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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촛불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진실의 촛불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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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촛불, 150만 속의 촛불이 되는 것보다 어쩌면 50개도 되지 않는 촛불 속 한 사람이 되는 일이 더 힘들지 모른다. 그것도 익명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군단위 지역에서 저마다 무심히 살아가는 분위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 12월 1일, 오후 6시가 넘어서자 예산읍내 분수광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 발표 후 직업이 정치인 이들은 왜 이 문제가 시작됐는지 다 잊은 듯 재빠르게 셈법에 들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오히려 각자 먹고사느라 바쁜 사람들은 잊지 않고 나와 추운 겨울밤 차가운 바닥에 다시 촛불을 켜고 앉았다.

촛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마음은 한가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박근혜는 당장 물러냐야 합니다"
 촛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마음은 한가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박근혜는 당장 물러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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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예산군시국대회. 낮동안 농토를 일구느라, 집을 짓느라, 학생을 가르치느라, 공장에서 일 하느라, 공부하느라 지친 사람들이 저녁도 먹지 못하고 나온 이유를 밝힌다. 박근혜, 최순실, 새누리당, 재벌, 국정역사교과서 같은 단어들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진실을 밝히는 촛불에 언손을 녹이고 있는 모습.
 진실을 밝히는 촛불에 언손을 녹이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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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사람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의 많은 사람도, 에너지를 끌어올려주는 공연도, 밝은 무대조명도 없어 황량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목청껏 외친다.

"박근혜는 당장 물러나라", "시간끌기 택도 없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새누리도 공범이다, 새누리당 해체하라", "하야말고 구속하라"

예산에서는 촛불도 사람 몫을 한다. 시국대회 참가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촛불에게 한자리를 내어주고 자유발언을 듣고 있다.
 예산에서는 촛불도 사람 몫을 한다. 시국대회 참가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촛불에게 한자리를 내어주고 자유발언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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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학이 넘치고, 발랄이 우울을 넘어서는 서울의 집회분위기와는 다르게 이곳은 여전히 비장하다. 하지만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촛불을 켠 사람들 덕분에 지나던 여고생들도 동참한다.

"예산서도 계속 촛불집회를 하는지 몰랐어요.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3차 담화까지 책임감 없이 말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친구 3명과 함께 촛불을 든 예산여고 2학년 최양의 말이다.

참가자가 많지 않아 뻘쭘할 수도 있는데, 지나다가 반갑게 촛불을 받아든 예산여고 2학년 학생들. 자유롭고 밝고 당당한 모습이 참 어여쁘다.
 참가자가 많지 않아 뻘쭘할 수도 있는데, 지나다가 반갑게 촛불을 받아든 예산여고 2학년 학생들. 자유롭고 밝고 당당한 모습이 참 어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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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발언에 나선 류홍철씨는 "예산에 거주하면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일한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그뒤 "국민들이 길게 지켜봐야 할 싸움이다. 냄비근성으로 가면 안된다. 끈질긴 사람이 이긴다고, 박근혜가 끈질기게 버티면 국민들은 더 끈질기게 요구해야 이길 수 있다. 날씨가 많이 춥지만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반 친구사이라는 남고생 4명 중 한 학생이 내내 서서 어른들의 발언을 듣다가 마지막 발언대에 나선다.

"잘못됐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여기 지나가면서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지만 말고 목소리를 내줘야 알 수 있다. '이거 잘못 됐으니까 내려 와라'고 해야 세상이 변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좋아진다. 박근혜 하야를 꼭 이룩하고자 목표를 가지고 매주 나왔다. 우리 국민들이 진짜 주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자, 바른 나라로 발전되도록 그런 나라를 만들자."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터진지 두달이 지나고, 틈만 나면 꼼수정치가 판치는 통에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찰나 죽비소리 같은 일갈이다. 원래 문제는 이거였잖아, 하는.

한 주민이 홀로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조용히, 끝까지 참여하고 있다. 12월을 맞아 등장한 뒷편의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도 함께 노래하는 것 같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한 주민이 홀로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조용히, 끝까지 참여하고 있다. 12월을 맞아 등장한 뒷편의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도 함께 노래하는 것 같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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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여 켜있던 촛불이 꺼지자, 퇴근시간인데도 텅 빈 예산읍내 중심상가가 적막함에 더 가라앉는다. "지금의 촛불은 단순히 대통령만 퇴진시키자는 게 아니다. 잘못 가고 있는 대한민국 시스템을 점검하고 바꾸자는 얘기다"는 작금의 과제는 이곳에도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예산읍 분수광장에서 열리는 예산군 시국회의. 이곳에서 여섯 번째 촛불은 8일에도 계속된다.

"주권찾기에 모두 동참했으면"
시국대회서 만난 청소년 김용근군



사진 한장 찍자고 하니 주먹을 불끈 쥐는 예산고 2학년 학생들. 과연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고장의 후예들, 기개가 대단하다. 왼쪽 끝 붉은 옷이 김용근 군이다.
 사진 한장 찍자고 하니 주먹을 불끈 쥐는 예산고 2학년 학생들. 과연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고장의 후예들, 기개가 대단하다. 왼쪽 끝 붉은 옷이 김용근 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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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은 참 밝고 당당하다. 이름과 사진을 내는데 거침없다. 취재를 하다보면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동네니 이름은 밝히지 말아달라"는 요청이 많은데 열여덟 청춘들은 확실히 다르다. 세상의 변화는 예산같이 작은 집회에서도 감지된다.

예산고 2학년 김용근군이 기자와의 인터뷰, 자유발언을 통해 밝힌 생각은 다음과 같다.

"검찰이 똑바로 수사해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우병우 검찰조사 사진이  난 뒤 한 일이 검찰청 유리창에 창호지 붙인 일이다. 대놓고 불평등 수사 한다는 거 아니냐. 세월호도 그렇다. 국민이 300명 넘게 죽은 절망적인 그 7시간동안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전화로 보고받고 지시하나. 상식적으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생각인가. 학교시험이 10일정도 남았다. 지금 이 시간 공부하면 점수를 올릴 수 있겠지만, 이 자리에 나와서 주권 찾는 운동을 한다면 삶이 달라지고 세상이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나 하나 희생한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움직이고 정의를 추구한다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1시간여 집회가 끝난 뒤, 학생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국대회, #박근혜, #예산군, #하야투쟁,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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