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1960년 4월 역사를 짓눌던, 검은 구름장을 찢고 영원의 얼굴을 보았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하늘 물 한아름 떠다, 1919년 우리는 우리 얼굴 닦아놓았다. 1894년쯤엔, 돌에도 나무등걸에도 당신의 얼굴은 전체가 하늘이었다. 하늘, 잠깐 빛났던 당신은 금세 가리워졌지만 꽃들은 해마다 강산을 채웠다…. (중략)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영원의 하늘, 끝나지 않는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 신동엽, '금강' 중에서

1960년 4월, 빛나는 하늘을 바랐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먹구름을 헤치고 다시 이 땅에 빛 내림이 가득하게끔 만들었다. 프랑스의 6월 반란을 관찰한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썼듯이, 4월 혁명에 감명을 받은 신동엽 시인은 굳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한 서사시를 남긴다. 1894년, 녹두꽃이 만발하기를 바라며 고개를 넘던 농민의 이야기는 1919년 3월의 외침과 궤를 같이한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온 넉넉한 민중의 맥이, 1960년까지 이어져 왔다고 신동엽 시인은 믿었다. 하늘을 보고 싶었던 백성들, 결국 부서지고 말았지만 드높았던 그들의 푸른 꿈에 대해 신동엽 시인은 풀어낸다.

그리고 2016년, 신동엽 시인의 시구가 다시 노래된다. 이번에는 무대다. 그것도 뮤지컬이라는 형태로. 성남문화재단이 제작에 나선 이 작품은 오는 12월 1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단 4일간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권력을 향해 주먹을 치켜든 농민의 이야기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나보았다. <레미제라블>에 이어 또다시 혁명 서사 속 히로인을 맡은 배우, 박지연을. 그녀가 생각하는, 그리고 꿈꾸는 하늘에 대하여 듣기 위해서. 지난 22일, 오후 1시 30분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나눈 말과 고민을 적어본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19세기 말 조선을 노래하다


뮤지컬 <금강 1894>의 인진아, 박지연 지난 22일 오후,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뮤지컬 배우 박지연을 만났다. 성남문화재단에서 7년 만에 뮤지컬 제작에 나선 작품 <금강 1894>에서 '인진아' 역을 맡은 배우 박지연.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진 창작극이다. 그녀를 만나 왜 또다시 '혁명'을 주제로 한 극에 출연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본래 궁녀 출신인 '인진아'는 모두가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에 감화되어 동학 혁명에 뛰어든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평등하다. 그 앞에 신문이나 성별의 귀천은 없다. '여성의 재가'를 허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들을 동학은 내세웠다. ⓒ 곽우신


하필이면 '또' 19세기 말 조선이다. 이미 올해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와 뮤지컬 <곤 투모로우>가 당시 무너져 가는 조선의 이야기를 풀어낸 바 있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비극적 운명에 휩쓸린 명성황후의 명과 암을 조명하고, <곤 투모로우>는 갈 수 없는 나라에 닿고자 했던 엘리트 청년들의 혁명과 꿈을 노래한다. <금강, 1894> 역시 같은 시대를 그린다. <곤 투모로우>에서는 따로 등장하지 않지만,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한 마디 대사도 없이 안무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가 바로 녹두장군 전봉준이기도 하다.

<금강, 1894>는 2016년에 동시대를 노래하는 세 번째 작품이다. 신동엽 시인의 '금강'을 원작으로 한다지만 아직 뚜껑을 열기 전이기에 기대 반 걱정 반이기만 하다. <금강, 1894> 그리고 그 안의 인진아라는 인물에 대한 배우의 생각이 궁금했다.

