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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디소의 알베르게는 조용하고 침대도 안락하여 잠을 잘 잤다. 새벽 5시에 잠에서 깨어 침대에 누워 있는데 후두둑 빗소리가 들린다. 이제 산티아고까지 42Km 남았다. 하루에 20Km 정도 걸으면 어렵지 않게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빗소리를 들으니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싫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처음으로 늦장을 부리며 누워 있었다. 친구가 7시가 넘었다며 깨운다. 배낭을 정리하고 바르에서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다행히 판초우의를 입지 않아도 될 만큼 가랑비가 내린다.

언덕길을 천천히 오른다. 산자락에는 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다. 비이슬이 맺힌 풀과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 우리 바로 앞에는 프랑스 부부가 걷고 있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숲길로 들어섰다. 오늘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지 31일째, 얼마 남지 않은 순례길에 몸과 마음이 가벼울 줄 알았는데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피곤하다. 지하도를 지나 언덕길을 조금 걸으니 바르가 나왔다. 오렌지 주스와 빵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니 기운이 난다. 개와 순례길을 걷는 여인도 바로 옆에서 쉬면서 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리바디소 마을 풍경 ⓒ 이홍로
리바디소 마을 풍경 ⓒ 이홍로
아르수아 마을 풍경 ⓒ 이홍로
순례길 풍경 ⓒ 이홍로
순례길 풍경 ⓒ 이홍로
아르수아에 도착, 시내길을 잠시 걷다가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빗줄기가 굵어져 판초우의를 입고 걷는다. 판초우의를 입고 아무 생각도 없이 걷는다. 친구는 저만치 앞서 걷고 있다. 오늘 22Km 정도만 걸으면 되니 평소 보다 짧은 거리인데, 한참을 걷다가 카미노 어플을 확인해 보니 아직 반도 걷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 위로가 된다. 내리막 길을 걸을 때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린다. 얼마 남지 않은 길 조심하며 걷는다.

살세다 마을에 도착하니 11시다. 바르에서 맥주와 빵으로 이른 점심을 먹었다. 길 옆에는 지금까지 보아온 오래오(곡물 건조장)와는 다른 모습의 오래오가 보인다. 화려한 장식까지 있어 우리나라의 굿당 같은 느낌이 난다. 우리 앞에 혼자 걷고 있는 루시아는 브라질에서 태어나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는데,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들으며 걷고 있다. 인디오 음악 같은데 박자에 맞추어 춤추듯 걷는다.
순례길 풍경 ⓒ 이홍로
순례길 풍경(곡식 건조장 오레오) ⓒ 이홍로
순례길 풍경 ⓒ 이홍로
순례길 풍경 ⓒ 이홍로
순례길을 걷다가 유명을 달리한 계예르모와 와트의 기념석 ⓒ 이홍로
순례길 풍경 ⓒ 이홍로
정오가 지나면서 하늘은 파랗게 변하였다. 판초우의를 벗고 날씨가 맑아지니 기분이 좋아 진다. 초원 지대를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길을 걷다 보니 오른쪽 돌담에 두 개의 기념비가 보인다. 이곳은 우리처럼 순례길을 걷던 기예르모와 와트씨가 순례길을 걷다가 산티아고 입성 하루를 앞두고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그들을 위해 만든 기념비라고 한다.

순례길을 걸으며 이런 기념비를 여러번 보았다. 순례길을 걷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평소 지병이 있는데 무리하게 걷다가 생길 수도 있고, 갑작스런 사고 때문일 수도 있다. 영화 <THE WAY> 줄거리를 순례길을 마치고 묵시아와 피니스테라 투어를 할 때 한인 숙소 사장에게 들었다. 명문대를 다니던 아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사고로 사망하자 아들이 걷고 싶어하던 길을 아버지가 걸으며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영화라고 한다.

