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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이주 후 가장 좋았던 일 중 하나가 바로 서울에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정도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여유의 깊이가 달랐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가장 짜증나는 일이라 할 수 있는 주차문제를 둘러싼 이웃 간의 갈등이라든지 공공장소에서의 무질서한 행동,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겪는 짜증, 안하무인 격으로 갑질하는 손님, 반대로 손님 얼굴조차 보지 않고 자기방어적인 태도로만 일관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에 대한 문제들을 여기 제주에서는 거의 접해보지 못했다.

무료 공용주차장과 공터가 여기 저기 널려있기에 주차로 인한 이웃 간의 분쟁이 발생할 여지 자체가 없고, 서울 같으면 뒷줄에 선 사람들에게서 항의 섞인 고함이 날아왔을 법한 상황(마트 계산대 앞에서 시간을 끄는 행동이라든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유있게 기다려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텃세가 심하다는 편견을 걷어내고 바라보면 제주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서는 투박하지만 선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햇살 따뜻한 어느 날, 인적이 뜸해진 신촌포구에서 어미개와 강아지가 여유롭게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햇살 따뜻한 어느 날, 인적이 뜸해진 신촌포구에서 어미개와 강아지가 여유롭게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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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관공서 민원 건으로 서울 여러 지역의 관공서와 제주 여러 지역의 관공서에 번갈아 문의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서울 업무 담당자들의 태도는 좋게 말하면 일관성이 있고 객관적이다. 나쁘게 말하면 사람이 아닌 기계에다 대고 말하는 느낌을 준다. 매뉴얼에 적힌 내용을 반복적으로 고객에게 알려주고 그 원칙에서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부분을 계속 강조한다. 전화상이지만 이 사람은 내 얘기에 관심이 없구나 하는 걸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반면 제주의 업무 담당자들은 일단 고객이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들어주고, 이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같이 고민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업무 숙련도와 정확성 면에서 서울 업무 담당자들에 비해 부족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 일이 어떻게 해결이 되든 간에 "아, 이 사람은 지금 내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주려 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는 이런 장점들이 단순히 제주여서 가능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노형동과 연동같이 서울 못지 않은 혼잡한 도심지를 오가다 보니 그런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에서도 인구 밀집도가 높고 복잡한 도심지에서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모든 안 좋은 일들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 산책에 나섰다가 노을에 빨갛게 물든 구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동네 산책에 나섰다가 노을에 빨갛게 물든 구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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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종종 제주에서 가장 혼잡한 지역 중 하나인 노형동, 연동을 가야 할 때가 있다. 이 곳에 들어서는 순간 일단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한다.

급속도로 증가한 제주 방문객의 숫자만큼 폭증한 수많은 렌터카들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노형 오거리까지의 도로에서는 서울 명동이나 광화문보다도 더 막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차량정체가 발생하고 있다.

어디 도로뿐이랴, 동 지역에 위치한 대형마트에 들어서면 관광객인지 이민자인지 모를 중국인들이 뿜어내는 각종 소음이 귀를 힘들게 한다. 길거리도 두말할 필요 없다. 거리를 거닐다 서로 어깨를 부딪혀 인상을 찡그리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주차 문제는 더 심각하다. 노형동과 연동의 아파트 단지 주변은 매일매일 주차전쟁이라 부를 정도의 심각한 주차난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제주 사람들이 특별히 여유가 있는 게 아니라, 도심지가 아닌 지역의 사람들이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각 마을 주민회 차원에서 예비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한달살이 체험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각 마을 주민회 차원에서 예비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한달살이 체험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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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숨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의 크기가 얼마라고 정확히 규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웃과 다투지 않고 내 차 한 대 정도는 댈 수 있는 주차장, 직장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 정도는 쳐다볼 수 있는 여유공간, 책 한 권 꺼내 들고 조용히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작은 방 정도는 어느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다.

물리적인 공간 외에 시간적인 공간도 필요하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시 머리를 비우고 어제 재미있게 본 영화를 곱씹어볼 수 있는 시간, 업무와 업무 사이 잠깐이라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검토해볼 수 있는 시간,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잠시라도 아이 엄마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도시에서는 이런 공간과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에 우리는 스스로 힘들어하고,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며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하게 된다.

얼마 전 뉴스에 소개된 화장실 변기와 주방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엽기적인 원룸 매물을 보면서 진심으로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정글과 같은 도시에서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흙수저들이 정말 개돼지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 내 일이 아님에도 그 화를 억누르기가 힘들 정도다.

우리는 지금 너무 멀리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게 과연 맞는 길일까.

최근 발견한 나만의 해변. 썰물 때만 그 모습을 드러내기에 아는 이도, 찾는 이도 거의 없는 보물 같은 해변이다
 최근 발견한 나만의 해변. 썰물 때만 그 모습을 드러내기에 아는 이도, 찾는 이도 거의 없는 보물 같은 해변이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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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이주, #감옥원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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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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