<금강> 표지 (신동엽 지음 / 창비 펴냄 / 1989년 4월 / 9000원)

▲ <금강> 표지 (신동엽 지음 / 창비 펴냄 / 1989년 4월 / 9000원) ⓒ 창작과비평사

"지금도 가방 속에 <금강> 책이 있는데…. (웃음) 진아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 책을 많이 참고했죠. 작품의 대사나 가사를 원작에서 많이 가져오기도 했고요. 하지만 인물의 성격이나 이야기는 원작과 아주 달라요. 특히 진아가 많이 달라졌어요. 그 당시 여성 같지 않은, 바꿔 말하면 요즘 사람 같은 인물이랄까요. 동학농민혁명을 뜨겁게 하는 일원으로서 그리고 하늬를 사랑하는 한 여인으로서, 또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이 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할 수 없었던 말을 대신 전달하는 인물로서 더 당당하고, 솔직하고, 주체적으로….

동시대를 다룬 작품이 많지만, <금강, 1894>는 진짜 '우리' 얘기라는 점에서 더 특별할 것 같아요.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이 작품이 선택한 시점, 당시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극이 흘러가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더 공감 가고, 더 아픈 작품이지 않을까…."

혁명을 꿈꾸는 민중적 관점의 이야기, 그 안에서 움텄던 하지만 결국 비극적으로 끝나는 사랑. 아직 뚜껑을 열기 전이지만 여러모로 <레미제라블>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박지연은 두 번의 국내 라이선스 <레미제라블>에서 에포닌을 맡아 열연했다. 에포닌은 혁명에 동참하는 청년 마리우스에게 연심을 품지만,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전투' 때 마리우스를 대신해 총탄에 희생된다. 궁금했다. <금강, 1894>와 <레미제라블>을 비교한다면, 인진아와 에포닌을 비교한다면?

"<레미제라블>의 에포닌 같은 경우에는 마음의 중심이 마리우스에게 가 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건 없었어요. 인진아는 에포닌보다 복잡한 것 같아요. 우선 혁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 안에서 하늬라는 캐릭터와 피어나는 사랑도 있고…. 더 풍성하고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금강, 1894>는 <레미제라블>과 닮아있는 구석이 많죠. 하지만 그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어떤 작품이 됐든, 혁명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다 <레미제라블>과 비슷한 가슴을 가지고 있거든요. 작품을 만들고, 연기하고, 공연을 올리는 모든 사람이 말이에요. <레미제라블>을 했던 그때도 항상 가슴 아팠고, 지금 <금강, 1894>를 준비하면서도 가슴이 아픈 건 매한가지예요. 특히 <금강, 1894>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얘기'이기 때문에 더 공감이 많이 가고 아픈 것 같아요.

특히 <금강, 1894>의 합창이 너무 좋아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눈물이 너무 많이 났어요. 잔인했던 관리들의 횡포 앞에서 종이가 베어지듯 베어지는 백성의 삶이 노래 안에 나오거든요. 합창을 같이하면서 울컥울컥하는 부분들이 극 중에 굉장히 많아요."

정치적 의도는 없다, 하지만...


뮤지컬 <금강 1894>의 인진아, 박지연 지난 22일 오후,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뮤지컬 배우 박지연을 만났다. 성남문화재단에서 7년 만에 뮤지컬 제작에 나선 작품 <금강 1894>에서 '인진아' 역을 맡은 배우 박지연.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진 창작극이다. 그녀를 만나 왜 또다시 '혁명'을 주제로 한 극에 출연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작품의 정치성 신동엽의 <금강>이 출간될 당시에도, 긴급조치에 의한 정권의 압박이 심할 4.19 혁명과 동학농민혁명을 거론했을 뿐 당시 현실에 대한 직접적 비판이 없었음에도 작품은 탄압 받았다. 시대를 뛰어넘어 현실의 맥락에서도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가 없음에도 하필이면 이런 시국에, 하필이면 성남에서, 하필이면 혁명을 소재로 극이 올라온다. 이 작품에 색안경을 쓰고 접근한다면 그거야말로 정치적인 잣대가 아닐까. ⓒ 곽우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로 대한민국의 모든 감각은 청와대를 향해 쏠려 있다. 수많은 시민이 주말마다 아스팔트 위를 촛불로 밝힌다. 그 '시민'에는 연극·뮤지컬 배우들도 포함된다. 여러 배우가 촛불을 든 현장에서 모습을 보였다. 아예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들'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광화문 광장 무대에 올라 노래한다.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 중에는 SNS를 통해서라도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많다.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 무대 이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픈 게 많은 요즘이다.

