 했습니다. 머릴 굴렸습니다.
"여기 석천사 스님께서는 평소에도 수행을 열심히 하시는 까닭에 굳이 스님을 깨칠 물고기가 필요 없는 거 아닐까요?"에구에구. 침묵은 금!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일이지. 대답인지, 질문인지, 동의를 구한다는 건지, 애매모호한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촌로 표정을 살폈습니다. 무표정. 그 뒤에는 '네깟 놈이 뭘 안다고?'라는, '공부 더 많이 해!'라는, 점잖은 가르침이 녹아 있었습니다. 뒤통수 한 방 제대로 맞은 기분이랄까. 순간, 진옥 스님께서 대웅전 문을 열고 나타났습니다.
"바람에 부딪쳐 떨어졌습니다."마래산 석천사 대웅전 처마 밑에 달린 풍경 속에는 본래 물고기가 있었답니다. 그랬던 게 모진 세월, 바람에 흔들린 덕분에, 깨져 떨어졌다는, 간단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궁금증에 대한 답은 언제나 그랬듯, 이치에 있었던 겁니다. 삶, 거창하게 잔머리 굴릴 일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 될 일!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