숲길은 키가 큰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진 길이다. 숲길이 끝나고 조금 더 걸으니 마을이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 아르카 도 피노 마을이다. 우린 숲길을 걸었는데 지자체 지원 알베르게를 찾으니 시내 안쪽에 있다. 한참을 걸어 도로 아랫쪽에 있는 알베르게를 겨우 찾아 샤워를 하고 빨래를 널었다. 어제 비가 오락가락하여 못 말린 빨래까지 함께 널었다. 침대에서 일기도 쓰고 쉬다가 오후 5시가 넘어 시내 마트로 나갔다. 마트에서 닭다리를 여유있게 구입하였다. 여기에 마늘, 양파, 감자 등을 넣어 맛있게 요리를 해 먹었다.

아! 이제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들어간다. 내일 오후에는 한인 숙소 사장이 우리를 픽업하고 묵시아와 피니스테라 투어를 하기로 예약을 하였다. 지금까지 같이 걷던 일본인 친구는 산티아고에서 하루 쉬고 피니스테라까지 115Km를 더 걷는다고 한다. 나도 피니스테라까지 걷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내일부터 이어지는 유럽 몇 개 국가 여행이 있어 걸을 수가 없다.

저녁을 먹고 친구는 선물을 산다며 시내로 나갔다. 조용히 침대에 앉아 기도한다. 이 순례길을 건강하게 걷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서른두번째날,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다

아르카 도 피노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6시 20분에 출발한다. 오전 11시에 산티아고에 도착하여 한인 민박집 사장에게 배낭을 보내고 순례자 사무소에 들러 순례자 증서를 받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아직 길은 어둑하다. 항상 7시가 넘어 출발하였는데 순례길 마지막날 가장 일찍 출발한다.  시내 모습을 촬영하니 매직아워 시간이라서 하늘이 파랗다. 많은 순례객들이 앞에 걷고 있다. 시내를 벗어나 숲속길을 걷는다. 순례길 마지막 3일간은 거의 숲속길을 걸었다.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서니 바르가 나온다. 우린 여기에서 쉬면서 오렌지 주스와 빵을 먹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바르에서 오렌지 주스를 시키면 오렌지를 직접 갈아서 만들어 주기 때문에 매우 진하고 맛있다. 개와 같이 걷고 있는 프랑스 여인을 다시 만났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대부분의 순례자들 표정이 가라앉은 표정이다.  날씨가 흐린 탓인지, 순례자 야고보를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숲길을 걷기를 반복한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농촌 풍경이 우리나라의 수도권 마을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도시에 가까운 농촌이 아주 시골 보다 더 살기가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르카 도 피노 시내 풍경 ⓒ 이홍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 ⓒ 이홍로
순례자 기념탑 ⓒ 이홍로
산티아고 시내 입성 ⓒ 이홍로
순례자 증서를 받다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서니 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 바르에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쉬었다. 순례길 마지막날은 산티아고에 곧 도착한다는 기분으로 힘이 날 것 같았는데 더욱 힘이 든다. 생각없이 걷다 보니 왼쪽 언덕 위에 순례자 기념비가 보인다. 순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내려 온다. 저 멀리 언덕 아래에 큰 도시가 보인다. 우리의 목적지 산티아고다.