"관객분들이 작품을 보고 '아,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만 생각하고 가셔도 충분히 만족해요. 굳이 욕심을 부리자면, 성남아트센터를 나가면서 '말해야겠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구나'라는 걸 안고 가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동학은 실패로 끝났어요. 하지만 이제는, 무기나 힘으로만 싸우는 게 아니라 글과 말, 정보 등으로 싸울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걸 마음껏 표현하면서 자기만의 혁명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싸움의 시작이나 과정이기를, 그래서 그다음이 있었으면 해요. 그런 게 예술 아닐까요? 예술로 승화시켜서 말하는 것, 누군가가 말을 못하고 있을 때 문화가, 작품이 대신 목소리를 내주는 것 말이에요."

'오비이락'일까. 2016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세월호가 연상된다는 이유로 연극 무대에 검열의 잣대가 들이 밀어지더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웃지 못할 주장마저 제기됐다. 이보다 더 큰 정권의 코미디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런 2016년이기에, 시대적 맥락에서 동학농민운동의 서사가 더 큰 울림을 내는지 모른다.

"이 작품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에요. 정말 1도 없습니다! (웃음) 그냥 퍼즐처럼 아귀가 현 시국과 딱딱 들어맞는 것뿐이에요. (웃음) 작품의 관점이 그래서 그런지, 시국과도 더 맞물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무겁기만 한 작품은 아니거든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충실하게, '쇼'적인 측면에서도 재미있고 유쾌하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플러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믿어요. 가슴이 뜨거운 분이라면 느끼실 수 있는 게 더 있을 거고요. 지금 온 배우들이 다 같은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막 나고 그러거든요. 특히 박호산 선배님, 아니 선생님! 존경합니다! 저도 블랙리스트 올라가고 싶어요!"

<금강, 1894>에서 전봉준 역을 맡은 박호산 배우의 이름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이 배우에게 <금강, 1894>의 의미


뮤지컬 <금강 1894>의 인진아, 박지연 지난 22일 오후,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뮤지컬 배우 박지연을 만났다. 성남문화재단에서 7년 만에 뮤지컬 제작에 나선 작품 <금강 1894>에서 '인진아' 역을 맡은 배우 박지연.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진 창작극이다. 그녀를 만나 왜 또다시 '혁명'을 주제로 한 극에 출연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고민하는 배우, 박지연 평소에도 끊임없이 자기 글쓰기를 연습한단다. 신중하게 자기 고민을 한 자 한 자 토해내고자 하는 배우. 자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고민하고 이를 풀어내고자 하는 이 노력들이, 무대의 메시지를 더 흡입력 있게 전달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 곽우신


1988년생 박지연에게 2016년은 참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시기이다. 스물아홉, 30대를 코앞에 둔 그녀는 20대의 마지막 필모그래피를 묵직하게 밟았다. 그녀에게 '더 뮤지컬 어워즈'와 '한국 뮤지컬 대상' 여우신인상의 영광을 안겨 주고, 마니아들 사이의 인지도를 높여 준 <레미제라블>. 이 작품의 재연을 진행하면서 2016년을 맞이한 그녀였다. 그것도 같은 역, 에포닌으로. 아마도, 그녀에게 마지막 에포닌이기도 하다. <레미제라블> 이후에는 <맘마미아!>였다. 그녀의 데뷔작이었던 <맘마미아!>, 역시나 데뷔했던 바로 그 캐릭터 소피를 맡았다. 서울 공연을 마친 후 지방 투어를 돌면서 그녀는 뮤지컬 배우로서 자신이 시작했던 그 인물을 되새긴다. 역시나 아마도, 그녀에게 마지막 소피일 것이다.

