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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워. 몽골 친구가 소원을 빌며 어워 주변을 3바퀴 돌고 있다. ⓒ 노시경
나와 아내는 오늘 몽골여행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진 국립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가 둘러볼 테를지 국립공원(Terelj National Park)은 유네스코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지형이 특이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테를지 국립공원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Ulaanbaatar) 에서 북동쪽으로 80여 km 떨어져 있어서 울란바토르에서 이동하기에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나와 아내는 몽골 중부의 광활한 초원을 여행한 후 울란바토르에 다시 돌아왔고 몽골의 마지막 자연여행으로 이곳을 찾았다.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 차는 산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높은 고개를 넘어갔다. 역시 교통의 요충인 높은 고개 위에는 몽골인들이 복을 비는 어워(Ovoo)가 여지 없이 세워져 있다. 어워에 쌓인 돌도 많고 고개 아래까지의 높이가 꽤 높아서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오늘 우리 차를 운전하는 사람는 새로 만난 몽골 친구인데 잠깐 쉬어가자며 차를 고개 위에 세운다. 그는 어워 위에 돌 한 개를 올리고 어워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고개 위에서 내려다보니 산과 산 사이의 평지에 툴 강(Tuul Gol)이 휘감아 돌고 그 주변에 잘 정돈된 목재 가옥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툴 강. 몽골 동북부를 휘감아 도는 툴 강은 몽골인들에게 젖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노시경
툴 강에서의 캠핑. 강가에 텐트를 가지고 나온 가족들이 캠핑을 즐기고 있다. ⓒ 노시경
이 고개를 넘어가니 테를지 국립공원에 들어선 것이 비로소 느껴진다. 주변 풍광이 기이한 암벽을 가진 장엄한 산들로 일순간 바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암벽의 산 사이로는 따스한 햇살을 받은 청량한 툴 강의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길이 약 820km에 달하는, 몽골 동북부의 젖줄, 툴 강 주변 강가에는 몽골인들이 캠핑을 즐기고 있다. 게르가 아닌 텐트가 어우러진 몽골의 아름다운 강변 풍경이 눈이 부실 정도로 맑았다.

우리는 이 아름다움을 지나칠 수 없어서 강변에 차를 대고 툴 강의 강물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은 더위를 식히는 물놀이를 즐기고 돗자리를 깔고 앉은 어른들은 준비해온 음식들을 먹고 있다. 울란바토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한적한 자연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날씨도 청명하고 하늘도 푸르고 강물도 더없이 맑기만 하다. 투명한 강물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S자 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양말을 벗고 강물에 살짝 발을 담가보았다. 여름 날씨는 덥지만 강물은 놀라울 정도로 차가웠다. 나는 웃으면서 몽골의 강물에서 얼른 발을 다시 뺐다.

강물의 북쪽으로는 평평한 평원지대를 지나 숲과 산으로 이어지는 나무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맑은 강물 너머에는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작고 도톰한 늪지대도 있다. 산 위에서는 몽골에서 보기 힘든 나무들이 자라는데 희한하게도 나무들은 산의 한쪽 사면에서만 자라고 있다. 아무래도 몽골의 강한 햇빛과 겨울의 추위 때문에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테를지 국립공원. 공원 내부는 아주 넓어서 거북바위까지 한참을 들어간다. ⓒ 노시경
테를지 국립공원.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가까운 테를지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온다. ⓒ 노시경
국립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는 곳이 있다. 입장료를 내고 우리 차는 테를지의 암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깊은 평원 길로 들어섰다. 제주도 면적의 1.5배 크기라고 들었지만 테를지 내부는 예상 대비 너무 넓었다. 우리는 거북이 바위를 먼저 찾아보기로 했는데 공원입구에서부터 차는 생각보다 한참을 달렸다.

차는 약 30분 정도를 계속 달렸다. 굽이굽이 길을 돌아가고 고개 길을 넘어가면 암벽의 장대한 산이 길 옆으로 펼쳐진다. 몽골 제일의 여행지인만큼 길이 잘 닦여있고 그 길은 마치 테를지의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계속 이어진다. 일대장관의 이 암산의 풍경은 마치 풍경화 같기도 하고 영화의 배경 같기도 하다.

몽골에서 가장 알려진 곳이지만 직접 와서 보니 몽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사방의 푸른 하늘과 기암괴석의 산, 능선, 그리고 초원이 멀리 파노라마처럼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들 사이로는 시원한 몽골의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몽골 중부의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몽골에서 이런 경치를 만나기는 처음이다. 역시 몽골은 넓고 다양한 땅을 보유한 나라라는 사실을 다시 절감하며 감탄하게 된다.

테를지 국립공원의 압권은 초원에 뜬금없이 솟아오른 기암괴석들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바위마다 이름을 붙였을 것 같은 특이한 일품 기암괴석들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몽골 친구가 가리키는 산 능선 위에는 사람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의 기도바위도 있고 숲 뒤편 저쪽에는 두꺼비 모습의 바위도 있다.
거북바위. 멀리서 봐도 거북바위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북이와 똑같이 생겼다. ⓒ 노시경
아트 샵의 늑대 가죽. 몽골인들이 신성시하는 늑대의 가죽이 장식으로 걸려있다. ⓒ 노시경
하지만 테를지 국립공원의 바위 중에서 가장 압권인 것은 널리 알려진대로 거북바위이다. 차를 타고 접근하면서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크고 인상적인 바위이다. 바위이기는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거북이 중에 가장 큰 거북이이다. 내가 본 가장 큰 거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바위 생김새가 너무나 거북이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북바위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차에서 내려 거북바위로 걸어가기로 했다.