친구는 11시까지 민박집 주인과 약속된 장소에 가야 된다며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간다. 언덕을 내려가다가 다리를 건너니 'SANTIAGO de COMPOSTELA' 라는 붉은 글씨가 보인다.  이제 산티아고 시내에 들어선 것이다. 시내를 한참 걷다 보니 오른쪽에 큰 성당이 보인다.  산나자로 산티아고 성당이다. 나이든 아저씨에게 순례자 사무소로 가는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길을 알려 준다. 비가 내린다. 판초우의를 입고 순례자 사무소를 찾아 갔다. 순례자 사무소에는 수 많은 순례자들이 순례자 증서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1시간 정도 기다려 순례자 증서를 받고 산티아고 성당으로 갔다. 비가 내리는 산티아고 성당, 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해 회랑에서 쉬면서 산티아고 성당을 바라 보고 있다. 우리도 성당 앞에서 기념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여기에 오기 위해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32일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걸어 왔구나.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하면 감격하여 눈물이라도 흘릴줄 알았는데 덤덤한 마음이다. 산티아고 성당 예배 참석은 내일 하기로 하고 오후 2시에 한인 민박집 사장하고 약속한 버거킹 햄버거집으로 걸어갔다.
산티아고 시내 풍경 ⓒ 이홍로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 증서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 이홍로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성당 ⓒ 이홍로
비를 피해 성당 회랑에서 쉬고 있는 순례자들 ⓒ 이홍로
산티아고 성당 주변 풍경 ⓒ 이홍로
버거킹 햄버거집에 도착하니 오후 1시. 햄버거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순례길을 걸으며 몇 번 만났던 한국인 대학생들도 있다. 그들도 한인 민박집 사장하고 만나 묵시아와 피니스테라 투어를 한다고 한다. 햄버거를 먹고 구글지도로 산티아고 기차역을 검색해 보니 걸어서 20분 정도면 다녀올 거리이다. 대학생에게 배낭을 부탁하고 우린 산티아고역으로 갔다. 내일 오후 마드리드로 가는 열차표를 구입하기 위해서다.

유로패스를 구입했기 때문에 약간의 추가 요금을 주고 열차표를 구입하여 돌아오니 약속시간 5분 전이다. 대학생들과 봉고차를 타고 묵시아와 피니스테라를 돌아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다시 피니스테라까지 걷는 사람도 있고, 우리처럼 자동차로 투어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한 달 만에 타보는 자동차, 참 편하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순례길을 걸으며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2시간 정도 달려 해안가 도시 묵시아에 도착하였다. 

바닷가 항구를 지나 언덕을 돌아서니 묵시아 성당이 보인다. 지금까지 순례길을 걸으며 보아온 성당은 마을 가운데나 언덕 위 가장 좋은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이곳 성당은 마을과 떨어진 바닷가에 있다. 설명을 들으니 야고보가 성모 마리아를 꿈에 보고 이곳에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성당 안의 장식이 다른 성당과 다르다. 마리아상은 바다 위에 있고 천사가 노를 젓고 있는 배 위에서 야고보가 십자가를 마리아에게 바치는 모습을 성당 벽에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묵시아 성당 앞 해변에서 <THE WAY>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였다고 한다.
묵시아 성당 ⓒ 이홍로
묵시아 성당 ⓒ 이홍로
묵시아 성당 내부 ⓒ 이홍로
피니스테라 풍경 ⓒ 이홍로
피니스테라 표지석(0.0Km)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순례자 ⓒ 이홍로
피니스테라 십자가 ⓒ 이홍로
피니스테라에서 신발을 소각한 흔적들 ⓒ 이홍로
산티아고 성당 미사 중 향로 띄우는 모습 ⓒ 이홍로
묵시아에서 차를 타고 서쪽 해안 피니스테라로 갔다. 주차장에서 피니스테라 순례자 기념관으로 가다 보니 순례자 안내 표지가 보인다. 거리 표시가 0.0Km로 되어 있다. 순례자 기념관에서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어 준다. 해안가로 내려가 보니 바위 위에 신발 조형물이 있고 바위틈은 까맣게 그을린 곳이 많다. 순례자들은 여기까지 걸어와 그동안 신고왔던 신발을 태우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묵시아와 피니스테라 투어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7시다. 오랜만에 김치찌개와 쌀밥을 먹으니 뱃속이 개운하다. 내일은 산티아고 성당 대예배에 참석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난 후의 변화>
- 나 자신과 대화하는 모습
- 힘들게 길을 걸으며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
- 세상에 대한 원망을 순례길에 내려놓고 가벼워진 마음
- 몸무게 2Kg 감소, 뱃살이 쏙 빠지고 허리둘레 1인치 줄어듬
- 평소 입던 옷이 너무 커서 빌려 입은 옷 같아짐
태그:#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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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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