<맘마미아!>의 전국 투어가 끝나가고 있는 이 시기에, 그녀가 새로 맡은 작품이 <금강, 1894>이다. 이런 시기에, 이런 작품으로 스물아홉을 마무리하며 필모그래피를 쌓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왜 이 작품을 골랐을까.

"사실 작품은 의리로 골랐어요. (웃음) 대본도 안 보고, 음악도 안 듣고 이렇게 작품을 고른 것은 처음이에요. 두 분(김규종 연출/이성준 음악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뮤지컬 <레드 슈즈> 리딩 공연 때 연출과 짧은 연이 있었는데, 연출께서 <금강, 1894>를 준비하시면서 인진아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저를 많이 생각하시면서 작업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작품 어떠냐고 제게 연락을 먼저 주셨어요. 저를 믿어주셨기 때문에 협업이 잘 됐던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음악감독 이성준의 컴투게더> '프랑켄슈타인 편' 때 제가 진행도 하고, 노래 '산다는 건'도 불렀는데…. (웃음) 그때 제가 꽤? 잘 불렀었거든요. (빵 터짐) 사실 이성준 음악감독님과 본 공연까지 같이 해보고 싶었는데, <레미제라블> 때문에 일정이 안 맞아서 함께하지 못했거든요. 이번에 '아쉬웠던' 두 분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많이 됐어요. 그래서 선택했고, 시작하고 나니 기대에 부응하고 남을 정도로 행복하게 연습했어요. 선택하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했어요. (웃음)

사실 목이 많이 안 좋은 때였기 때문에, 많은 작품이 들어왔는데도 다 거절하고 있던 상태였거든요. 좋은 작품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으으…. 많이 아쉬웠죠! 목이 좀 나아지려는 차에, 타이밍이 잘 맞게 제안해주셨어요. 배우로서 권태를 많이 느끼고 있을 시기이기도 했고요. 오랜만에 새 작품, 새 인물과 인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공연이 짧아서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의 시작에 참여하게 된 것도 정말 좋고요."

뮤지컬 <금강 1894>의 인진아, 박지연 지난 22일 오후,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뮤지컬 배우 박지연을 만났다. 성남문화재단에서 7년 만에 뮤지컬 제작에 나선 작품 <금강 1894>에서 '인진아' 역을 맡은 배우 박지연.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진 창작극이다. 그녀를 만나 왜 또다시 '혁명'을 주제로 한 극에 출연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무대에서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 <레미제라블>도 <맘마미아>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멋진 무대를 보여줬다. 하지만 스스로는 자꾸만 아쉽고, 관객들에게 죄송하기만 하다. 자신의 무대에 엄격한 기준을 내세우며, 그녀는 자신만의 또 다른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다. ⓒ 곽우신


의외였다. 2010년에 데뷔한 배우가 벌써 권태를 느끼다니. 계란 한 판의 나이를 앞두고 겪는 사춘기 같은 것일까.

"계란 한 판…. (웃음) 잇! 나빴어! (웃음) 저는 완전 기대하고 있는 서른인 걸요. 작년과 또 다른 저의 모습이 좋거든요. 재작년과 다른 작년의 저를 사랑하듯이, 어렸을 때 비해 달라지는 저를 사랑해요. 내년은 '배우로서 변화하는 지점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합니다. 배우로서 사춘기를, 아홉수를 올 한 해 잘 보낸 것 같아요. 안정적으로 장기 작품들, 대작들 많이 하면서 배운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저 스스로 숨어있던 점들도 많았어요. 대극장 작품을 하면 숨을 수 있는 곳이 있거든요.