거북바위 바로 앞에는 아트 샵(Art Shop)이라고 적힌 기념품 가게가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게르 형태의 기념품 가게 입구에는 털이 수북한 늑대가죽이 여우가죽과 함께 걸려 있고, 게르 내부를 지탱하는 4개의 기둥에도 깨끗하게 잘 손질된 늑대가죽이 걸려 있다. 게르 기둥의 못에 걸려있는 늑대의 기다란 주둥이만 보아도 야생늑대의 섬찟함이 전해진다. 몽골 늑대의 체구는 생각보다 거대했고 야생에서 만나면 공포 그 자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함께 간 몽골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몽골 유목민들은 푸른 늑대의 후예라고 불린다면서? 그런데 이렇게 많은 늑대를 잡아서 기념품 가게에서 진열해도 되나?"
"이 녀석들은 영하 40도에 달하는 몽골의 겨울철에 굶주림과 추위를 참지 못하고 유목민들의 가축을 공격한 늑대들이야."
"초원의 절대 강자 늑대들이 유목민들의 전재산인 가축들을 먹어치웠다는 거지?"
"유목민들의 피해가 심해지자 몽골 정부가 늑대 개체수를 조절해야겠다고 결정한 거지. 이 늑대들은 아무나 잡을 수 없고 사냥꾼 협회의 허가를 받은 늑대 사냥꾼들이 긴 잠복과 몰이 시간 끝에 사냥한 늑대들이야."

"그런데, 몽골 사람들이 늑대 고기도 먹나?"
"몽골 사람들은 늑대 고기를 먹지는 않아. 그건 우리들만의 오랜 전통이야. 초원의 지배자인 늑대를 숭상하는 문화가 있거든. 늑대 고기는 가끔 약으로만 사용하고 늑대 가죽과 털은 옷, 장식으로 만들어 입지. 이 가게의 늑대 가죽은 이 가게의 장식이야."

가게를 나오자 거대한 거북바위는 더욱 더 눈앞에 성큼 다가와있었다. 누가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도 거북바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말 거북이같이 생겼다. 테를지의 상징과 같이 테를지 홍보사진에 가장 먼저 나오는 바위이다. 몽골의 차디찬 바람에 수만 년 간 풍화된 자연의 역작이다.

거북이의 머리와 등, 발이 모두 갖추어진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모습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북이 등 같이 거북바위의 등쪽에 수직의 주름 문양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도 신비롭다. 초원 한복판에 갑자기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에서는 신령함마저 느껴진다. 초원에 늠름한 자태로 앉아 있는 이 거북이는 경외의 대상이다. 물이 없는 건조한 초원 위에 버티고 서 있는 거북이는 물이 그리운 듯 고개를 들고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다.
거북바위에서 본 정경. 거북바위 아래에는 평원과 암산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 노시경
거북바위에서 본 하늘. 거북바위에서 내려오기 싫을 정도로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졌다. ⓒ 노시경
우리는 거북바위 바로 밑까지 걸어가보았다. 거북바위 아래편의 작은 바위 위에는 이곳에 여행 온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긴 흔적들이 가득하다. 거북바위 뒤편에서 보니 이곳은 하나의 작은 산이었다. 바위 뒤편으로는 거북바위 머리 위까지 올라가는 길이 이어지고 있는데 생각보다 매우 가파른 길이다. 가파른 길 위에는 몸이 겨우 빠져나갈 암벽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통과하면 거북바위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거북바위 머리 위까지 올라가는 것은 조금 위험해 보였다.

나는 거북바위의 목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반바지를 입고 가파른 거북바위 길을 올라가다가 흙 길에 살짝 미끄러져 몸이 갸우뚱했고, 오른쪽 무릎 아래 다리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긁혀버렸다. 아래 다리에 긴 실선 같은 여러 줄의 상처가 남았고 피도 약간 보였다. 오늘 신은 신이 등산화가 아니어서 발이 흙길에 미끌어진 것이다. 조금 더 가면 거북바위의 정상이지만 아내가 위험하다고 말렸다. 마치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머리 위는 나에게 내어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거북 목 위의 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거북바위 뒤편으로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고 그 앞에는 초원과 장대한 암산이 펼쳐지고 있었다. 초원의 사람들은 마치 점같이 작게 보였다. 거북바위 앞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늘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거북바위 위는 여행자들이 앉아서 힐링을 하는 곳이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기사를 맡고 있는 몽골 친구는 거북바위에 앉아 한동안 바람을 쐬며 몽골의 초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가하고 고즈넉한 풍경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들인데 그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정경들이다. 그 누구도 먼저 거북바위 아래로 내려가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나도 이 신령스러운 거북바위 밑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이 풍경들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마음이 상쾌하게 뚫리는 대자연을 마음껏 즐겼다.

우리 일행이 바위에 걸터앉게 된 것은 먼저 와서 거북바위 위에 앉아 있던 한 미국인 할머니 때문이었다. 흰 머리를 짧게 깎아 얼핏 할아버지로도 보이는 이 할머니는 몸도 튼튼해 보이고 복장도 반팔,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었다. 그녀는 도인처럼 앉아 몽골의 하늘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를 보고 자동으로 거북바위의 작은 바위 위에 앉아 그녀를 따라 몽골의 초원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몽골의 하늘이 참 아름답지요? 내가 왜 이제야 몽골의 하늘을 보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내가 다녀야 할 여행이 많은데 나이가 든 게 너무 안타깝네요."

나와 아내는 그녀의 인사에 정말 몽골의 하늘이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거북바위 위에서 본 몽골 하늘은 푸르고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몽골여행 중인 미국 할머니. 몽골을 너무 좋아하는 그녀는 한참을 바위에 앉아있다가 내려갔다. ⓒ 노시경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테를지, #국립공원, #거북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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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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