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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국민을 죽였다. 2015년 11월 14일 집회 도중 경찰의 물대포 공격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혼수상태 317일 만에 끝내 운명했다.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헤매는 1년여의 시간 동안 어떠한 진상규명도, 사과도,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가장 잔인한 살인자로 둔갑했고 폭력적으로 진실을 덮었다. 누구나 세월호 희생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백남기'가 될 수 있는 현실. 세계 11위 규모의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오늘'은 이처럼 섬뜩하고도 참담하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 한참 멀었건만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표지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표지
ⓒ 부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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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사회운동가 아스비에른 발은 책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복지국가를 통해 성취된 사회적 진보의 후퇴와 복지국가 모델의 변질에 관해 분석했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라는 북유럽 모델조차도 자본의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공세 앞에서 흔들리는 현실은 여전히 복지국가를 향해 갈 길이 먼 우리를 답답하게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복지국가를 이해하는데는 권력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복지국가'란 복지정책과 이에 투여되는 재정의 총합, 그 이상의 무엇인가로 이해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복지국가를 발흥시켰던 두 가지 힘은 강력한 노동운동과 민주주의 확산이었다.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이 요소들은 사회의 권력 관계를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요인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떼어놓고 복지국가의 현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지국가'는 고정적인 모델이 아니라 사회의 권력관계가 끊임없이 대립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역사 발전의 구체적인 단계다.

"복지국가의 형식과 내용은 사회의 다양한 이익 집단들 사이의 투쟁의 결과물이다.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 권력관계가 시장의 힘을 강화하는 쪽으로 극적으로 변했다. 복지서비스에 대한 공격은 권력균형의 이동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중략)...그러나 복지국가의 훼손이 복지 축소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의 상품화 뿐만 아니라 위험에 대한 개인의 책임 확대, 권위적 통제의 강화, 사회적 배제, 점점 심화되는 빈곤, 사회의 불공평 같은 추세로도 나타난다. 게다가 복지국가를 위한 투쟁에 따라 서비스의 질과 수준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 조직되고 관리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민영화와 경쟁적 입찰, 수혜자 부담의 범위와 규모 등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시장의 힘이 더욱 커진 가운데 사람들은 또한 자신의 일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으며 또 근무 조건이 열악해지고 주거공간을 확보할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당연히 사회문제들도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복지국가를 어떤 것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복지국가의 현재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164쪽~165쪽)


이러한 관점에서 '복지국가'를 사유한다면 한국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정치 권력의 공백과 부재가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 기간 내내 전방위적으로 벌어진 양극화와 빈곤의 확산, 민주주의의 후퇴는 복지국가의 동력이 되어야 할 진보정당과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의 기반을 흔들었다. 야당다운 야당의 부재와 진보정당의 약화 속에서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한 진실조차 밝혀내지 못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과연 부분적이고 다분히 시혜적인 복지정책 몇 가지를 바꾸거나 늘린다고 해서 한국이 복지국가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복지국가 발전의 중요한 이슈인 빈곤 퇴치와 사회경제적 평등의 확산 측면에서도 지금을 '위기'라고 본다. 복지국가의 전성기 동안 줄어들었던 불평등과 빈곤이 다시 확산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를 볼 때, 사회적 진보는 퇴보하고 복지국가라는 사회모델은 약화되고 있다.

그는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이 허약하여 수세에 몰리고 있고, 좌파가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으며, 또 현행 경제모델을 대체할 만할 야심적인 대안이 부족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현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복지국가의 목표를 달성할 전략과 전술 뿐만 아니라 대안적인 사회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아주 긴요한 문제가 되었다"고(6쪽)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복지국가의 변질

"지난 20년 내지 30년 사이에 복지국가는 강력한 경제적 파워와 정치적 파워로부터 계속 공격을 받아왔다. 국가에 따라 공격의 강도는 달랐지만 공격이 지속적으로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정치적 규제들이 풀렸고 공공연금이 약해졌으며 공공 복지기구에 접근할 기회가 줄어들었고 보편적 혜택이었던 것들이 엄격한 심사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수혜자 부담이 범위나 규모 면에서 더 커졌고, 민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지국가의 중요한 영역까지 침투했다."(27쪽)


저자가 보기에 복지 프로그램의 감축과 함께 복지국가의 변질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소위 '워크페어 정책'(workfare policy : 근로연계복지정책)이다. '근로'를 조건으로 복지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노동시장과 사회에 참여할 기회를 배제당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복지제도에서 배제당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일로 복지를 대신하겠다'는 워크페어 정책은 취지와는 반대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징계하는 도구가 됐다.

저자는 "복지정책의 중요한 부분들은 사람들이 임금노동에 근거한 경제시스템에서 노출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위험으로부터 개인과 집단을 보호하는 것과 관계 있다. 달리 말하면, 복지정책은 국가가 운영하는 보편적 사회보험을 통해 위험을 집단에게 분산시키는 것"이라며 "이런 영역들이 상당히 약화되거나 시장으로 넘어간 지금, 위험이 다시 개인화되고 있다. 건강서비스의 부담을 수혜자에게 더 많이 떠넘기고 실업혜택을 줄이고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강화하는 것도 똑같은 결과를 낳고 있다"(208쪽)고 분석한다.

정치가 경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재분배의 도구로서 복지국가는 훼손되고 있다.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노동의 잔혹화, 높은 실업률, 빈곤의 확산과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등 복지국가는 전방위적으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저자는 "권력관계의 상당한 이동을 전제로 하는 변화는 어느 시대나 사회의 꼭대기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며 "변화는 아래로부터 위로 강제되어야 한다. 만일 오늘날 대중의 압박이 충분히 강하지 않으면 이 시대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변화는 국내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308쪽)이라고 강조한다.

"만일 복지국가를 보호하고 더욱 발전시키겠다면 사회적 동인들과 권력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장의 권력과 투기 경제, 사회와 노동의 잔혹화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민주적 통치와 통제이다." (350쪽)

덧붙이는 글 |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스비에른 발 지음 / 부글북스 펴냄 / 2012. 1. / 17,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신 자유주의 시대, 복지정책의 딜레마

아스비에른 발 지음, 남인복 옮김, 부글북스(2012)


태그:#복지국가, #북유럽 모델,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월호, #백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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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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