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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야간자습 빠지면 안 돼."
"수능고사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고3 학년부장으로서 조급한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아침마다 강력하게 주문하는 말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책임감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일 것이다. 24년 동안 학생들에게 진로, 진학 지도를 하면서 요즘처럼 생각이 많고 복잡했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공부의 배신> 표지
 <공부의 배신>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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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혼란 속에 <공부의 배신>이라는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금까지 나름의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미래를 도와주고자 자신 있게 지도해 온 것 같은 데, 왜 이리도 꺼림칙한 책 제목이 뇌리를 뱅뱅 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지금까지의 교육방법이 좀 잘못되고 어긋났다 하더라도, 지금 나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의 뜻을 정확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알고 실천하라는 가르침임을 알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구구절절 다 옳은 말이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질주해 온 지난날의 교육방법이 다 틀리고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교육현장의 현실적 목적과 단순한 생각으로 대처한 것이 지금의 '바보' 대학생을 양산하는 데 한몫을 한 것 같아 책임감이 무거웠다.

해마다 '명문대학 몇 명 진학의 쾌거'라는 현수막 글자를 교문을 지날 때마다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았고, 지역사회 학부모들에게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등 지극히 우리들만의 잔치에 고무되어 살아온 것 같다.

3학년 학년부장으로서 틈날 때마다 성적 우수자들을 불러 놓고 명문대 진학의 당위성을 여러 번 강조하기도 하였다. 물론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대학에 왜 들어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어 아쉽기만 하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고3 학생을 지도했다. 좀더 일찍 이런 고민과 생각의 각도를 넓게 회전시켜 보았더라면, 아마 재수하는 제자들도 적고 행복한 대학 생활을 자기 주도적으로 잘 펼쳐나갔으리라 생각된다. 쉽게 가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먼 길을 돌아가도록 한 것 같아 씁쓸한 마음뿐이다.

예전에 간혹 이런 일이 있었다. 진학 전문가라는 선생님들의 의견을 잘 듣지 않고 거칠고 위험스럽게 행동했던 학생들이, 자신만의 고집과 생각으로 취업과 대학 진학을 하여 오히려 지금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좀 부끄럽기도 하였다.

요즘 청소년들은 이런 배짱보다는 대체적으로 쉽게 만들어 주는 것만 찾는  경우가 많다. 자기 노력보다는 제도의 편리함과 우연의 이득 그리고 옳고 그름보다 자신에게 좋은 것만을 추구한다. 이렇다 보니 기성세대하고의 소통이 부재하고 갈등만 증폭된다.

학교 현장에서도 수행평가의 미미한 점수 차이에 대해 근거 없는 이의 제기는 물론, 자신보다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성적을 얻은 친구를 깎아내리고, 본인의 잘못된 행동을 오히려 합리화 시키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자주 벌어지곤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원칙을 강조하고 정확한 규칙을 적용하여 지도하는 선생님들을 오히려 폄하하며 교원평가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이런 현실 속에 많은 선생님들이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참고 인내하면서 교육하고 있다. 아니 참다못해 극단적으로 명예퇴직을 하는 교사도 셀 수 없이 많다. 자존감이 상실된 것이다. 인생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시점에서 교단을 일찍 떠나는 방법을 선택하기 보다는, 늦은 감이 좀 있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새로운 방법으로 잘못된 시대적 과오를 줄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똑똑한 학생들이 이미 만들어진 편안한 삶을 추구하지 말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창조적인 삶을 살도록' 새로운 방향과 방법 그리고 지도 내용을 바꿔 접근해야 한다. 교육은 학생, 교사, 학부모가 삼위일체 되어 공통의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그래도 교사가 중심이 되어 우등생과 공부 잘하는 학생을 만드는 데 치중하지 말고, 모든 학생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멘토해야 한다. 더 이상 지금처럼 바보 제자를 교육하는 방법을 이어가지 않도록 여러 분야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교육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선 국어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인문학적 소양을 튼튼하게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교필독도서를 읽고 감상문 쓰기 수행평가, 문학 작품 창작과 감상을 통한 내면의식 충족, 그리고 삶에 가치와 의지에 관한 글쓰기와 발표를 하도록 하여, 스스로 기본 인성소양을 넓히도록 할 것이다.

다음은 당당하고 실력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잘못된 관행과 삐뚤어진 교원 평가 개념 그리고 무난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일부 대학 강사들처럼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시험 문제 힌트를 많이 주거나 강의에 집중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비겁한 교육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스스로 깨치고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먼저 교사가 실력 있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당당한 모습으로 실천해야 당당하게 맞서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심약한 교사는 학생을 잘 지도할 수 없다.

그리고 1학년 때부터 체계적으로 진로, 진학 지도가 필요하다. 자신의 특성과 흥미 그리고 재능을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많은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가급적 체험을 통해 자신의 진로 로드맵을 설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양성을 인지할 수 있는 학생이 되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

마지막으로 도전정신을 일깨워 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학벌, 성적지상주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 학교 선택도 취업을 기준으로 하며, 선배들이 걸어왔던 그저 편안한 방법만 고집하니 그리 창의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젊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특권을 소유한 것이다. 그 특권과 함께 꿈과 희망을 갖고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지금보다 더 불리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가치로는 행복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다. '두려울 때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책속 문구처럼 새로운 변화의 어려움을 지식과 강의 교육이 아닌 실패나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교육으로의 탈바꿈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 바로 나부터 지금부터. 더 이상 공부의 배신을 당하지 않도록.


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윌리엄 데레저위츠 지음, 김선희 옮김, 다른(2015)


태그:#교육, #공부의 배신, #하버드, #진학,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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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가 되어 교육의 올바른 방향 제시와 바람직한 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교육가족 모두와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현직 교사로 활동하면서 경험한 교육활동 내용을 실감나게 전할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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