그래서 관객분들에게 더 죄송한 게 많아요.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숨어있지 않았나'하고 반성하게 돼요. 목 관리도 잘 못 했을 뿐더러, 배우로서 예상 가능한, 안전한 길만 걸으며 익숙한 모습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보여드린 것 같아서요. 앞으로 할 작품들을 통해서 그런 두려움을 벗고, 더 자신 있는 그리고 새로운 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숨지 않고, 관객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관객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공연들 많이 하면서 변화하고 싶어요. 그런 시점에서 <금강, 1894>를 하게 되어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요."

박지연이 품은 큰 하늘

뮤지컬 <금강 1894>의 인진아, 박지연 지난 22일 오후,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뮤지컬 배우 박지연을 만났다. 성남문화재단에서 7년 만에 뮤지컬 제작에 나선 작품 <금강 1894>에서 '인진아' 역을 맡은 배우 박지연.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진 창작극이다. 그녀를 만나 왜 또다시 '혁명'을 주제로 한 극에 출연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배우 작품과 인물을 통해 성장하는 건 배우 박지연만이 아니다. 인간 박지연도 자신이 만나는 극과 캐릭터 덕분에 자라난다. 그 자라난만큼 그의 무대도 더 좋아진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시간이 부족했던 인터뷰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응축하여 뱉어놓는 에너지가 컸다. 그만큼, 평소 많은 것을 자기 안에 꾹꾹 눌러 담으며 성장해왔다는 얘기가 아닐까. ⓒ 곽우신


사람은 경험을 통해 한 걸음씩 걸어간다. 모든 배우는 하나의 필모그래피를 쌓고, 한 명의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무언가를 얻어가며 성장한다. 배우 박지연은 <레미제라블>을 통해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아홉수의 사춘기 터널을 끝내려는 시점에서 맡게 된 <금강, 1894> 인진아. 이 배우에게 어떤 필모그래피로 남을까.

"배우로서는 어떤 작품을 하든지 저에게 다 똑같이 소중해요. <미남이시네요>나 <레미제라블>이나, <원스>나 <맘마미아!>나 저에게는 다 소중한 한 줄의 필모그래피예요. 다만 <금강, 1894>는 무지했던 제가, 배우로서의 박지연이 아닌 자연인 박지연이 조금 더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해준 작품이에요.

요새 <무한도전>이 역사와 힙합의 컬래버레이션을 하면서 음악의 사명감에 관해 이야기하잖아요. 저희도 <금강, 1894>를 연습하면서 '사명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공연을 통해서 모든 역사 정보를 다 드릴 수는 없지만, 공연을 통해서 관심을 두고 앞으로 알아가게 되는 시작이 되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웃음)"

그림자가 진 시대지만, 그 가운데 빛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구름이 아무리 짙게 껴도 그 위에는 눈부신 빛살들이 휘몰아치고 있으니까. 그런 하늘을 품고, 새 생명을 잉태한 인진아는 새 시대의 희망이자 내일을 향한 우리의 의지였다. 배우 박지연의 눈도 그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그녀도, 큰 하늘을 품은 큰 배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나의 과한 기대일까. 별명도 '거상'인데.

"(웃음) 아니, 그게 대체 왜 그렇게…. (계속 웃음) 아, 삼성카드 콘서트(삼성카드 스테이지 뮤지컬 갈라 콘서트 <If...>) 때 '장사' 얘기했던 게 별명이 될 줄이야! 뭐, 오그라드는 별명보다야 훨씬 낫죠. 전 투박한 걸 좋아해서요. (웃음) 괜찮은 것 같은데? 포부 있어 보이고…. (혼자 끄덕끄덕) 뭔가 큰 사람 같잖아요. (웃음)"

모두가 하늘인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존중받는 세상. 지금은 상식으로 여겨지는 이념이 불온하다고 여겨지던 시대, 그 꿈을 위해 뜨겁게 싸운 이들의 역사가 우리 앞에 재현된다. 뮤지컬 <금강, 1894>는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오는 12월 1일부터 4일까지 총 6번 무대에 오른다. 12월 2일 공연 무대는, 경기도 성남까지 찾아오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네이버에서 생중계한다.


박지연 인진아 거상 금강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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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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